창세기 1:2-4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יֹום אֶחָֽד)이니라

창세기 1장을 많은 이들이 창조 기사로만 본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은 창조 뿐만이 아니라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 영적으로 죽어있던 우리를 구원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구원의 역사로 읽어야 한다. 

2절을 보면, 이미 땅과 물이 있었다고 말씀한다. 성경은 모든 것이 비유로 감추어져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세대주의자들과 이단들, 그리고 아직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이들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므로 성경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 13:10-14)

그래서 성경이 말씀하는 상징 언어를 알아야만 진짜 성경을 읽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을 모르고 읽으면 수천번을 읽었어도 소경이 글을 읽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상징과 비밀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두 알려주셨고, 그 제자들은 그것을 신약성경에서 모두 풀어주었다. 특히 창세기 기사를 요한은 요한복음과 계시록에서 확실히 풀어주었으며, 출애굽기도 계시록과 뗄 수 없는 연관을 갖고 있다.

창세기 1장2절과 예레미야 4장23절은 땅에 대한 상태를 다음과 같이 단어 하나 다르지 않고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혼돈(תֹּהוּ)”하고 “공허(בֹּהוּ)”하며 “빛이 없는 어두운 상태”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렘 4:22-23)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영적 어둠 속에서 혼돈하고 공허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참빛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빛을 비추신 창세기 1장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 사도바울은 첫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 율법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대조하면서 창세기를 기독론과 구원론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를 그 동안 하나님께서 6일동안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으로만 보도록 사람들의 영의 눈을 흐리게 한 이유는 세대주의자들과 창조과학의 영향 때문이다. 

창세기의 날짜 등에 대해 정확히 소개하게 된 것은 창조과학회에 의해 과학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창조과학의 창시자는 캐나다의 제7안식교 출신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앨런 화이트의 환상을 바탕으로 "홍수 지질학"이라고 하는 창조과학의 기원이 되는 책들을 출판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안티 지질학은 안식교에서 정리했고([새로운 지질학]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 안티 진화론은 통일교에서 정리했다([진화론의 우상들] 조나단 웰스:통일교 신학자). 

그래서 처음 한국창조과학회가 시작될 때에는 통일교 단체로 오인을 받았는데, 이렇게 시작된 창조과학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과연 옳을까?

어거스틴은 창세기의 6일간의 창조가 시간적인 순서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했으며, 성경을 그 시대의 유력한 과학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이, 과학도 자주 변한다. 무언가 발견하고 알아냈어도 얼마 후에는 또 다른 학문들이 그것이 틀리다는 증명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만든 과학이나 의학 등으로 증명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과학이나 의학 등 어떠한 학문 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초등학문을 성경으로 푸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만,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신령한 지혜와 지식을 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성경은 반드시 성경으로 풀도록 짝이 있는 것이다. 이사야 34장1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창세기는 예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처럼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하늘과 땅은 서로 짝이 되는 것이다. 첫째날부터 셋째날까지는 하늘의 영역이며, 넷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는 땅의 영역으로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첫째날의 빛이 넷째날의 하늘의 광명체로 이루어졌고, 둘째날의 궁창과 물이 다섯째 날의 하늘에 나는 새들과 바다의 생물들로, 셋째날의 땅과 풀과 씨맺는 채소와 나무가 여섯째 날의 육축(풀)과 인간(씨)으로 서로 짝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창조의 첫째 날(욤 에하드 יֹום אֶחָֽד)이라고 쓰인 히브리어를 보면, 둘째부터 일곱째 날에 쓰인 서수(ordinal numbers) 즉 '첫째'(רִאשׁוֹן 리숀)로 쓰이지 않고 '하나'(에하드 אֶחָד)를 뜻하는 기수(cardinal number)로 쓰였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는 정관사(하 הַ)가 없고, 여섯째 날(יֹום הַשִּׁשִּֽׁי)과 일곱째(הַשְּׁבִיעִי) 날에만 정관사가 붙어있다. 이것을 직역한다면, 하나의 날, 둘째·셋째·넷째·다섯째 날, 그 여섯째 날, 그 일곱째 날이다.

굳이 첫째 날을 "하나"라는 기수로 쓴 목적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첫째가 아니라 하나인 이유, 첫째 날이 아니라 하나의 날이라고 쓴 이유를. 그런데 그 짝은 에베소서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 1:10, 22)

"창조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그 둘이 한몸이 될찌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막 10:6-9)

선악과를 따먹은 세상은 끊임없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모든 것을 분리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는 "우리 각 개인과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그분의 지체로서 하나가 되어 새피조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용]

지금도 우리가 서있는 곳에서 분열이 일어나며 선과 악을 판단하며 우리의 머리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예수께서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시지는 않는가? 

우리의 머리가 목베임을 당해야만 즉 우리 자신을 완전히 부인해야만 우리의 머리가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며 우리는 그분의 지체로 하나의 몸이 될 수 있다. 

나는 진실로 그리스도 앞에 나의 머리를 내놓았는가?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가?

혹시 (크리스천)가정에서는 부부간에 진정으로 한 몸이 되어 살고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직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된 것이 아니다. 

배우자가 다른 종교인이거나 무교이거나 거듭나지 않았다면, (죽은 시체와) 한 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부부가 모두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한몸으로 살아야 한다. 빛의 자녀라고 하면서 빛으로 살지 못하는 상태가 창세기 1:2에서 말씀하는 혼돈하고 공허하고 어두운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도 나의 주인으로, 그리고 우리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나의 감정과 이성과 상식이 주인이 되어 (나의) 희생을 원치않고 나의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그의 인생은 혼란스럽고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 영적으로 죽어있던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야만 즉 우리가 완전히 죽어야만 비로소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선함이 빛으로 드러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혼돈과 공허와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저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3) 저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이 너무나 어렵사오니, 주께서 저를 그리스도와 함께 온전히 십자가에서 죽게 하여주사 제 머리가 없어지고 그리스도께서 저와 저희 가정과 교회의 진짜 머리가 되게 하옵소서

4) 세상의 초등 학문이나 저의 짧은 지식과 경험 등으로 성경을 판단하지 말고 성경으로 성경을 증명하게 하옵소서

5) 성경으로 성경을 증명할 수 있도록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며 성경을 세상의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게 하여주옵소서

6)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 가정과 교회와 만물이 통일되어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7) 영적으로 죽어있던 저를 살려주신 그 은혜를 영원히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