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온유함의 차이가 신앙 성숙의 바로미터이다

변호산기도원

가뭄재해나 병충해나 홍수나 지진으로 흉년이 찾아오면, 나라도 개인의 삶도 참으로 괴롭다. 무엇보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기에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또한 일터와 가정과 육체에 흉년이 들면 참으로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중에 한쪽에서는 너무 많이 누리고, 한쪽에서는 인생의 흉년으로 인해 동반 자살하는 가정들도 많다. 흉년의 종류가 무엇이든지 간에 흉년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환경이다. 창세기 26장에는 우리들에게 좋은 영적 지침서를 제공하고 있다.

 

1)하나님의 지시를 받으라

(1)이삭이 머물고 있던 블레셋 땅에 흉년이 들었다. 이삭은 그 땅을 피해 모든 것이 풍부한 땅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거주(창26:2)하라고 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처방전이다.

(2)흉년이 찾아왔을 때, 자녀들의 나침판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흉년을 풍년으로 전환하는 성경적인 방식이다. 하나님의 지시는 무엇인가? 말씀이다. 풍년이든 흉년이든 성도들의 나침판은 오직 말씀이다. 성경에 대한 나의 신뢰도가 흉년을 견디는 힘의 척도가 된다.

●사40장6,8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리라”(사40:6,8)

모든 육체는 풀이다. 풀은 연하고 나약하다. 그리고 한순간에 마른다. 한순간에 볼품이 없이 사그라진다. 이와같이 인간의 육체가 이렇게 나약하다. 주님이 손을 대시면 한 순간에 쓰러지고 부서져버린다.

또한 인간의 모든 아름다움도 들의 꽃과 같다. 꽃이 아름답지만 한순간 피었다가 사라져버린다. 인간의 명예도 지식도, 꽃과 같다. 주님이 손을 대시면 한순간에 아름다움도 시들어버리고 사라진다. 그러나 풀도 마르고 꽃도 시들지만 영원히 마르지 않고 시들지 않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이것이 성경이 주는 영적 에너지이다. 성경은 우리 삶에 나침판이요, 기준이며,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흉년의 계절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는 바로 말씀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발행인.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최근 내 마음에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던 단어들이 있다. 온전한 통전적인 생명관이다. 성도가 추구하는 신앙의 방향이다. 온전함이란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하다”,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라는 의미이다. 주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성장하는 것이 신앙의 길이다.
통전적(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란 의미는 한쪽으로 기우러지지 않는 모든 것을 담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창조적인 자세를 가르쳐서 통전적이라고 한다. 편협적인 사고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편협적인 신앙관은 모든 사람과 싸우며 적을 만든다. 하나님의 나라는 통전적인 마음이다. 생명관이다. 생명이란 말은 죽음의 반대말이다. 살린다는 것이다. 모든 만물을 살리는 것이 바로 바른 진리이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을 말한다.

이런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모습이다. 온전한 통전적인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으로 이렇게 사람들을 성장시킬 것인가? 방법은 하나이다.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말씀이다. 말씀만이 영적 에너지를 제공한다. 흉년이 찾아올 때 흉년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나침판이 무엇인가? 성경이다. 성경을 읽고, 베뢰아 성도들처럼 사모해야 한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키는 은혜의 젖줄이 된다. 성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요 지혜이다.

 

2)하나님의 방식에는 반드시 대안이 있다.

(1)하나님이 이삭에게 “이 땅에 거주하라, 거주하면 복”(3,4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순종하면, 너와 함께 하겠다. 네게 복을 주겠다.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하늘의 별과 같이 자식을 주겠다. 천하만인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놀라운 복은 오직 하나님이 제시하신 그 땅에 머물 때 주어지는 은혜이다. 하나님의 방식에 빨리 항복하고 익숙해지라. 흉년의 계절에 교만은 인생에 도움이 전혀 안된다. 이 사실을 명심하라.

(2)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문화가 좋은 문화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땅에 거주하여 거부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살벌한 현실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 땅에 머물렀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전한 순종은 귀한 행동이다.

좋은 순종의 문화는  후손대대로 좋은 영적 기름부음이 흘러간다. 좋은 가정 문화는 계속해서 그 가문에 성장의 기운과 아름다운 기름부음이 흘러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문화, 민족을 사랑하는 문화, 교회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 이런 것은 그 가문을 존귀하게 한다. 이런 좋은 문화들이 흘러가는 것이 복이다.

●불순종의 문화는 인생을 황폐하게 만드는 나쁜 문화이다. 거짓말, 시기, 분노, 욕설, 비판, 정죄, 불순종, 이런 문화가 정착하면, 안 좋은 분위기가 당대뿐만 아니라 3,4대 흘러가서 가문을 망가뜨린다. 실패와 저주의 기운이 흘러가는 것이다.

한국교회에 흐르는 안 좋은 모습들이 있다. 한국교회 일부 목사들의 탈선과 위선이 있다. 일부 성도들의 잘못된 신앙관들이 있다. 우리는 문제점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한국교회성도들과 목사들이 병든 것은 아니다. 만약에 모든 한국교회가 다 썩었고, 모든 목회자들이 다 병들었고, 모든 성도들이 다 위선자라고 보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는가? 교회무용론, 목사무용론, 직분무용론, 전도와 선교 무용론이 자리잡게 되면, 한국교회는 걷잡을 수 없는 흉년이 찾아온다. 저주의 문화, 실패의 문화, 불신앙의 문화가 뿌리내리면 망한다. 이런 나뿐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 바로 교회와 인생에 흉년이 찾아온다.

●흉년을 풍년으로 바꾸는 문화가 있다. 믿음의 문화이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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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0배의 복을 받다

(1)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해 100배의 복을 받았다. 한 마디로 거부가 되었다. 흉년의 계절에 이삭만 “거부”가 되었다. 거부(巨富)란 언어를 어떻게 정의를 내릴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거부(拒否)할 수 없고 측량불가능한 놀라운 은혜'라고 정의하고 싶다. 흉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모든 소산물에 복을 주셔서 100배의 수확을 얻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2)기독교는 복의 종교이다.  가장 중요한 두가지 복이 있다.

●영생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당신은 예수를 믿는가?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을 했는가? 고백하면 현재 구원과 미래적 구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것은 복중에 최고의 복인 거부가된것이다. 

●현세적인 복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고 순종한 자들에게 백배의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믿어지는가? 말라기서 3장을 읽어보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다.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말씀이 믿어지는가?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분들이 많다. 무엇이 불신앙인가? 말씀을 혼합하거나 왜곡하는 것은 결국에는 교회를 황폐하게 만들고 자신의 삶도 무너지게 된다.

믿음생활이란 무엇인가?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말씀을 취사 선택해서 믿는다면 어떤 은혜도 능력도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형통의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믿으라.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인생과 가문이 존귀하게 세워진다.

 

4)성숙함의 본질은 온유함이다.

(1)이삭이 큰 복을 받았다. 블레셋 사람들이 기분이 상했다. 시기해서 아브라함이 팠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 하루아침에 쫓겨났다. 이삭의 대응방안이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 메시지가 크다(14-33절). 이삭은 싸우지 않았다.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 갔다. 힘이 있지만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온유함이다. 힘이 있는데 힘을 약자들을 제압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폭력이다.

(2)분노와 온유함을 묵상해보라. 분노는 관계를 깨뜨리는 주범이다. 그러나 온유함은 관계를 부드럽게 열어가는 힘이다.

온유함과 폭력의 차이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힘이 있는 자가 힘을 사용하는 것은 폭력이다. 갑질하는 것이다. 힘이 있지만 힘을 과시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며 배려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이것이 온유함이다.

이삭이 옮겨서 우물을 파면 또 와서 우물을 막아버렸다. 이삭은 싸우지 않았다. 자기 것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결국에는 이삭이 불레셋 지역에서 하나님의 명예를 지켰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배울 신앙의 모습이다.

인내의 결과 여호와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게 복을 주어 너를 번성케하리라고 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방문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다.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삭이 잔치를 베풀고 함께 먹고 축복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무기는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무기는 온유함이다. 부드러움과 따뜻함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무기이다. 우리는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 분노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못한다.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다. 이것이 이삭을 통해 배우는 영적 교훈이다.

변화산 기도원 기도처소 올라가는 언덕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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