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41-46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천국은 예수님이 왕으로 계시는 곳입니다. 본문 45절은 하나님 나라 영원한 천국은 예수님이 임금, 즉 왕으로 계시는 나라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임금으로 계시는 천국 외에는 이 우주에는 다른 천국이 없습니다. 

인간들 마음 속에는 본능적으로 천국에 대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왕으로 계시지 않는 천국은 결코 이 우주에 실제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과 상관없는 천국을 상상하며 그러한 천국에 누구나 갈 줄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왕으로 계시지 않는 그러한 천국은 이 우주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 후에 있을 대심판을 알려줍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서 볼 때 위 구절의 내용은 부활체를 입은 후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심판이며 이 심판과 더불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4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를 떠나라”고 하십니다. 이는 그들이 주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마귀와 귀신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영원한 불못, 즉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저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불못에 들어가는 자들의 특징을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돕지 않는 자들입니다. 45절에 보면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고 하는데 이는 이 땅에서 병들고 가난한 거지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던 예수님의 종들을 말합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0, 42).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천하게 여기고 업신 여기던 자들은 예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46절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들(악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불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지 못하거나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죄값을 치러야 하는 자들이기에 영벌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의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영접하여 주와 연합함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았기 때문에 영생에 들어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불신자가 육체의 죽음을 당하게 되면 곧 바로 죽음의 영역에 떨어진다고 증언합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성경은 그곳을 음부라고 부릅니다. 음부는 죽음이라는 감옥의 영역으로서 불신자들은 죽음 직후에 그곳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체를 입고 주 여호와 하나님의 대심판을 받게 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대심판의 결과는 그들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불못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죽음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곧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이는 성도의 죄값은 하나님의 어린 양께서 치른 상태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마 16:18-19). 
성도가 죽음을 지날 때는 천사가 와서 그 영혼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모셔갑니다(참조, 눅 16:22). 따라서 성도는 죽음을 통과한 직후에 완전한 자유와 함께 천상의 기쁨을 무한하게 누리게 됩니다. 그 영혼은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기다립니다. 그 이유는 그때에야 영광의 부활체를 입을 수 있는 때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얻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들이 이 세상에 살 때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다 신원하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죽음 직후 하나님의 보좌 앞, 곧 낙원에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에 부활체를 입고 주께서 친히 예비하신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 영원토록 죽음도 없고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는, 나아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으로 계시는 그 나라에서 영원히 기쁨과 의와 평강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지옥의 실체를 뚜렷하게 알려줍니다. 성경에서 흔히 말하는 지옥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두 상태로 구분됩니다. 먼저, 죽음 직후에 불신자들이 들어가는 곳은 죽음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감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재판관에 의해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죄인이기 때문에 그 영혼은 죽음이라는 옥에 갇혀 형벌을 받게 됩니다.  
“주께서 …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 2:9). 

악인이 죽음의 영역에 들어가면 이 땅에서 누리던 모든 은총은 다 차단되기 때문에 고통과 비참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최후 재판의 날을 두려워하며 공포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죽음의 영역, 즉 음부는 불못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보편적인 모든 좋은 것으로부터 격리되어 있으니 지옥이라고 불러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영원한 판결을 받은 상태는 아닙니다. 그 판결은 예수님 재림 후에 심판의 부활을 입고 일어나 육체와 함께 불못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옥은 시간의 흐름에 의해 두 상태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즉, 죽음 직후에 들어가는 음부의 상태,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 후 역사 끝에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판결을 받은 후 불못에 들어가는 상태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은 같기 때문에 불신자들은 죽음 직후부터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상태는 비록 다르더라도 음부도 지옥이며 불못도 지옥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옥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지옥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상태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들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롬 1:28).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는 곳으로 도망쳐서 자기들 멋대로 죄를 지으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원하는대로 영원히 맘껏 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지옥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전혀 없는 곳에서 영원토록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맘껏 죄악을 행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예수님과 또한 예수님을 영원토록 사랑하고 찬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거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가장 싫은 곳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이 천국이며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상태가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왕 되심을 거부하는 자들이 스스로 달려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하나님 및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곳입니다. 

둘째, 지옥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가 완전하게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주의 공의로운 형벌을 내리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소멸하는 불로 징계하실 것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또한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 분인지를 증거하는 장소입니다.  

셋째는, 지옥은 하나님의 공의하심을 나타내는 장소입니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히틀러의 대학살이 어떻게 심판을 받겠습니까? 6백만을 죽인 히틀러가 마지막 연인의 품에서 평안히 잠들어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 우주에는 궁극적인 공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아무리 나쁜 죄를 지었어도 오직 사람들이 만든 제도에 걸리지만 않으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공의는 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마찬가지로 시인 아삽도 비록 잠시 악인이 형통하는 것 같아도 결국 공의가 이루어 질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7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 73:18-20, 27)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가 유지되려면 반드시 죽음 이후 영원한 심판인 지옥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개혁주의에 있어서 위대한 신학자였던 요나단 에드워즈는 인간이 미치지 않고는 지옥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미래에 형벌이 없다는 생각은 인간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창조되었기에 자신의 의무를 본능적으로 안다. 따라서 그 의무대로 행하지 않으면 형벌을 받아 마땅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렇게 이성적으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죄악을 저지른 죄인들에게 아무런 형벌을 내리지 않으신다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불의와 간음과 살인과 도적질과 학대와 같은 죄악을 평생 일삼고 산 사람이 다른 선한 사람보다 훨씬 더 형통한 삶을 살다가 죽었는데 그 이후 아무런 형벌이 없다면 이는 인간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우리의 이성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가르치며 또한 이성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을 다루실 때 공의로 다루심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은 죄에 대한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 지옥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넷째는, 지옥의 실체는 구세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귀중함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때때로 사랑의 하나님께서 지옥을 지으셨을리 만무하다고 하며 감상에 젖어 영혼 멸절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즉, 육체의 죽음과 함께 영혼이든 뭐든 인간은 완전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단 사설 중에는 오직 14만 4천명만이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즉, 천국은 실제하지만 지옥은 실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옥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사실은 구세주도 필요 없습니다. 구원해야 할 지옥이 없는데 왜 구세주가 필요합니까? 왜 죄사함을 위한 희생 제사가 필요하며 왜 십자가의 피가 필요하겠습니까? 지옥이 없다는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자들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성경의 골자는 구세주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5-17). 
따라서 지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셔서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실체는 언제나 영원토록 구세주의 필요성과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성경은 쉴 새 없이 지옥에 대해 경고합니다.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2).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지옥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살후 1:9)이며 “꺼지지 않는 불”(마 3:12)이 있고 그곳은 “영원한 불의 형벌”(유7)을 받는 곳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친히 지옥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3을 보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18장 9절 이하에서도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지옥 자식”(마 23:15)이라는 표현을 하셨고 “지옥 불”(마 5:22)에 들어가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마가복음 9장 48절에서도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은 지옥의 존재에 대해 확신하게 합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 20:15).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1:8). 

바울의 경우도 데살로니가후서 1장 7-9절에서 뚜렷하게 지옥을 말합니다.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또한 바울은 지옥에 들어가는 것을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할 것”(고전 15:50; 고전 6:9-10; 갈 5:21)이라는 표현 등으로 암시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의하면 반드시 지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신자들이 죽음을 통과하여 지옥에 들어가면 그 영혼은 생생한 의식을 갖고 끝없이 후회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영원토록 이를 갈면서 분노할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을 바라보면서 지옥에 거할 것이기 때문에 뭐든 사실대로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옥에 떨어지는 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영원한 후회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후회를 ‘이를 갊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뭐 때문에 그렇게 이를 갊니까?
첫째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갑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는 거룩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즉,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지 못하고 최악의 상태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에서는 궁극적으로 몸과 영혼이 다 완전하게 완성되지만, 지옥은 몸과 영혼이 전부 완벽하게 부패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지옥 음부에 있던 영혼들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게 될 때, 그들의 부활은 지극한 비참의 부활이며 가장 수치스러운 부활이 될 것입니다. 역사 끝까지 이 세상에 살았던 가장 흉측하고 악한 자들보다 더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더러운 모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못생기고 가장 질병이 많은 가장 큰 고통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몸의 각 지체가 죽는다면 덜 고통을 느낄 것이기에 몸이 죽기를 바랄 것입니다. 만일 온 몸이 다시 먼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들은 더없이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은 모든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가운데 지옥 불의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죽으려고 해도 영원히 죽을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들어간 인간들의 육체의 모습은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물 이상의 흉측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또한 지옥에 떨어진 인간들의 지.정.의 역시 하나님의 선한 형상을 다 잃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진 자들에게는 거룩을 원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에 완전한 악만을 행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뚤어진 의지를 가지고 악만을 행하기를 기뻐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폭력을 휘두들 것입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자신들의 행위가 철저하게 악하다는 것을 양심으로 인하여 가장 강력하게 의식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완벽한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무서운 죄악들을 끝없이 무한하게 저지를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이 땅에서 보았던 가장 악한 자보다 더 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끝없이 악을 행하는 완전한 악인들의 장막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살아있는 양심으로 인하여 지독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지옥은 하나님이 자비 가운데 베푸시던 모든 일반 은총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 배불리 먹던 음식도 없을 것이며, 따스한 집도, 아름다운 가정도 사라질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도 없으며 오직 있는 것은 불못과 벌레들뿐입니다. 그 어떤 선한 것과 좋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런 즐거움이 없을 것입니다. 오직 저주와 증오와 미움과 더러움과 무서움과 어둠과 영원한 형벌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지옥은 아무런 먹을 것이나 따스함이나 즐거움이나 아름다움이나 행복이나 자비나 사랑이 없는 가장 무서운 곳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을 아는 황홀한 지식들, 주의 영광의 얼굴을 보는 즐거움, 주를 사랑할 때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희열, 우리를 향한 주의 무한한 사랑에 대한 감사, 주님 안에서 누리는 계속되는 기쁨, 강물같이 흐르는 위로 등, 이 모든 것을 영원히 잃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이 다 제거됩니다. 지옥에 있는 인간들 역시 여전히 인간이기 때문에 지정의와 영혼이 있지만, 심지어 예수님의 심판 이후에는 몸도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마귀와 방불한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셋째는, 거룩한 천사들 및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과의 친교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친교는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는 친교가 아닌 것은 위장된 이기심일 뿐입니다. 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본성적으로 이기적인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자들은 하늘 천사들 및  영화롭게 된 영혼들과 사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천국의 행복한 영혼들과 함께 하지 못하며 그 대신 악한 존재들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하게 되는 존재 중에는 마귀와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와 악령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끝없이 악한 악인들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죽음을 통과하자마자 자신들이 얼마나 귀한 것을 잃었는지 분명히 알게 됩니다. 지금 불신자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들의 것인줄 착각하고 의로운 척하며 교만을 감추고, 정직한 척하며 위선을 감춥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어도 전혀 탄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일들과 거룩한 공동체의 귀중함을 느끼지 못하며, 그러한 것들이 없어도 잘 먹고 건강하고 돈이 많고 동료들이 있으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지옥이 임할 때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잃은 것이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 때 결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영원토록 후회하며 탄식하는 곳입니다.

저주를 받는 자들의 이해력은 죽음을 통과하면서 여러 착각에서 벗어나 분명한 이해를 하게 됩니다. 현재 그들은 영원한 세상을 위해 수고하는 것보다 현재의 눈에 보이는 영광과 재물과 쾌락과 건강과 이 세상의 삶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과하여 다시 깨어날 때는 실제로 지옥을 겪게 되면 후회하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시하던 그들은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할 말이 없게 될 것입니다. 주께 드리는 예배를 혐오하고 조롱하던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핑계를 댈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다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말문이 막힐 것입니다. 그 날이 되면 왜 아들의 말을, 친구의 말을, 아내의 말을, 목사의 말을, 이웃의 말을 조심스럽게 듣지 않았는지에 대해 가슴을 치며 영원히 후회할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지나자마자 지옥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들의 슬픔은 더욱 무한하게 커질 것입니다.
 
그들이 백치와 짐승들처럼 영원히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그러나 죽음과 함께 그들은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그때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들은 이 땅에 있을 때 천국과 지옥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맘이 편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아쉬움과 후회도 없었습니다. 또한 천국과 같은 실제 장소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소망도 갖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세상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지옥에 들어가지 않고 천국의 영광을 준비할 기간이 있었지만, 도리어 그 기간에 죽도록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죽음을 지나면서 사실 그대로를 알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보이는데 자신은 이미 지옥에 와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모든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지옥에 떨어지면 그들의 양심은 완벽하여지고 깊어지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양심이 부패할수록 마음이 덜 불편할텐데, 지옥에 떨어지면 양심이 철저하게 살아납니다. 그리고 살아난 양심은 그 사람을 무한하게 괴롭힐 것입니다. 양심의 고통으로 인해 자살하여 또 죽고 또 죽고 또 죽고 싶을지라도 지옥에서는 영원히 죽을 수 없는 곳이니, 완전하여진 양심 때문에 무한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때 그들의 감정은 더욱 생생하여질 것입니다. 모든 감각이 다 살아날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지나면서 청천벽력처럼 두려움에 떨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감각은 완벽하게 예민하여지고 감정이 철저하게 살아나게 되면서 공포의 두려움과 함께 무한한 슬픔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자신들을 탓하며 꾸짖겠습니까! 얼마나 자신들이 이 땅에서 가졌던 미친 광기에 대해 분노하겠습니까! 남을 탓할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따라서 지옥에 들어간 자들은 무한한 자책과 자기 학대에 빠지게 됩니다. 스스로 가슴을 찢으며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무한한 형벌을 가하는 집행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 요인은 바로 자기 자신의 불신인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자기 외에는 미워할 대상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형벌 집행자들이 되어 자신에게 형을 가합니다. 그 자책이란 무한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죄악의 직접적 요인은 사탄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불신의 죄 값을 자신이 치러야 합니다. 이때 그들의 감각과 감정이 돌로 변하여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옥에서 잠이라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곳에서는 일초라도 잠을 잘 수 없고 영원히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감각의 둔함은 사라졌습니다. 생생한 감각과 느낌으로 영원한 불꽃의 영원한 고통을 영원토록 생생하게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억력도 죽음을 지나 깨어나자마자 더욱 확장되고 강하여질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모든 죄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날 것입니다. 지은 죄악을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날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의 모든 죄가 기억이 날 것입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자신이 지은 죄악들을 하나둘 끝없이 입술로 반복하며 말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죄악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날 것이며 더러운 마음과 동기도 다 드러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죄악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핑계하며 거짓을 말하였지만, 지옥에서는 모든 죄악이 기억나고 양심의 가책이 무한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죄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의 분명한 기억력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한한 고통을 줄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악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양심 앞에서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때 그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그때 내게도 천국을 얻을 공평한 기회가 있었구나. 내가 세상에 있을 때 만일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나도 지금 천국을 소유하고 있을 텐데, 저 복된 성도들 가운데 있을 텐데, 그때 나는 주의 경고를 업신 여기더니 이제 이렇게 저주 받은 악령들과 함께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구나. 주께서 내 앞에 영생과 영벌을 두었건만 나는 지옥을 선택했으니 이 고통을 당함에 대해 내가 핑계할 것이 없구나. 내 앞에도 달려가 잡을 수 있는 상이 놓여 있었건만, 그래서 노력했다면 나도 영원한 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믿음을 갖고 용감히 싸웠더라면 승리를 얻어 면류관도 받았을 텐데, 다 놓쳐 버렸구나!” 

“나도 한때 나를 도우시려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한 적이 있었지. 나도 한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세상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지. 나도 하나님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한 적이 있었어. 뿌리 깊은 정욕의 유혹으로부터 돌아선 적도 있었구. 오랜 옛 친구들을 버리고 경건한 자들과 함께 한 적도 있었지. 그러나 왜 나는 마음을 바꾸어 언약을 저버렸을까! 나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뻔 하였는데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붙드느라 영원한 구원을 발로 다 차 버렸도다. 아! 도대체 내 마음 속에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내가 지금 천국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천국을 소유할 수 있었는데 마귀와 세상에게 속아서 다 잃었구나! 계속 주를 따랐다면 나도 지금 성도들과 함께 저 복된 천국 자리에 있을 텐데!”

그들은 자신들이 잃은 천국을 기억할 때마다 대단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며 살았던가. 만일 그 기회들을 붙잡았다면 지금 행복을 누릴 텐데! 오, 비참한 사람아!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에 천국과 지옥을 연구해볼 시간이 없었더냐? 영원을 위해 수고할 시간이 그렇게도 없었더냐? 먹고 마시고 실컷 자며 게으른 시간이 있었고, 또한 틈이 날 때마다 쾌락을 추구할 시간은 많았어도 어찌 네 영혼을 구원할 시간은 없었더냐? 흥청망청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시간은 그렇게 많었어도 어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시간은 없었더냐? 성경을 들춰보아 구원의 복음을 접할 수만 있었다면! 오, 귀중한 시간이여! 그때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을 가질 수 없도다. 시간이 너무나 많아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었는데, 지금 그 시간은 다 사라지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구나. 오, 다시 딱 일 년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정말로 신속하게 회개할 텐데! 간절히 기도할 텐데! 부지런히 주의 음성을 들을 텐데! 내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할 텐데! 예수님이 누구신지 다시 알아볼 텐데. 그러나 너무 늦었구나. 아아! 너무 늦었구나.”

그들은 주께서 얼마나 자주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권면을 하였는지를 기억하면서 더 많은 비참을 느낄 것입니다. 
“그 목사가 나로 하여금 이러한 고통들을 피할 수 있게 한 것이로구나. 그는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내게 권면했었지! 그러나 나는 그 권면을 농담으로 여겼도다. 그가 얼마나 나를 설득하려 했던가! 그럼에도 나는 그의 모든 설득을 묵인해 버렸지. 내 친구들이 얼마나 내 마음을 열려고 애를 썼던가!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의 죄악 됨을 알고 싶지 않아 마음의 문을 닫았었다. 오, 그때 내가 그리스도께로 진심으로 돌아섰다면 그 목사가 얼마나 기뻤을까! 내 친구들이 꾸짖으며 경고할 때 돌아섰다면 …  그러나 나는 그들을 믿지 않았고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또한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낮추시고 내게 찾아오셔서 권면하셨던가! 성령께서는 얼마나 내가 그를 부인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나와 씨름 하셨던가! 그리스도께서는 매주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죄인이여, 문을 열라. 네 맘을 구세주께 열라. 그러면 내가 네게 들어가 너와 함께 먹으며 너는 나와 함께 하리라! 왜 지체하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헛된 망상 가운데 거하려느냐? 이제 시간이 없으니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어 행복을 누려야 하지 않느냐? 당장 그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라고 소리치셨다! 그런데 나는 만왕의 왕이신 그분을 천대하며 거절하였구나!”

“내가 꼭 그리스도의 인내를 업신여겨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천상의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을 때 내가 꼭 그분의 수고를 헛되게 만들어야 했던 것일까? 그분이 오셔서 얼마나 내게 지겨울 정도로 ‘회개하라. 돌아오라’고 외치셨던가! 오, 그분의 인내를 끝까지 무시하더니 이제 이렇게 거부할 수 없는 무서운 진노를 당하게 되었구나. 주께서 내게 ‘깨끗하여지지 않겠느냐. 언제 깨끗함을 받으려느냐?’라고 외치실 때, 내 마음과 내 행동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으니! 이제 나는 ‘절대로,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지옥에 떨어져 있으니 아무 할 말이 없고 따질 것이 없구나!” 

더욱이 그들이 지옥의 비참을 얼마나 쉽게 피할 수 있었는지를 기억할 때는 그 기억은 그들에게 가장 뼈아픈 고통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할 일은 산을 옮기거나 나라들을 정복해야 하는 불가능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의 일획까지라도 완전히 이루어야 하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으며 모든 행동에서 완전한 공의를 세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지옥을 피하여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쉽고 가벼운 짐”(마 11:30)을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짐은 단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주님을 진심으로 구세주와 왕으로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짐은 이 세상의 욕망을 거절하고 주님을 최고의 행복으로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그 짐은 나의 더러운 죄성을 거절하고 그 대신 주의 온유하시고 자비로운 다스림에 순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짐은 내 주관대로 사는 길을 내려놓고 주의 거룩하고 즐거운 길로 택하여 걷는 것이었습니다. 

지옥의 고통을 받는 그 가련한 영혼은 계속 후회합니다. 
“아, 이 고통을 피할 수 있었던 그 간단한 방법을 거절하다니! 그 은혜로운 제안을 거절할 때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주님을 고약한 주인이라고 불렀고 주를 맘껏 섬길 수 있던 순간들을 속박이라고 여겼다. 그 대신 나는 마귀와 정욕을 섬기는 것을 참 자유라고 착각했었지. 내가 하나님의 거룩한 길을 못마땅한 규칙이라고 판단했을 때 과연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나치게 엄격한 것으로 생각했고 내세를 위해 무엇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리석음이라고 여겼었다. 하물며 주께서 하신 부탁이 기껏 ‘믿고 구원을 얻으라. 내 얼굴을 찾으라. 그리하면 네 영혼이 살리라.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영생을 주리라’ 하신 것인데 천국을 놓쳐버렸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고! 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은혜로운 제안이었고 가장 쉬운 조건들이었는데! 이 저주 받은 가련한 나는 그러한 제안을 받지 않고 죽는 그날까지 고집을 부리며 거절하였도다!”

또한 그들은 잠시의 쾌락을 위해 천국을 잃고 지옥에 떨어진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끝없이 탄식할 것입니다. 
“이러한 더러운 쾌락 때문에 내 영혼과 천국을 팔아먹었다니! 오, 이 비참하고 어리석은 중생아! 이런 더러운 이득을 위해 네 영혼을 팔아먹은 것이란 말이더냐! 이 더러운 쓰레기를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천국을 버렸다는 말이냐! 가룟 유다처럼 한 푼 때문에 구세주를 판 것이더냐! 땅에서 잠깐 맛보던 쾌락은 이제 쓸개즙이 되었고 내가 마시던 술잔은 구더기로 가득 찼도다. 이제 쾌락들이 사라지고나니 내 즐거움도 다 끝이 났구나. 나는 도대체 얼마나 정신 나간 사람이기에 썩을 것을 위해 영원한 보화를 버렸단 말인가! 온 세상을 다 얻는다고 하더라도 내 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아! 나는 온 세상이 아니라 이 더러운 쓰레기를 위해 천국을 포기하였구나!” 

한 차원 더 나아가 그들은 그 저주스런 파멸을 향하기 위해 많은 대가와 고생을 치렀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그들의 양심의 상처는 더욱 깊어갑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멸망을 재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과 마음과 수고를 드렸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성령을 대적하였고, 자비의 힘과 심판의 힘,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마저 끝까지 대항하여 완고함으로 하나님을 이기었습니다. 스스로 양심을 묵살했으며 적극적으로 죄악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면서도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갔고, 주께서 당장 그들을 지옥 불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을 대적하였습니다. 즉, 스스로 저주 받기 위해 그러한 많은 수고를 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대신에 멸망을 받기 위해 수고하며 인생을 살았습니다. 분노와 복수심과 시기와 질투가 자신을 괴롭히며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을 알면서도 더욱 분노와 복수와 시기와 질투를 밀고 나갔습니다. 또한 더러운 행위들은 그들의 몸과 신분과 명성을 망가뜨리는 것을 알면서도 쉬지 않고 밀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악한 일들이 무서운 결과들을 초래할 것을 깊은 본성 가운데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고통스런 결과를 감수하겠다고 떵떵거렸습니다. 이제 그들은 지옥에 떨어져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방자함과 거만과 교만의 결과를 먹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옥에서는 오직 자신을 향해 분노하게 될 것이며 탄식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영원히 자신을 향해 그리고 그를 미혹한 마귀들과 불신앙의 친구들을 향해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너희 구원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이루라”(빌 2:12)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누구든지 주님과 교제하며 사랑하며 순종하면 천국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새언약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은혜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언약으로써 누구든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세상의 쾌락과 명예에 속지 말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위해 살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더 늦기 전에 지옥으로 향하는 자들을 돌이키기 바랍니다. 물론 그들은 불신과 고집으로 여러분을 대적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 후에 영원한 멸망에 들어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그들을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사랑과 기도 가운데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옥은 상상이 아닙니다. 천국의 기쁨이 무엇인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또한 지옥의 고통에 대해 모든 인간이 본능적으로 다 의식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옥과 천국이 각각 실제한다는 뚜렷한 증거입니다. 더 늦기 전에, 지옥에 떨어지기 전에 주 앞에서 회개하고 천국의 왕이신 주님께 순종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과 동일한 사람으로 천국 또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영원한 감사와 안식, 아니면 무한한 저주를 온 인격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과 영원히 함께 있고자 천국에 들어가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위 설교는 리차드 백스터 및 여러 청교도 신학자들의 지옥에 대한 생각들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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