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4:1-5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3. 야빈왕은 철병거 구백승이 있어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번성의 상징 종려나무

대추야자나무로 불리는 종려나무(תָּמָר 타마르)는 광야와 사막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이다. 이 나무는 최고 30m까지 자라며 종려나무잎은 3m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열매는 한 나무에 5-8 송이가 달리는데, 한 송이의 무게가 약 5-10kg 정도이므로 한 송이에 얼마나 많은 대추열매가 열리는지 알 수 있다. 

시편 92편12절 이하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종려나무는 번성의 상징이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시 92:12-15)

여자의 이름에 "다말"(종려나무)이라는 이름을 흔하게 붙인 이유는, 다말(종려나무)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인데, 종려나무는 비록 불에 타서 죽은 것 같아도 다시 싹이 나서 자라므로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성경 역사와 관련하여 여사사였던 드보라는 종려나무 아래 거하며 이스라엘 자손들을 재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삿 4:5) 사사기에는 사사가 12명이 나온다. 성경에서 숫자 12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충만한 숫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스라엘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아들 12명을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셨으며 신약에서는 12명의 사도를 통하여 역사하셨다. 그리고 본문 사사기에서는 12명의 사사를 통해 역사하심을 보여주셨다. 그 12명의 사사 가운데 한 명의 여자 사사가 있었으며 그녀의 이름은 드보라였다.

드보라의 종려나무

드보라의 히브리어 '데보라'(דְּבוֹרָה)는 '꿀벌'(bee)이라는 뜻으로 '말하다', ',선포하다', '약속하다' 등을 의미하는 '다바르'(דָבַר)에서 유래했다. 재미있는 것은, 종려나무의 열매인 대추는 무척 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즉 벌과 꿀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사사기 4장5절에서는 "드보라의 종려나무"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드보라(벌)의 종려나무(꿀)"는 하나의 셋트를 의미한다.

'드보라(벌)'라는 단어가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였다.

"그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를 마주 나와서 벌떼(bees) 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미친지라"(신 1:44)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bees)와 꿀이 있는지라"(삿 14:8)

가나안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며 또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신 11:11)이라는 의미는, 목축을 통하여 젖을 양식으로 얻으며, 농사짓는 수고를 많이 하지 않아도 오아시스에 가면 종려나무에서 열리는 꿀같은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꿀'에 대한 또다른 이해는, 당시에 대추야자와 무화과와 포도 등의 열매로 만든 시럽을 '꿀'이라고 불렀다. 즉 그 땅은 농사짓기에 척박한 땅이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해야하는 땅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종려나무에서 열리는 대추 열매는 꿀처럼 달아서 신명기 8:8에 기록된 7가지 소산물 중에 마지막에 있는 '꿀'은 대추야자 열매를 맺는 종려나무를 말하는 것이다. 즉 가나안의 7가지 소산물은 봄에 거두는 2개의 곡식(밀, 보리)과 5개의 여름과실(포도, 무화과, 석류, 올리브(감람), 대추야자(종려나무))이다.

특히 성경에서 '꿀'은 두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라며 주의 말씀을 꿀에 비유하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의 '꿀'은 소제를 드릴 때에 누룩이나 꿀을 넣지 못했는데, 이는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보라의 종려나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쓰인 것으로, '드보라'가 '말하다', '선포하다', '약속하다' 등의 뜻을 갖고 있는 '다바르'(דָבַר)에서 유래한 만큼 '종려나무' 역시 "꿀송이처럼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드보라의 종려나무"란, 꿀송이처럼 달콤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며 가르치는 곳을 말한다.

성경은 '꿀'이 상징하는 '말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잠 16:24)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겔 3:3)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아 4:11)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 10:9-10)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아 5:1)

아무리 좋은 꿀이 있어도 그것을 찾지 못하고 먹지 못하면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또한 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꿀벌의 노력이 필요하다. 보통 꿀 1kg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꿀벌은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에 의해 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꽃과 나무 주변에는 항상 꿀벌이 있는 것이다.

드보라의 종려나무가 바로 그런 것이다. 드보라는 여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말씀을 무시하며 살고있을 때에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고자 했기에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에서 지도자로서 쓰임을 받았던 것이다.

영적 남자의 의미

성경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고 전하는 자를 남자(זָכָר 자칼: remember, call to mind)라고 한다. 따라서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영적으로 아직 남자가 아니었으며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그 말씀을 전하였기에 영적으로 남자였던 것이다. 즉 복음을 받아 기억하고 전하는 자(씨를 뿌리는 자)를 남자라고 한다. 복음을 듣지 못했거나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그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남자가 아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육으로는 여자였으나 영으로는 남자였기에, 소위 육으로 남자라고 하지만 영으로 여자인 자들을 가르치며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딤전 2:12)

사도바울이 언급한 앞의 말씀들은 다음의 고린도전서 11장1~3절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이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신부(여자)인 교회에 말씀을 전해주었으며, 그 말씀을 들은 이들이 또 사도바울처럼 그 말씀을 기억하며 지킨다는 전제를 깔고 그러한 이들이 남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기억하고 지키는 각 남자들에 대해 먼저 언급한 것이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즉 진짜 남자라면 목베임을 당한 자(자기 부인)로서 그들의 머리는 그리스도여야만 하며 그리스도의 명령만 듣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라는 말이다. 그리고나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라고 했던 것이다.

당시에 가나안의 왕 야빈이 철병거 9백승이나 갖고 있었으며 20년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성막 안의 기물 중에는 철이 없다. 따라서 철병거를 갖고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세상을 말한다. 즉 이스라엘은 세상의 철의 세력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은 소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단의 회'인 유대인과 바리새인과 같은 교회 안에서 종교에 열심인 자들에 의해 핍박을 당한다. 예수님을 종교 지도자들이 죽였고 스데반을 비롯한 기독교인들을 종교에 열심이었던 사울이 핍박한 것처럼 영적으로는 여자이면서 남자인 줄로 착각하는 이들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핍박을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자기들이 추구하는 우상 하나님을 만들어 가르치며 섬기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몽둥이로 그들을 징계하신다. 타락한 남한을 김일성의 3대세습이라는 방망이를 통해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듯.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3:29)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들은 고통을 당해야만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우리의 체질을 우리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에게 채찍과 방망이를 드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세상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므로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서있는 드보라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셨다. 

드보라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선포하며 이스라엘의 모든 일을 재판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말씀 안에 거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일을 재판하며 지시할 수 있었다.

드보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다가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1만명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이기게 해주실 것이라고 하는 데도 바락은 드보라에게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라며 전적으로 드보라를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때 드보라는 함께 갈 것이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그의 근심을 덜어준다. 그러면서 그 전쟁에서 지휘관은 바락이지만, 그 싸움을 끝낼 사람은 한 여인이라고 말한다. 

드보라의 예언대로 그 전쟁은 헤벨의 집에 들어간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죽이므로 승리로 끝났다. 사사기 4장은 육으로는 연약한 여인이지만 영적으로 강건한 남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승리의 역사를 써나가시는 지 그리고 비록 육으로는 남자이지만 여사사 드보라가 선포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한 겸손한 바락이 있었기에 그 전쟁이 승리로 끝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드보라의 종려나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겸손히 그 말씀만 의지하고 순종하는 가운데 말씀을 선포하는 자와 듣는 자가 서로 합력할 때 선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적용]

'드보라'라는 꿀벌이 '종려나무'라는 꿀을 얻기 위해, 즉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그 말씀의 맛을 알기 위해서는 꿀벌이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녀서 1kg의 꿀을 얻은 것처럼 산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라는 고백이 흘러나오기까지 그러한 연단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고백을 하며 말씀을 선포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될까?

오늘날 자신의 명예와 물질을 얻기 위하여 정치하며 돌아다니느라 너무 바쁜 목회자들이 많다. 예수님의 제자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많은 이들이 한 사람의 제자보다 수많은 교인을 원한다. 그들이 거듭나지 않아서 성도가 아닌 교인으로 평생 교회만 다녀도 상관이 없다. 자기 자신도 제자가 되지 않아서 말씀의 맛을 모르는데 어찌 제자를 삼을 수 있겠는가?

성경을 연구하기는 커녕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이들의 설교를 대충 보고 들은 것에 교인들이 듣고싶어하는 이야기를 가미하여 영양가는 둘째치고 마약이 들어간 달콤한 설교를 하면서 서서히 교인들의 영혼을 죽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동안 들어왔던 수많은 설교와 가르침이 잘못된 것들이 너무나 많은데, 성경을 연구하지 않으니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고 계속해서 쓴물을 마시게 하며 이세벨이 들고있는 잔 앞에 줄을 서서 취하게 만들고 있다. 거짓 선생들인 황충들이 득실거리는 가운데 교회가 생수가 솟아나는 우물이 아니라 무저갱이 되어서 연기만 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백처럼, 주의 말씀이 생수처럼 솟아나는데 그것을 전하지 못해 안타까와 하는 목회자와 교회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읽고 듣고 가르치며 행하는 자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진정 '드보라의 종려나무'인지 지금 돌아보자. 그리고 벌이 꿀을 얻기 위하여 평생 온몸을 바치듯 목회자들을 비롯한 왕같은 제사장인 모든 성도들은 지금껏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진정으로 영적 남자가 되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땅끝까지 주의 복음을 전하며 제자를 삼는 자들이 되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4, 16)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3-17)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꿀송이보다 더 달콤한 주님의 말씀으로 때를 따라 먹여주셔서 저희의 영혼을 살게 하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저와 저희 교회가 주님의 말씀보다 인본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고 따라갔던 것을 회개합니다. 그 동안 저희 교회가 해왔던 인본주의적인 모든 기획과 선교라는 명목으로 장사하며 신앙도 없는 유명인들을 끌어들인 것 등 연기만 나는 무저갱에서 오직 말씀인 생수가 넘쳐 흐르는 우물이 되도록 새롭게 변화시켜 주옵소서

4)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잘못된 말씀, 빼거나 더한 말씀을 전하며 들으며 그것이 틀린 줄도 모르며 살아가면서 바르게 말씀을 전하는 이를 손가락질하며 핍박했던 것을 고백하오니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5) 저와 저희 교회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교회들이 주의 말씀보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가며 세상 종교와 다름없이 종교인으로 만족하며 살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방망이를 드셨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육체의 즐거움을 좇아갔던 것을 회개하오니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제는 종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말씀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인도하여 하옵소서

6) 드보라의 종려나무처럼 꿀 1kg을 얻기 위하여 벌이 수백만 송이의 꽃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주의 말씀을 아무 노력없이 거저 먹으려는 도둑놈 심보와 게으름을 버리고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주의 음성을 들었던 사무엘처럼, 주님의 발앞에 앉아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처럼 겸손히 주의 앞에 나아가므로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그 깨달은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라고 고백하며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예레미야의 심정으로 전도자의 사명을 다하는 영적 남자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7) 저희 가정과 교회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역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갖게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저희가 저희 생각대로 판단하며 심판하며 무엇을 이루려는 교만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므로 드보라와 바락이 합력하여 승리를 거둔 것처럼 피차 겸손히 섬겨주는 가운데 선을 이루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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