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79) - 시편(5)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 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시137:1-3).
시편은 들으면 들을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시편 기자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이 비슷하고 시를 따라 가다보면 영혼의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인생의 여행의 여정을 보는 것 같다. 고난에서 울부짖는 시인의 모습에서 시인이 간절히 기도하니 하나님이 들으신다. 그리고 우리의 탄원을 보시고 구원하셔서 상황이 바뀐 것에 우리가 감사하고 찬양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이는 한편의 드라마, 명시를 보는 것 같다. 고대부터 시편을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이 다양했다.
시편을 종말론적으로 메시아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향은 초기 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편은 처음부터 예배시에 교회(회당)에서 사용되었던 예식시이다. 그러나 시편 본문에서는 그러한 근거를 거의 찾을 수 없다. 시편에서 미래에 대한 말을 내포하고 있지만 본문에서 조차 독자는 종말론적으로 해석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우주적인 전망 때문에 예언약속의 특징적인 공식들이 부족하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 날에”, 이와 유사한 어구들이 그렇다. 이것은 메시아적 구속사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시편 22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이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22:1),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시22:14).
19세기에는 시편의 역사적 해석이 널리 수용되었다. 시편의 기원을 나타내는 말의 시대를 추론하여 시편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시편의 역사적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 그러나 불가능해보였다. 왜냐하면 시편들이 일반적인 다소 공식적 언어로 구체적인 경우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전형적이고 도해적인 사건과 같은 개별적인 상황은 묘사될 수 없어서 주어진 시편은 변화된 상황에서 여전히 기도하고 있고 탄식시나 찬양시의 시어로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편기자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이런 일반화하고 공식화시킨 이유로 시편의 연대는 거의 불확실하고 논쟁적이다. 오직 시편 137편만이 확실히 바벨론 포로시대라는 것이 분명하다. “바벨론 강가에서 우리는 앉아 울었도다.” 그러나 다른 시편들은 거의 모두 포로기전 시편으로 정해질 수 없다(둠 주석). 또는 포로기 이후 시편으로도 간주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몇몇 시편이 포로기전 시편으로 본다(예, 시편2, 24, 29, 45-48, 93, 110편). 다른 시편들은 포로기 이후로 본다.
다음 시편의 양식 비평적 해석이다. 일부 선구적 연구자가 있더라도 궁켈의 연구 업적인 양식비평은 모빙켈이 자신의 제의 역사적 해석으로 발전시킨 것에 기본적 입장을 제공한다. 모빙켈(Mowinckel)은 시편을 제의 노래로서 이해한다. 그리고 제의 그 자체가 왕의 즉위 축제에 중심이 되는 거룩한 드라마로서 이해한다. 그러나 시편의 제의적 해석은 종종 불확실하다. 시편의 제의적 해석의 근거가 너무 약하고 이스라엘의 제의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우리가 두 개를 조화롭게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출23:14이하).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출23:14,17). 대부분의 시편이 탄식 시편이나 탄원(간구)시편이지만 표제어나 송영들이 본문에 찬양시로 삽입되었다. 시편기자는 제2 성전 공동체의 찬양집으로 묘사하는데 정당화하였다(벨하우젠). 그러나 후기 시편들은 공공 예배에서 유일하게 사용하기 힘들었다. 개별시편으로서 “개인시”의 기도자들에게 사용되었다(예레미야애가 같이). 어떻든 우리는 시편의 기원과 후기 적용시기 사이에 첫 번째 시기나 두 번째 시기(home) 사이에 구별해야만 한다. 혹은 시편의 전체 수집 중에 포로기 이후 제의(의식) 시편의 경우에서처럼 말이다.
시편의 문체(어휘)-문자적 해석이다(M. Weiss). 이 어휘 문학적 해석은 개별 시편이 예술(문학)이나 언어적 구조적 통일성을 가진 시편의 개별적 저작으로서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인의 창조적 노력으로서 원래 시편 자료에 관심을 돌릴 때 전승에 의해 내려온 실제의 중요한 영향을 준 기사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실패하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시편을 전승사적 접근으로 적용하려고 한다. 그 방법은 오경을 다루는 데는 많은 결실을 거두었듯이 본문의 설명에 있어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이해하려 한다. 동시에 시편의 변화된 상황에서 기인한 다양한 층(구두단계나 혹은 문서층)을 구별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면 시편의 다양한 의미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시편의 해석은 하나님이 들려주는 영적 해석을 통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비밀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힘과 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찌어다‘(시6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