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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합시다.

에베소서 5:25-30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성령 강림 사건은 나사렛 예수님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증거합니다. 즉, 지금 우리가 받은 성령은 만유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부활의 영이시기에 우리의 승리와 부활을 보장하며 나아가 영원한 기업을 보장합니다.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부활을 의미함).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 5:4-5).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또한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2천여년 전에 보내신 성령님은 지금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 역사하며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입술과 삶으로 고백하며 살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여 주 예수님의 통치가 나타나 본인들은 천국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게 하시고 나아가 세상을 향해서는 거룩하고 의로운 삶의 영향을 나타내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임하신 후 성도들이 예수님을 향해 고백하는 ‘주’라는 고백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나사렛 예수님은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이으신 영원한 왕이 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또한 나의 삶과 모든 영역에서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에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성도들은 자신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따라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충분하고 넉넉하게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을 따라 행하는 삶입니다.  

이에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보면, 바울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고 말합니다. 즉,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성도의 특징은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요 또한 마지막 아담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나아가 모든 만유의 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알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처럼 참된 성도의 특징은 나사렛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삶에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우리의 속 사람을 강건하게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을 따르는 자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아이든 노인이든 빈부귀천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참 성도는 실로 예수님을 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번 설교를 통해 무엇보다 먼저 아내가 남편을 머리로 삼고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배웠습니다. 그 진리가 얼마나 자명한지 바울은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을 절대 진리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부터 끄집어내었습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 5:22-24)

그런데 오늘 본문은 남편을 향해 주께서 내리신 지시를 알려줍니다. 모든 만물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성령 충만한 삶의 모습을 남편들에게 지시하며 명하십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엡 5:25). 

그리고 이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또다시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주의 몸의 지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여줍니다. 30절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이라”(엡 5:30). 

그러므로 남편들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참으로 믿고 시인한다면 아내를 사랑하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주께서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고 이는 예수님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참 믿음이 있는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그 귀한 최고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끔찍한 죄를 짓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에 우리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성들이 결코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도록 해서는 안 되며, 도리어 그들은 노골적으로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자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남편들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성령을 따르는 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특히 아내를 사랑하는 문제는 만유의 주 되신 그리스도를 향해 순종할 것인지 불순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의지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정확히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남성들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문제를 일반적으로 자신의 순종과 불순종의 의지 문제로 보기 보다는 무작정 아내의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아내를 탓하는 그 죄성은 남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아내를 택함으로 생겨난 죄성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남성을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을 내리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남자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리스도를 닮아 거룩하여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아내의 조건 및 상태와는 무관합니다. 남성의 가장 큰 죄성은 이기심과 거만함과 착각인데 자기 아내를 사랑함으로써 그러한 죄성을 벗어 던지고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닮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내를 향해 주의 뜻대로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남자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게 되면서 아내의 존경과 자원하는 순종을 얻는 최고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불신자들을 보면 남편과 아내 관계가 원앙처럼 좋은 부부들도 많은데 그러한 좋은 관계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부의 좋은 관계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의 기준은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아내 사랑은 조건적이며 아내의 반응에 따른 상대적인 사랑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아내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불신자의 아내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남성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하는 크고 높은 고귀한 목표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상적인 기준 때문에 아내를 향한 남편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영의 도움과 인도함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그리스도인 남성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의지를 동원하여 그리스도의 영을 따라야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으로서 불신자들이 육체를 따라 사랑하는 본능적인 사랑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인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아내 사랑, 곧 그리스도의 교회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께서는 그러한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으니, 모든 남편들은 아가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은 자연의 본성을 따라서는 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성령의 역사를 의존해야 가능합니다. 따라서 주 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으로 충만해야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아내가 죄악을 범할 때에도, 실수가 많고 연약할 때에도, 나아가 남편을 원수처럼 여기며 대항할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시니 사랑합니다. 바로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 남편의 아내 사랑입니다. 

한편, 아가페 사랑은 언제나 영원한 언약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남편들 역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그 아내를 호흡이 마치는 그 순간까지 평생 사랑하기로 언약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 언약이 깨어질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조건은 아내가 먼저 불륜을 저질러 간음하였을 때입니다. 그 외는 아내를 버릴 수 없으며, 아내를 향한 아가페 사랑을 멈출 수 없습니다. 아무리 못생겨도, 아무리 힘이 없어도, 아무리 부족해도, 아무리 못나고 악해도, 심지어 병이 들어 커다란 짐만 되어도 그럼에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 남편의 기본 의무이며,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으로도 그렇게 해야 마땅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어도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받아들이고 새 출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 아가페 사랑을 실현하는 남편의 아내 사랑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그리스도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묵상하며 배운 남편들은 주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 그대로 아내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아내 사랑은 복음의 능력이 가장 많이 적용되어야 하는 부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아내에게 나타내는 남편이 바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남성입니다. 

이에 25절을 다시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실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받을 자격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근거한 사랑이기에 그 언약 때문에 교회를 무한하게 사랑합니다. 우리 역시 아내를 사랑함은 아내의 아름다움과 가치 때문에도 사랑하지만 우리의 사랑의 근원과 원인은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입니다. 이 사실을 잊거나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아내를 무시하는 것은 그 여인을 언약 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편, 26절과 27절을 보면, 아내 사랑은 무조건 아내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죄 가운데 있는 아내의 비위를 맞추어주는 것이 아내 사랑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남성들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더니 무조건 아내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오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 때문에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아내가 더욱 거룩한 영광에 이르도록 아내를 사랑하고, 진리를 위해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위해 아내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을 위해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커질 것이고, 아내를 아는 지식도 깊어질 것입니다. 또한 아내는 참된 사랑을 베푸는 남편의 사랑을 맛보면서 함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둘 모두가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가운데 함께 거룩하여지는 것이 정확하게 남편의 아내 사랑인 것입니다. 

이에 남편의 아내 사랑은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과 이어집니다. 즉, 남편의 언약적인 아내 사랑은 거룩한 목표가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는데, 그러한 사랑의 바탕은 아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조건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정리하면, 결혼하기 이전에는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부족함이 많았는데 결혼하여 함께 부부로 살아가는 동안 부부간의 언약적인 사랑을 통해 서로 순종하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함께 자라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남녀 간의 결혼을 제정하신 목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께서 그리스도인 남편에게 요청하는 사랑이 바로 이 위대한 언약적 사랑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예수께서 교회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참으시며 결코 변하지 않는 언약적 사랑으로 사랑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가 순종하지 않을 때에도, 예쁘지 않을 때에도, 병이 들 때도, 아내가 어떻게 하느냐와 상관없이 언약적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남편들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따라서 남편이 아내를 향해 언약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한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때 남편은 종종 자신을 쳐서 자기 의지를 주의 명령에 복종시켜야만 아내를 아가페로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남편의 사랑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남편들이 이 의무를 온전히 감당할 때, 엄청난 가정의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아내들의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아내들의 참된 존경과 순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되심이 무엇을 뜻하는지 희미하게나마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행복하고 안전한 가정을 세우게 될 것이며, 나아가 자녀들이 진심으로 부모를 존중하고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은 이 시대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되면서 영원한 보람과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남편의 사랑은 ‘언제’ 또는 ‘만일’이 없습니다. 무조건 내 아내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그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언약하였기 때문에 그 여인만을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아담처럼 하와의 말을 따름으로 아내와 가정이 함께 망하는 길이 아니라면, 또한 아내의 죄성을 두둔하며 키우거나 혹은 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내의 마음 속에 굴욕과 앙심이 생겨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반면, 가장 꼴불견이고 늘 실패하는 남성상은 권력과 돈과 신체의 힘을 의지한 채 자기 아내를 비참 가운데 굴복하는 노예처럼 취급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히 내 말을 안 들어?’라고 하며 말과 행동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속이 좁아져서 아내의 실수나 죄를 용서하지 못하고 멀리 남남처럼 떨어져 총각처럼 살아가는 것은 자기 아내로 하여금 증오와 실망을 무한하게 야기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반 남성들은 오직 고린도전서 13장에 언급된 아가페 사랑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이기심과 폭력과 유치한 행동으로 아내를 대함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치함과 치졸함과 이기심은 문제 해결은커녕 남편의 죄성을 더욱 드러내기 때문에 아내의 존경을 잃도록 되어 있습니다. 

끔찍한 사실은 모든 남성들은 아담의 피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잘못된 모든 것은 아내 탓이고 잘된 모든 것은 자기 덕이라고 주장하는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문제가 생기면 아내 탓을 하는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아서 하나님이 잘못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불상사가 발생했다고 따지는 존재가 바로 남성입니다. 남성들의 조상인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한 후 그의 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저)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그리고 그 피는 아담의 후손인 모든 남성들에게 흐르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러한 부패한 남성을 원위치로 돌려놓아 영광스러운 주의 자녀 되도록 하시려고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까? 그 해답은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첫째, 25절을 보면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합니다. 즉, 남편은 교회를 향해 자기 생명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해야 진정한 아내 사랑입니다. 이 시간 모든 남편들은, 그리고 장래에 남편될 모든 형제들은 마음 속에 다짐하기 바랍니다.  
“나는 아내를 위해 내 생명을 바칠 만큼 사랑하겠다. 아니, 필요하다면 내 생명을 바쳐 아내를 구하겠다.”

남성은 처음에 죄가 들어온 후 지독하게 이기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남성은 결혼 언약을 통해 아내를 사랑하는 훈련을 함으로써 그 이기심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형상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언약 가운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생명을 바치는 만큼 사랑함으로써 남성의 죄성이 제거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심지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분은 교회에게 안 주려고 감추신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은 아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남편들이 아내를 향해 가져야 할 사랑입니다.

둘째는, 28절을 보면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소중히 여김’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내 몸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아마 아무리 돈이 귀하더라도 암에 걸렸다고 하면 일을 잠깐 멈추고 병원부터 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보다 일보다 내 몸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십니까? 이 우주 가운데 최고로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분의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는 그리스도의 아내된 교회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의 마음 속에 그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은 내 몸인 ‘아내’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게 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 아내 몸은 남편 몸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은 남편들이 구체적으로 적용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항인데 남편의 마음과 삶에 있어서 아내의 중요도가 다른 것에 의해 밀려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남편에게 아내의 중요도가 첫째가 아니라 둘째, 셋째로 밀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아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 몸보다 소중한 것이 하나님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내 몸과 하나인 아내보다 소중한 대상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외에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마음에서 아내의 중요도가 밀리는 것은 남편들이 대단히 어리석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모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아내보다 중요하면 안됩니다. 취미활동이 아내보다 앞서면 안됩니다. 심지어 자녀를 사랑함이 아내 사랑보다 더 중요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담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온 세상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시고 각종 과일과 이루 말할 수 없이 재미있는 동물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동물들이 얼마나 착하고 잘 따르고 귀엽고 재미나겠습니까? 죄가 들어오기 전의 동물들은 사람과 매우 친했습니다. 동물들과 함께 노는 것이 얼마나 재미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아담의 마음은 항상 울적했습니다. 마음은 딴 데 가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아담이 외로워하는 것을 아시고 그의 갈비대로 하와를 만들어 선물로 주십니다. 바로 여자입니다. 아내입니다. 이때 하와는 아담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하와만 있으면 아무 것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돼지 수천 마리와 바꾸자고 해도 아담은 그의 아내를 돼지들과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은 하와만 있으면 행복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와였습니다. 

사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마음이 결혼하기 전 우리 남편들의 일반적인 마음이었습니다. 결혼 하기 전에 아내 될 여인의 중요도는 정말 생명처럼 귀중했습니다. 모든 것을 넘어서서 모든 관심이 사랑하는 그 여인에게 있었습니다. 자나깨나 그녀만을 기억하였고, 무슨 일을 해도 아내 될 그 여인을 기억하였습니다. 일을 하다가도 아내될 여인이 나를 필요로 하면 잠깐 일을 뒤로 하고 그 여인에게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아무런 비밀이 없었습니다. 즉,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사랑하는 그녀보다 더 친밀하고 더 가깝고 더 중요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마자, 아내의 중요도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남자의 마음 속에 하와 대신에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돼지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을 채울 수 있는 여러 과일들이 보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아내보다 더 중요해서 이제는 음식만 쫓아다닙니다. 어느새 그 남자의 마음 속에는 돈과 재미와 먹을 것만 보이고 하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아내가 병이 들든, 외롭든, 죽을 지경이 되든 상관없이 돼지들만 좇아 다닙니다. 돼지들이 그의 권력이 되고 돈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고귀한 최고의 선물인 하와를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잃으면 자신을 잃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존재 목적과 하나님이 주신 사명마저 저버리게 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부인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현대 남성들은 결혼을 인생 프로젝트로 생각합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마치 운전 면허를 따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프로젝트 하나 마쳤으니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즉, 결혼이라는 목표를 이루었으니 다른 목표를 찾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사업 성공일 수 있고 권력이나 세력을 늘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또는 자녀 교육이 새로운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느라 자연스럽게 아내에 대하여 관심을 잃습니다. 아내의 중요도는 밀려 나갑니다. 그러나 이런 남성은 가정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며, 불행의 원인입니다. 결혼 후에 게임과 도박, 술, 친구들에 미쳐서 총각 때처럼 사는 남편들이 있는데 그들의 어리석음은 하늘에 닿은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언약적 사랑을 제정하신 하나님은 결혼한 남편들에게 “네 아내를 네 몸같이 여전히 최고로 소중히 여기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부분을 남편들이 가장 흔하게 놓치기 때문에 우리 주께서는 더욱 반복하여 강조하십니다.  

이제 아내를 생각해 봅시다. 여인들은 일반적으로 결혼하기 전에 기대를 합니다. 결혼 전의 남편의 자세를 보며 믿고 기대하면서 결혼합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 남편의 희생적 사랑의 모습이 바뀌면, 여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치 속은 기분으로 평생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결혼 전 보다 결혼 후에 더욱 남편을 소중히 여기고 온 마음과 뜻을 가지고 사랑하고 섬깁니다. 그러므로 사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자신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아내를 보며 그 사랑이 불타올라야 하고 더 감사하여야 하는데, 이렇게 섬기는 아내를 노예처럼 여겨 버리면서 폭군처럼 변할 때, 아내의 깊은 마음 속에서는 실망과 좌절로 고통과 신음이 나오면서 심적인 갈등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남편이 아내를 어두운 곳에 방치해 버릴 때, 아내들은 그 마음을 둘 곳이 없어서 애완용 동물들과 장난감, 또는 자녀들을 통해 남편에게 받아야 하는 그 아가페 사랑을 받으려고 시도하게 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아내들의 가장 큰 죄성인, 남편을 향한 멸시와 불순종과 무관심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하와를 무너뜨렸던 마귀의 유혹이 또다시 우리의 아내들에게 뻗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가 무너지면, 그 가정은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사실 남편의 사랑이 멈춘 데 있고, 남편이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언약적인 사랑에 의하면 결혼 생활은 연애 생활의 연장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하여 온갖 헌신을 하는 아내를 향해 더 희생적인 사랑으로 감사하며 결혼 전보다 아내를 더 사모하고 연애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뜻입니다.

이러한 언약적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을 향해 믿음의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남편을 향해 존경이 깊어가면서 더욱 남편에게 진심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부는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고 있으니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광스러운 교회, 즉 영광스러운 아내를 만드는 것은 남편의 책임이라는 사실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소중함에 대한 우선 순위가 내려갈 때, 아내를 점점 우습게 여깁니다.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를 향한 말투도 경망스럽게 됩니다. 과거의 그 따스한 말투는 사라지고 아내를 노예나 식모 부리듯 말합니다. 신기한 것은 남편이 가정에서 아내를 영광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다른 모든 식구들 역시 그 여인을 소중히 여기지 않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불행한 가정의 첫 출발점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심지어 자라나는 자녀들도 엄마 알기를 우습게 압니다. 엄마에게 함부로 말하고 대듭니다. 모든 가정 식구들이 그 여인을 매우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남성은 아내를 마치 법적으로 허용된 창녀 또는 파출부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멸시와 푸대접은 모든 가족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되곤 합니다.

따라서 27절처럼 영광스러운 아내로 세우는 것은 남편의 책임입니다. 남편의 역할은 아내의 존귀함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의 아닙니까? 따라서 남편은 아내가 연약하고 실수가 많아도 아내를 세워 주는 것이 남편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만일 남편이 자신의 권위로 아내의 존귀함을 파괴할 때, 여인은 가장 천박해지고 가장 비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내의 성품과 인격적인 우아함은 아내를 향한 남편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남편이 아내를 영광스러운 존재로 세울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어떤 귀한 목사님께 어떤 남편이 찾아와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 남편은 ‘제 아내가 이렇게 못된 사람입니다’라고 고자질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결혼 전에도 그렇게 못된 사람이었습니까?”
“아니요, 그때는 착했지요.”
이에 영적으로 뛰어난 이 귀한 목사님이 정곡을 찌르는 말을 그 남편에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을 그렇게 못된 여인으로 만든 주인공은 당신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잠언 12장과 31장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주신 최고의 면류관과 가장 갚진 진주는 아내입니다. 곧, 남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아내인 것입니다. 따라서 남편들은 아내를 대할 때 하나님이 주신 존귀한 선물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멸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면 이 아내를 주신 하나님을 멸시함이요 하나님을 소홀히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한 남자를 향해 주께서 축복하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28절을 보면 남편들은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이는 남편의 역할은 아내를 돌보는 것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드리고 정성을 쏟습니다. 몸을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휴식의 시간을 갖습니다. 몸이 다치거나 아플까 봐 온갖 조심을 합니다. 위험 요소들을 멀리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내가 남편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여인의 몸과 마음과 영혼 상태를 매일 살펴서 건강하고 기분 좋고 그리고 안전하도록 보호하고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고통 당하고 비참하고 부족할 때 더욱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들은 예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가 연약할수록, 실수가 많을수록, 더욱 아내를 소중히 여기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한 아내가 늙어갈수록 더욱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결혼할 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한 언약적인 사랑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남성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영원토록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사랑할 때 남성은 자신의 최고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에 남편은 필수적으로 아내와의 관계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결혼을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남편이라는 존재가 언약적인 사랑을 파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장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특히 이혼은 자신의 몸을 둘로 자르듯 고통과 멸망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저버리는 것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아내 외에 다른 여인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남자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점수가 낮은 비열하고 천한 남성입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일들을 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어리석고 한심하고 악한 남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7계명과 10계명은 간음을 금하였으며 동시에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결혼을 벗어난 사랑의 유혹은 사탄이 만든 유혹이요 허상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절대 사탄에게 속지 말고 언약적인 사랑, 즉 하나님께서 주신 아내만을 죽도록 사랑하는 그 사랑 가운데 머무셔야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시는 아름답고 복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정은 영원한 하늘의 가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여자는 물과 같습니다. 여자의 인생은 어떤 남자의 그릇에 담길 것이냐에 따라 그 여인의 인생이 영광스럽고 아름다울 수도 있고, 아니면 언제나 수치와 굴욕을 느끼는 노예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여인도 마음이 바다 같이 넓고 풍성한 그릇을 만나면 매우 영광스러운 아내가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하고 배운 것도 많으며 최고의 미모를 가진 여인이라 할 지라도, 폭력적이고 바람둥이인 남성을 만나 결혼하면 그 여인의 인생은 평생 천박해지고 비참해 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남편들이여! 여러분은 그 누구보다 아내를 가장 잘 압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온갖 인생의 역경과 기쁨을 함께 나눈 친구이며 동역자입니다. 여러분이 울 때 아내들은 같이 울었고, 그 곱던 손이 쭈그러지도록 남편을 섬겼습니다. 머리에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고 그 곱던 몸매와 얼굴도 쇠하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남편을 믿고 자기 인생을 맡긴 아내들은 그 남자에게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들입니다. 이는 실제로 아내는 바로 하나님께서 남편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귀하고 곱던 아내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남편의 언약적인 사랑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마저 없다면, 그 여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영광을 남편의 어깨에 맡기셨습니다. 즉, 아내는 남자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남성 성도들에게 맡기신 최대의 사명입니다.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인정하는 자세로 나의 아내를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남편의 역할을 점검하며 새로운 각오로 주께 나아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녕 주께서 기뻐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거룩한 가정을 세워 가는 남편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thebloodof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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