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예산 오가면 좌방리에서 성장하셨고 일본 징용 갔다 온 동네 총각과 혼인 동네 방앗간에 신접살림 시작하여 좌방리에서 아들 넷 딸 하나 낳아 아들 둘 먼저 보내고 육이오 총성이 멎자 서울 청파동 범식이네 셋방으로 오셔서 효산이 낳고 남산이 또 낳아 남산이 페니실린 쇼크로 잃으시고 귀여운 금산이 얻어 마포 공덕동으로 이사 거기서 막내 예쁜 명희 낳으셨다 팔 남매 낳아 두 아이 보내고 육 남매 먹이고 입히셨다 오일육 후 한일협정 반대 데모 할 때쯤 전기도 없고 전화도 수도도 없는 관악구 봉천동으로 오셔서 동네 큰 우물 물동이 이고 지고 해서 밥 먹여 학교 보내고 아랫동네 봉천 시장 계명 약국 약 짓고 싸구려 푸성귀 돼지 뼈 사다 끊여 먹이셨다 명산 형 명남 누나 장가 시집보내고 박정희 대통령 죽고 데모 날 때 둘째 녀석 도망 다닐 때 속 많이 썩으셨다 그 철없는 충산이 통영 처녀에게 장가보내고 착한 효산이 장가보내고 잘 생긴 금산이 결혼시키고 명희도 짝 맞추어 보내고 정든 봉천동 감나무 집 재건축 사업에 내주고 얼마 안 되는 집 판 돈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신림동 연립주택 그다음 주공 아파트로 이사하셔 큰 아들과 같이 이제는 늙은 남편 섬기시다 선천성 장애아 딸 둘 낳은 불쌍한 막내딸 위해 안산에서 십 수년을 사셨으니 그때 어머님 진이 다 빠졌나 보다 다시 신림동으로 돌아와 사십 살 먹은 셋째 놈 먼저 가슴에 묻고 눈물로 사셨다 기둥 같은 좌방리 사내 남편도 쓰러져 용미리 납골당에 안치하고 가끔 앞 관악산 멍하니 바라보셨다 작은 아들과 같이 그 해 여름 옛날 사시던 청파동 효창공원 큰 고개 시장 만리동 고개 청파 초등학교 경복궁 다 돌아보시고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렇게 시원한 냉면 잘 드셨는데 그다음 해 누나와 같이 골이 쑤시다며 병원에 가신 그 날 그 날 의사 앞에서 고개 툭 떨구시고 돌아가셨다 아무 말씀 없이 그렇게 가셨다 고우시고 사랑 많으셨던 이 옥순 어머니 거대한 엄마 보고 싶은 크나 큰 엄마 걸으신 그 길 오늘 우리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