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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에 충실한 목사 10명만 있었더라도

어느 늙은 농부가 가축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물었다.

"우리 집 소가 어느 때는 제대로 걷다가 어느 때는 걸어가지도 못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의사가 소를 진찰한 후에 늙은 농부에게 의외의 제안을 한다.

"잘 들으세요. 빨리 소를 팔아 치우세요"

"아니, 병들은 소를 어떻게 팔라는 거요? 말 못하는 소가 얼마나 아프겠소. 우선 병이나 고쳐주세요.”

그러나 수의사는 소의 병을 고쳐줄 생각이 없다. 막무가내 수의사의 제안은 기발한 아이디어다. 수의사의 스마트한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수의사의 본분은 소의 병을 고쳐서 소가 농부의 일을 돕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늙은 농부가 소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짓겠는가? 병든 소를 팔면 돈을 얼마나 받겠으며 그 농부에게는 자식과 같은 소를 도축장으로 보내란 말인가? 너무나 가혹하다. 그건 농부(牧民)의 마음이 아니다.

전도서 7:8에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모든 일에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도 중요함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결과가 어떻든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나이 들어 갈수록 교만한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더구나 목자의 인생일수록 헛된 꿈이 많으면 허망해지는 것이다.

적어도 개혁성, 합리성, 유연성 그리고 비전을 가지고 수십 년 목회를 해 왔으나 결국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목자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목양에서 떠난 지가 오래이다.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가지고 잘해보려고 했는데 결과는 전혀 예상 밖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참고 인내하라는 것인지 초로의 길목에서 지난 세월을 한탄해 보기도 한다.

한자의 미(美)는 양(羊)이 크다(大)는 의미이다. 아름다움의 극치라 해서 아름다울 미(美)라 하지 않았는가. 어린양(羊)의 희생으로 구원받는 성도들은 양(羊)의 자녀이니 크게 보듬어져야 한다. 그러나 요즘 교회의 현실은 양(羊)이 클 수가 없다. 양(羊)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목축의 대상이다. 양(羊)의 소리는 무시된다. 혹여 양(羊)이 교회를 위해 바른말을 하면 교회에서 쫓아낸다. 양(羊)이 목자에게 버림받으면 어디로 가겠는가?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니 바른말 하는 교인이 교회에 남아 있겠는가? 교단을 위해 바른말 하는 목사는 징계를 서슴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교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아예 교회학교가 없는 곳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양(羊)들이 목장을 떠나는 현상을 고치려면 목자들이 양(羊)들의 소리에 좀 더 귀를 열어야 할 것 같다. 교만한 마음을 낮추고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교단의 지도자들은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감리교의 현실은 감리사가 되고 감독이나 감독 회장이 되면 사람이 달라져서 교만과 아집과 편견과 독선이 하늘을 찌를 듯 하지 아니한가? 도대체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개가 주인에게만 충실하듯 뽑아준 감독들에게 충성해서 법리와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함에도,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재판위원들의 행태는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버린 자들이다. 최근 감리교단의 망신은 감독 회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금권선거 부정선거로 개망신을 당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설령 선거에서 이겼다 해도 거짓말과 비열한 권모술수와 회유 그리고 비양심적인 표심으로 이기지 않았는가? 정당한 룰을 지키고 이기면 왜 승복하지 않겠는가!

이토록 감리교단이 중병이 걸려 있어도 그들은 그 심각성을 알지를 못한다. 교단이 집단으로 중병에 걸려서 온통 권력에 줄서기와 이익을 좇는 사람투성이다. 힘없는 대다수의 목사는 그저 패배의식과 냉소적인 태도로 개혁의 열기는 사라지고 만다. “정한 마음을 주시고 창조 의령을 새롭게 해달라”는 명제는 온데간데없다. 어떻게라도 줄을 잘 서서 자신의 이익을 구할까에 정신이 팔려있어 양심과 정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야성적인 용기도 없이 야합하고 적당히 산다. 감리교에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다시 한번 겸허히 나를 돌아본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잠 27:23)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자가 가장 좋다고 전도서 기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바가 크다. 이제 무엇보다도 끝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금이라도 바르고 정직하게 살자! 어렵더라도 좀 멋있게 살자! 의인이 걸식함을 보지 못했노라! 불편할 뿐이지 거렁뱅이로 죽겠는가? 설령 무엇에 졌다 하더라도 패배의식에 사로잡히지 말자. 선을 행함으로 자부심을 가지며 이를 사명과 소명으로 살면 더욱 멋지리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권찬규 목사 - 감리회 동작지방 감리사 역임, 예향교회 

권찬규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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