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규, 사당동 성진교회 장로, 2017년 기독교문예 등단

망초대

              윤석규

 

망초대 
커다란 키에
얼마나 잘 자라고
씨를 잘 뿌리는지
뽑아내면 어느틈에 
또 싹을 키운다

밭 농사 하는 
농부들
골칫거리 망초대와
전쟁을 치룬다

하지만
농사짓지 않는 땅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하얀 망초대 꽃
얼마나 순결하고 예쁜가

그리보니

사람도 누구에게는
홀대를 받고
골칫덩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꼭 쓰임 받아야 할 사람
존대 받고 인정을 받으니

세상 만사
이리 저리 얼키고 설켰구나
홀대에 
분내고 서러워 말고
내 있을 곳 찾아
즐거움과 기쁨을 누려보자

 

건망증

           윤석규

 

요즘 들어
부쩍
심한 건망증

금방 
생각한 것
잊어먹고

잘 두었는데
어디 두었는지
머리 속이 까맣다

하려던 것
잊어 먹으니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간직한 것 찾으려
이곳 저곳 살피느라
왔다 갔다 움직이니 
운동이 된다

나이 들어 
운동 부족
건망증이 
보충한다

살 맛이 난다
                   
   윤석규

 

나이가 들어
여기도 은퇴하고
저기서도 물러났다

그 많던 일, 일들
시간을 쪼개야 마쳤던 일들
이제는 손을 놓으니
쪼갤 일도 없고
넘쳐나는 시간, 시간

무언가 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을 해야 하는데
빈둥 빈둥
게으름만 늘어난다

시간을 쪼갤 때는
그래도 무언가 이룬게 있었는데
시간이 넘쳐나니 아무 것도 없구나

할 일을 찾아야겠다
일을 벌려 놓아야겠다
시간을 쪼개야 하겠다
생명 있음을 느끼고
살 맛이 난다

 

회상

 

              윤석규

 

반세기 전 1965년

한남동 골짜기

단칸 셋방

 

종이박스 장롱 삼아

여름에는 겨울 옷

겨울에는 여름옷

 

주어온 나무판 밥상

보리밥 한 그릇에

반찬은 달랑 간장 한 가지

 

연탄불 꺼질세라

밤이면

잠 설치고

 

하루 두 번 공동수도

양철동이

앞으로 나란히 나란히

 

한강 빨래터

빨래 삶아 널고

강 건너 잠실 나물을 캔다.

감사할 따름이다 

                              윤석규

 

백세를 넘기신 어머님

지각은 먼 과거
이동식 변기를 사다 드려도
요강만 챙기시고
화장실 사용하고
물 내릴실줄 모르신다
그래도 대소변 가리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총명은 떨어져
날자 가는 것 모르시고
금방도 잊어버리시고
묻고 또 물으신다
그래도 아들 딸 며느리
교회 목사님까지 기억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청각은 막힌 벽
대화가 일방통행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손짓 발짓
몇 마디 알아들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들 얼굴만 보면
온 몸 사지가 다 아프다고
으으응 으으응 앓는 소리
그래도 지팽이 짚고
식탁으로 걸어 오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물처럼
 

                    윤석규

 

세모 그릇에 담으니
세모가 되고
네모 그릇에 담으니 
네모가 되고
동그란 그릇에 담으니 
동그랗구나

단단한 바위 깎아 내려 
길을 넓히고
높은 산 무너뜨려
새 땅 만든다

굽이 굽이 물 길 따라 
먹을거리 장만하여
물고기 터전이 되고
나무들의 소망이다

소리도 다양하니
개울에선 소곤 소곤
호수에서 수군수군
강에선 출렁 출렁
좁은 골목 울부짖고
낭떠러지 포효한다

작은 구멍 흘러들어 
큰 터널 뚫고
장벽을 만나면 
모아 모아 흘러 넘쳐 
제 갈길 간다

저 끝 바다를 향해

가을길을 달려요

                                윤석규

가을길을 달려요
걸을 수 없는
아내와 함께

시골길 코스모스
반갑다고
흔들 흔들 춤추고
저만치 갈대들도
뒤질세라 손짓을 해요

황금을 뿌렸는지
들판은 온통 황금색
산들은 울긋 불긋
색동옷 갈아 입고
가로수 은행나무
노랗게 물들었네요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그 전 해에도
아내는 연신
이쁘다 참 좋다

아내와 함께
가을길을 달려요

내년에도
또 다음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달리고 싶어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윤석규 詩人】


달그락 툭 달그락 툭
어머님이 방에 들어가셔서
문을 닫으려는 소리
달려가 보면
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닫으려 애쓰고 계신다
"문을 그냥 이렇게 밀면 닫혀요" 하고
문을 닫아 보이면
"이제 알았어" 하시지만
그 때 뿐
달그락 툭 소리는 계속 된다
그래도 스스로 걸으시고
문을 닫으려 하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한나절에도 몇번씩
화장실을 다녀 오시는데
물 내리는 소리가 없어
쫓아 가 보면
소변 섞인 변기 물에
화장지가 둥둥 떠 있다
손을 잡아 화장실로 모셔와
"이렇게 물을 내려야 해요" 하고
물을 내려 보이면
"이제 알았어" 하시지만
그 때 뿐
물 내리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용변을 볼 수 있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ㅡㅡㅡㅡㅡㅡ
윤석규

101세 노모를 모시고 사시는 81세 성진교회 장로님의 시.
2004년 총신대 평생교육원  독서지도사 과정 1기 수료.
2017년 계간 기독교문예 시부문 신인상 수상.

윤석규, 사당동 성진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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