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c 라디오의 여성시대에 편지를 보내서 두 번 방송이 된 적이 있다. 첫 번째 사연은 내 사업이 부도난 후에 몸이 약한 아내가 돈 벌러 나가면서 겪는 아픔을 소개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집안의 모임이 있을 때에 그 방송된 녹음 테잎을 들려주었더니 큰 집의 조카들이 작은 엄마를 생각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일반 청취자들도 용기 잃지 말고 힘내라고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사연은 약 8년 후에 내 생업이 회복 되었고 새집을 분양 받았고 모든 가구를 새로 구입해서 온 식구가 식탁에 모여서 그동안 고생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회복된 모습을 사연으로 보냈다. 역시 인간승리라고 박수를 받았다. 교회에서도 내가 전에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와서 봉사를 다시 시작했다. 아내도 돈 버는 일을 그만두고 그동안 떠났던 봉사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했다.  교회에서는 신앙으로 회복되는 가정의 모델이 되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축하해주고 박수를 받든 것도 잠간이었다. 회복하고 일 년이 안 된 2006년도 봄에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다. 처음 유방암으로 확정 진단을 받던 날은 온 식구가 각자 방에서 울기만 했다. 그 당시에까지만 해도 각종 암 사망률이 높아서 암 진단이 대부분 사망 진단이었다. 그동안 고생한 아내가 너무 불쌍했다. 장례식장에서 가끔은 나도 말하고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 고인이 참으로 불쌍하다, 그렇게 고생만 실컷 하다가 이제 먹고 살만 하니까 가셨네!” 그 말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내 아내의 지금 처지하고 똑 같은 말이다. 나도 아이들 앞에서는 어떻게든 아빠가 책임지고 고치겠다고 말은 자신있게 했지만 속마음은 자신이 없었다.     

엄마가 이대로 죽으면 너무 억울하다. 절대 죽으면 안 된다. 큰 딸이 울면서 말을 했다. “아빠! 우리 엄마 위해서 수술 전까지 작정하고 새벽기도 하자!” 출근하는 딸이 나에게 부탁해서 우리 부녀는 새벽기도 일주일을 작정했다. 다음 날 새벽예배가 끝나고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예수님도 아니고 성경말씀도 아니고 얼마 전에 인터넷 중년 산악회에서 등산을 마치고 남녀 회원들이 노래방에 가서 뒷풀이 하며 노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기도는 한 마디도 못하고 주여 소리 한번 하고 돌아왔다. 옆에 있던 딸은 눈이 퉁퉁 붓게 울면서 기도 했는데 난 한마디도 못했다. 심지어 주님께 용서해 달라는 말 한마디도 못 했다.

처음에는 등산이 귀찮고 힘들어서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등산이 좋다고 하면서 나보고 함께 가자고 하는데 나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를 위로해 주기 위해서 따라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시작한 등산은 횟수가 더 할수록 내가 더 좋아했다. 그리고 산행이 점점 익숙해 질수록 나는 더 큰 산이나 더 전문적인 산행을 하고 싶어졌다. 결국 그 욕심을 채우려고 경험이 많고 오랜 경력이 있는 전문가를 찾다 보니까 인터넷 중년 산악회에 가게 되었다. 물론 아내도 혼쾌하게 허락을 해주어서 중년 산악회에 가입을 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세상 유혹의 마지막 끈이 남아 있었다, 그토록 큰 고난과 아픔을 겪고 회복되는 은혜를 체험하고도 내 영은 다시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새벽에 다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님의 마지막 경고로 받아 들였다. 모든 산악회 활동을 탈퇴하고 인터넷 아이디를 모두 삭제해서 미디어 활동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다. 주님이 우리 가정을 회복 시켜 주었으면 “감사 합니다” 하고 더더욱 겸손하고 늘 기도생활을 해야 하는데 기도 생활이 중단되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나의 일상에서 조금만 벗어난 자리에 가면 지금 이 자리가 주님께서 어떻게 보고 계실까 하는 마음을 항상 갖는다. 최소한 행동으로 나타나서 눈에 보이게 죄짓는 일은 두 번 다시없도록 하자. 그 새벽기도를 계기로 다른 친목 활동이나 친구관계 등 모든 생활습관들을 살펴보면서 많은 부분을 취소하고 절제했다. 

특히 아내의 수술 후에는 집안의 살림을 했고 시간이 되는대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회사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 이었다. 산행도 다시 아내와 함께 하면서 긍정의 대화도 많이 했다. 아내의 수술과 긴 치료의 시간들은 나의 마지막 남아 있던 세상의 유혹들을 완전히 물리치고 새로 태어나는 그런 시간들 이었다. 

그 때부터 아픈 아내와 군에 간 아들을 위해서 시작된 아침 기도는 습관으로 완전히 정착되었고 몇 년 전 부터는 매일 아침 말씀과 함께 묵상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1952년생, 충남 서산 출생,서울공업고등학교 졸업, 유원건설 자재부 근무, 천호텍스피아 수출업무 담당, (현) 상업용 건물 시설관리 업무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