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1:5-8,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2016년 10월 2일

성당이었다가 종교개혁으로 성상파괴하고 개신교예배당으로 바뀐 곳(독일)

야고보서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하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시험으로 번역된 헬라어 페이라스모스는 시련과 유혹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시련은 견디기 힘들고, 유혹은 이겨내기가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 찾아오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시험을 당할 때 온전히 기뻐하라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뻐하라고 말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시험이 그 사람의 믿음을 연단하고 검증해서 인내를 만들어내고 그 인내의 역사 가운데 온전하고 구비된 부족함이 없는 자리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험을 당할 때 이 사실을 생각하되 확신에 도달하도록 깊이 생각해서 당면한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 지난주에 본 2-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들이 그렇게 시험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연단해가고 인내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구비되어 갈 때 깨닫게 되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수시로 허락되는 여러 종류의 시험 앞에서 하나님이 목표하고 있는 부족함 없는 온전함과 달리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고,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한 자신의 상태를 보게 됩니다. 모든 면에서 모자라고 여러 면에서 부족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족한 것이 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남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순경이든 역경이든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전적인 통치와 섭리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데도 지금 내가 처한 이 어려움 속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이 어려움이 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인지, 아니면 나를 연단하기 위한 훈련인지 조차 모를 때가 있습니다. 징계라면 죄를 회개하고 잘못을 고쳐야 하고, 훈련이라면 하나님의 힘과 위로를 얻어 더 순종해야 할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조차 모른다는 것이죠. 이것이 성도들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고 부족해도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시험 중에 온전히 기뻐하라는 말 다음에 지혜를 구하라는 권면을 이어갑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께 구해야 할 지혜가 어떤 지혜입니까? 이 지혜는 세상이 말하는 처세술이나 성공학 같은 시시하고 약삭빠른 땅의 지혜가 아닙니다. 이 지혜는 지금 나의 상황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나의 삶을 순종시켜 가야 하는 여호와 경외의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하늘의 지혜로 돈 주고 못사는 것이며 도서관에서 책보고 연구해서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닙니다. 오직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면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하며 모자란 존재인지를 절감하여 간절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만 얻을 수 있는 지혜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시험의 유익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험 당하기 전에는 뭔가 좀 아는 것 같고 갖춘 것 같고 된 것 같았는데 막상 시험 앞에서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고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동안 헛 똑똑이로 살아온 자신, 하늘의 지혜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자신, 사람들하고 관계하고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은 본능적으로 배우고 익혀서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으로 사는 법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끄럽고 송구하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시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살아왔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가는 것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이 지혜가 내게 없습니다. 가르쳐주시면 이제라도 배워서 이 지혜를 가진 자로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여호와 경외의 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여러 가지 시험을 겪으면서 이렇게 자기를 확인하고 기도를 통해 여호와 경외의 지혜를 얻는 자리로 가지 못하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학생들이 똑같은 문제를 시험 칠 때마다 틀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한번 틀렸다면 어디서 틀렸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종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공부하고 준비해야 다음에 같은 문제가 나왔을 때 풀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시험을 통해 어려움을 겪는데 정작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안에서 변화되는 자리로 나아가는 일이 없다면, 다음에 똑같은 어려움을 당해도 여전히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한 지혜 없는 자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시험 당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뿐 아니라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여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지혜를 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5절에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신다고 할 때 ‘후히’라는 단어와 8절의 ‘두 마음’이라는 단어입니다. ‘후히’는 헬라어로 ‘하프로스’라는 단어인데 신약성경에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후하다. 풍성하다 그런 뜻이지만 그냥 풍성하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 때 다른 마음 없이 순전하게 주려는 그 마음 하나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와 반대되는 단어가 8절의 ‘디프쉬코스’ ‘두 마음’이라는 단어입니다. 감이 오시는지요? 성도가 자신의 지혜가 턱없이 부족함을 깨닫고 기도할 때 무엇을 믿고 확신해야 한다고요?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지혜주시기를 원하는 그 마음 하나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나를 향해 지혜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그 순전한 한 마음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지혜를 구하면서도 두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구하기는 구하는데 의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6-8절이 이렇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시험이라는 말, 페이라스모스가 시련과 유혹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시험, 즉 힘들고 어려운 시련 속에서 믿음으로 인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동시에 끊임없이 받는 것이 유혹인데 그 중의 하나가 의심의 유혹입니다. “내가 지금 혹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헛 다리 짚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도 모자랄 판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지혜를 구하고 있는 이것이 잘하는 것인가? 설령 지혜가 주어진다고 해도 이 어려움이 계속되고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이런 식의 의심이 그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프로스’ 순전한 한마음이 아니라 ‘디프쉬코스’, 갈라진 두 마음입니다. 유혹입니다. 참으로 유혹입니다.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두 마음을 품게 되면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결정을 따를 의사가 마음 한 편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에 설령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다 해도 그 뜻대로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두 마음을 품는 것이 마치 바다 물결 같다고 말씀합니다. 바다 물결은 열심히 출렁거립니다. 많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열심히 구해도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시험 중에는 생각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당한 어려움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오직 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기 원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 마음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가 허락되어 문제의 실체가 보이고 나의 형편과 처지의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의심하면서 주님 한번 바라보고 세상 한번 바라보는 식으로 두 마음을 품고 여기 저기 뛰어다닌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 어려움이 없어질 수 있고 형편도 좋아질 수 있지만 그는 처음과 똑같이 여전히 미련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경외의 지혜는 시험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혜를 주시기 위해 얼마나 간절하게 한 마음으로 원하고 있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이 정말 간절하게 한 마음으로 구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혜임을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눈앞의 어려움이 지나가기만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어려움을 통해 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해 이 지혜를 구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왕 물에 빠졌으면 수영을 배워서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만 실컷 마시고 겨우 목숨만 살아 나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그래서 다시 빠졌는데도 또 물만 실컷 마시고 초주검이 되는 미련한 사람 되지 말고, 한번 빠졌을 때 자유형, 배형, 개헤엄, 개구리헤엄, 온갖 수영의 방법을 다 배워 다음에는 믿음으로 마음껏 세상의 바다를 헤엄치는 지혜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산 한우리교회 박홍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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