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다니엘 주석 29 강) 다니엘 6:13-20

1. 우리는 앞에서 다니엘을 시기하던 무리들이 다리오 왕의 귀를 간지럽게 해서 다니엘을 잡을 제국의 법령을 제정했고, 다니엘은 그 법령을 보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즉각 다리오에게 고소했고 다리오는 자기가 사랑하는 다니엘을 자기가 반포한 법령에 의해서 사자굴에 넣어야 했다. 칼빈은 다리오가 신하들에 의해서 조롱당했다고 해석했다. 왕의 자리는 엄위의 자리이지만 바로 서지 않으면 신하들에 의해서 자기가 원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자리이다.

2. 13절. 다니엘을 중상하는 자들은 즉각 왕을 알현해서 고소했다. 칼빈은 고소자들이 왕에게 다니엘을 판단하는 것을 물러서지 못하도록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어긴 것을 강조했다고 제시했다. 바벨론의 포로였고 메대로 제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포로가 된 다니엘이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36년의 강점기를 겪은 것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셨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리에서 인정된 자리에 서는 것은 쉽지 않다. 다니엘은 상류층에 있었지만 포로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삶이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삶의 비극을 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삶으로 자기의 생의 분깃에 최선을 다했다. 그 최선은 왕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기도했다.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은 죽음과 생에 관계 없이 하는 다니엘의 분깃이었다. 다니엘은 왕의 금령을 어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겸손하게 비밀스럽게 골방에서 기도해도 되었다. 그러나 창문을 열고 무릎을 꿇고 세 번씩 기도했다(12절). 그것은 그들의 계략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들의 계략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죽음에 이르는 고난이 예견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바울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명령에 대해서 감옥에 가는 것을 선택했던 우리 믿음의 선진들의 심정을 것이다. 피하는 지혜와 정곡을 뚫은 결단은 차이가 없지만, 고난의 핵심으로 들어가야 할 때 들어가는 결단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3. 13-14절. 신하들이 다니엘을 고소하는 순간 다리오는 충격을 받았다(14절). 그리고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방안을 하루 종일 강구했다(14절). 그러나 무리들이 왕을 금령을 근거로 재촉하고 압박했다(15절). 고대 국가여도 법치국가 시스템이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법을 제정하는 사람은 법 제정에 신중을 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국민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자기 본위를 위해서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혜로운 왕을 찾기가 쉽지 않다. 플라톤의 제언처럼 철인(哲人)이 통치해야 할 것이고, 니체는 초인(超人)을 기대했고 초인으로 만들려고 했다. 필자는 그리스도인의 통치를 기대한다.

4. 다니엘은 자기 욕심으로 결정한 금령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자기가 반포한 금령(법)을 어긴 다니엘을 자기는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세상 최고 권력자가 구원할 수 없는 다니엘을 구할 수 있는 존재는 땅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5. 결국 다니엘은 금령을 따라서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도록 명령했다(15절). 그리고 하는 말은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고 아쉬움을 표했는데, 그것은 신앙고백이 된다. 그런데 칼빈은 사자굴에 넣은 왕보다 사자굴에 들어가는 다니엘이 더 자유롭다고 해석했다. 다리오는 자기 금령, 귀족들에게 압제를 받았지만, 다니엘은 금령을 초월해서 기도하며 사자굴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자굴로 인도하셨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가마에 들어갈 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고백하는 것은 다니엘에게도 유효한 고백이다. 하나님과 왕 다리오에게 본분을 다했던 다리오와 자기 욕심을 위해 다리오를 조종한 귀족들을 볼 수 있다. 비록 다리오가 귀족들의 불손한 의도를 알았지만 어쩔 수 없이 신하에게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6. 다리오는 다니엘을 살리고 싶었지만 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다니엘의 생사여탈을 다니엘의 하나님께 위탁시켰다. 어떤 사람은 다리오가 다니엘의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는 행동이라고 제시하지만, 칼빈은 다리오의 겸손과 자기부정으로 해석했다. 다리오는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니엘이 기도했던 다니엘의 하나님께 다니엘의 생명을 의뢰했다.

7. 다니엘은 금령에 의해서 사자굴에 들어갔다(17절). 다리오는 자기 어인과 귀족들의 인으로 동굴의 입구를 봉인했다. 그래서 왕이 자기 금령을 어기지 않음을 증명했다. 다니엘은 이 땅 누구에게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자굴의 문이 열려 살아나오는 것은 무덤문을 열고 나오는 주 예수를 생각나게 한다(칼빈은 그러한 제시가 없음). 다니엘은 담담하게 사자굴에 들어갔고, 다리오는 곤란했고, 귀족들은 소리없이 환호했다. 왕은 자기가 애호(愛好)하는 다니엘을 안타까워 할뿐 어떤 것도 행하지 않았다. 귀족들과 협상하지도 않았고, 다니엘을 회유하지도 않았다. 왕좌를 지킴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고, 다니엘을 사랑하는 것이 두 번째였다. 두 번째는 어떤 의미가 없다.

8. 다리오는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은 뒤에 밤이 맞도록 식사를 하지 못했다. 다리오가 금식(테와트)한 것이 기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칼빈은 다리오가 자기 행동의 어리석음과 악행에 대한 울부짖음(분통)으로 음식을 폐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 죄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슬퍼하는 것으로는 무익하고, 회개에 이르도록 제시했다(고후 7:10). 다리오의 슬픔과 분통은 양심의 가책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마음에 번민이 크고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았지만 회개에 이르러야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9. 다리오는 금령을 집행한 뒤에 다니엘의 사자굴로 달려갔다(19-20절). 다리오는 자기 법령을 존중해서 애호하는 다니엘의 생명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다니엘”을 보러 달려갔다. 왕은 어리석고 자기를 보호하려고 할 뿐이다.

10.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다니엘의 기도를 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자기 양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러 나를 잃지 않고 나의 신앙을 고백할 수 있도록 지식과 담력을 주옵소서. 주위에 훼방자가 있고 보호자는 없나이다. 오직 보이지 않은 주 하나님만 의지하나이다. 보이지 않은 영의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복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칼빈 다니엘 주석 30 강) 다니엘 6:20-24

1. 다리오는 아침 일찍 사자굴로 가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을 불렀다(20절).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 이스라엘 하나님을 살아계신 분으로 회의(懷疑)하면서 외친 것이다. 다리오는 다니엘이 살아나왔을 때 과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보는 것으로 믿음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이전에 가질 수 있는 구원경륜이다. 다리오는 다니엘을 통해서 사시는 하나님임을 인지하고 고백했다. 다니엘은 고레스를 언급하지 않지만 이러한 모든 정황은 고레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고레스는 유대인과 모든 포로를 귀환시키는 법령을 반포했다.

2. 다니엘은 굴 속에서 다리오 왕에게 문안했다(21절).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밤새 변고 없이 있었던 것을 하나님의 천사(angelum suum)가 사자의 입을 봉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기 생존으로 자기 무죄를 변호했다(21절). 다니엘은 사자굴의 징계인 다리오의 금령이 부당함을 변호했다. 다리오의 금령과 귀족들의 과오를 지적한 것이다. 다리오는 사자굴의 금령을 오히려 귀족들에게 적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국의 법을 확실하게 세워야 했다.

3. 사자입을 막으신 하나님은 다니엘에게만 해당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사자에게 찢김을 당한 순교자들은 다니엘만 보호하신 하나님께 불만이 아닌 믿음 고백과 영광을 돌렸다. 그 이유는 주의 자녀들은 다니엘이 사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절대로 의심을 보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녀에게는 많은 재물을 어떤 자녀에게는 힘든 고난을 허용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느 상황에 있든지 자기 생을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을 정진한다.

4. 우리는 다니엘의 생존은 곧 유대인의 안전으로 인지하는 훈련을 했다. 다니엘을 살리는 것은 유대인의 안전이고, 다니엘을 헤치는 사람의 멸절은 유대인의 안전이 확보되는 것이다. 다니엘은 자기 무죄를 명확하게 변호하면서 법을 제정해서 사자굴로 몰아넣은 사람들의 유죄를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한 사람을 잡기 위해서 제국의 질서를 움직인 배임(背任), 권력남용(職權濫用)을 한 것이다. 칼빈은 교황주의자들이 이러한 범행을 반복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1세기 유대교도 전통을 세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목사들도 주의 말씀에 위배된 법령을 제정해서 법을 지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할 수 없다.

5. 다니엘은 다리오의 금령을 어겼고, 금령에 의해서 사자굴에 들어갔고, 사자굴에서 살아서 나왔다. 그런데 다리오는 왕의 금령을 어기지 않았다고 변호했다. 그것은 다니엘이 완곡하게 법령 제언자를 고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두 명령,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의 충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제시하기도 한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 2:17)고 가르쳤다. 세상 권위를 존경하지만 영혼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마 10:28). 다리오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도 고소했다.

6. 다리오 왕은 다니엘이 살아 있는 것을 크게 기뻐했다(23절). 그리고 하나님을 믿었다(23절). 칼빈은 다리오의 믿음과 다니엘이 사자의 입 앞에서 구원받음을 모든 시대에 정당하게 평가하는 것은 멸망의 증거라고 했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멸망이고 세상에서 칭찬을 받기 위한 야망이다. 칼빈은 블루투스가 로마를 위해서 시이저를 시해했다는 주장은 자만이고 자기 야망이 동기였다고 평가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하면서 자기 안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그러한 부류이다. 칼빈은 자기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을 참되다고 고백하고 찬양하는 일이 없도록 경계한다. 그러한 일을 교황주의자가 진행시켰다고 제시했다. 칼빈은 성령께서는 교황주의자와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치신다고 제시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인간의 공로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믿음과 겸손으로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 다니엘은 조건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했다.

7.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을 믿었다. 그리스도인의 상은 자기의 하나님을 인정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증거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증거하는 예수를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복이고 상이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도록 하나님의 법에 순종했고, 결국 다리오는 다니엘의 하나님을 믿었다. 다니엘은 다리오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믿음을 선물로 주었다. 바울은 어찌 되었든지 주 예수의 이름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사모했다. 다니엘의 일번목표는 자기백성을 보존하고 귀환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을 위해서 다리오와 고레스를 사용하셨는데, 다니엘의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8. 왕은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을 사자에게 던졌다(24절). 처자(妻子)를 함께 넣었다. 사자들은 그들을 곧바로 움켜 뜯었다. 고소한 자들은 다리오의 집행에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것은 자기들의 불법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을 능욕(凌辱)한 죄까지 포함되어 처자들도 함께 죽게 되었다.

9.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셨으니, 우리의 생명을 위탁하고 충성하나이다. 주의 법도와 세상의 법도를 잘 준수하며, 주의 살아계심을 주의 자녀로 나타내게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구속주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주이시오 하나님이신 예수를 믿나이다. 나의 믿음의 주이신 예수를 많은 사람이 믿을 수 있도록 복음 전달 능력을 주옵소서. 주의 자녀가 깨어 구원을 얻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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