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채프먼, 예영커뮤니케이션,

다양한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라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아동도서의 경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기준으로 제시되곤 한다: ① 어린이를 삶의 주체로 보는가? ② 좋은 가르침이 있는가? ③ 독자의 수준에 맞는가? ④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만큼 재미가 있는가? ⑤ 책의 저자가 그 방면에 전문가인가? ⑥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고 있는가? 등이다(참고. '좋은 독서가족길라잡이', 비전북, 32-33쪽).

신앙서적의 경우도 세월의 검증을 거쳐 좋은 책으로 인정받고 사랑 받는 책들이 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기독교 고전들(고백록, 천로역정, 그리스도를 본받아, 팡세 등)과 C. S. 루이스의 책들(<순전한 기독교>, <나니아 나라 이야기>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적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리처드 포스터의 <기도>, 오스 기니스의 <소명>은 다음 세대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이미 <5가지 사랑의 언어>, <자녀를 위한 5가지 사랑의 언어>, <십대를 위한 5가지 사랑의 언어> 등의 저서로 국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저자의 신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랑의 언어>(The Love Languages of God)는 이러한 양서의 반열에 들 수 있는 탁월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정하는 말, 친밀한 시간, 선물, 봉사, 신체적 접촉과 같은 '새로운 언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미 이 주제는 앞서 출간된 그의 책들에서 다루어졌으나, 본서에서는 그 원리들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적용하고 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본서는 그 원리의 타당성을 성경과 교회사, 그리고 현 시대의 여러 삶의 모습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예증한다.

사랑의 사귐

저자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맺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는 말을 들을 때 사랑을 느낀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친밀한 시간을 함께 보낼 때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부부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두 사람의 주된 사랑의 언어가 다를 때, 문제가 생기곤 한다. 즉 아내가 쓰는 사랑의 언어를 남편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내는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사랑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인간 관계 속에서의 문제는 대부분 상대방이 내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끼기 때문에 생겨난다"(29쪽). 그러므로 상대방이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배우게 될 때 우리의 인간 관계는 훨씬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저자는 아주 분명하게 이 점을 말하고 있다: "배우자나 자녀들이나 부모나 그 누구에게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열쇠는 그들 각자의 주된 사랑의 언어를 찾아내어 지속적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40쪽).

인정하는 말

'하나님이 쓰시는 사랑의 언어' 가운데서 우리는 먼저 '인정하는 말'을 볼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인간을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 41:10). 예수님께서도 그의 말씀을 통해 생명과 소망을 전해 주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

하나님은 '인정하는 말'이라는 사랑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신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을 베풀고 위로하고 진리를 드러내는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신의 사랑을 선포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다(57쪽).

저자는 마르틴 루터의 예를 들고 있다. 루터는 아내를 인정하는 말을 잘 사용했다. 또한 그는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표현하기 위해 말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다른 수도사들이 묵상을 하는 동안 그는 진리를 말하고 글을 썼다. 수많은 찬송가 가사를 썼고, 성경주석을 썼으며,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다윗은 찬양의 사람이었다. 그가 하나님께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데 사용한 주된 전달 매체는 찬양과 감사와 흠모의 말이었다(시 40:16; 69:30-31; 119:97-98). 그의 시는 성경에서 가장 감성이 풍부한 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윗은 확실히 '인정하는 말'을 통해 자신의 헌신을 표현했던 사람이었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친밀한 시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랑의 언어' 가운데 두 번째는 친밀한 시간이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려졌다. 시편에는 그의 피조물인 인간과 친밀한 시간을 나누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 145:17-18).

신약성경의 야고보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라고 말하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했다. 예수님도 사도가 될 제자들과 친밀한 시간을 함께 나누셨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저자에 따르면, 예수님은 접대하려는 마르다를 꾸짖지 않으셨다. 그리고 온 마음으로 에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마리아도 꾸짖지 않으셨다. 주님은 두 자매의 마음을 알고 계셨다. 마르다는 봉사라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리아는 친밀한 시간이라는 언어를 사용했다. 저자에 따르면, 두 경우 모두 하나님께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정당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고아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는 사실 기도의 사람이었다. 고아원을 시작하기 전부터 뮬러는 하나님과 오랜 기간 친밀한 시간을 가지는 삶을 가졌다. 그의 일기는 그러한 증거로 가득하다.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교구 사무실에 있었다.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1832년 7월 19일). "하나님의 은혜로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기 전에 거의 두 시간 동안 기도할 수 있었다"(1834년 6월 25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친밀한 시간이 뮬러의 삶을 이루는 중심이었다. 뮬러와 같이 친밀한 시간을 주된 사랑의 언어로 사용한 사람들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이 엠 바운즈, 찰스 피니, 그리고 기도의 사람 하이드이다.

선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랑의 언어' 가운데 세 번째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선물을 주시는 일에 능숙하신 분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을 '주시는 분'으로 묘사한다. 신약성경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선물을 후히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계속 그리고 있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으로 요약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새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야고보는 하나님을 선물을 주시는 분으로 보았다(약 1:17). 사도 요한에 따르면,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재창조될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요일 3:1-2).

저자 게리 채프먼에 의하면,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주제는 히브리인의 역사와 기독교 역사 속에 깊이 흐르고 있다. "선물을 주된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속성이 강하게 부각된다. 그들은 하나님을 좋은 선물을 주시는 분으로 바라본다"(98쪽).

어떤 사람은 매주 20개 정도의 빵을 구워서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선물을 통해 표현하곤 한다.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다(마 25:34-40). 주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한 방식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필요를 돌봐주고 채워줄 때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느낀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다.

봉사

'하나님이 쓰시는 사랑의 언어' 가운데 네 번째는 봉사이다. 저자에 의하면 마더 테레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사랑의 선지자였다. 테레사의 주된 사랑의 언어는 '봉사'였다. 거리에서 숨져 가는 여인을 발견한 테레사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갔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위한 집을 마련하여 그들이 편안하게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또한 고아원과 나환자와 에이즈 환자와 미혼모를 위한 집을 열었다.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도움을 베풀 때마다 그것은 실제로 그리스도를 돕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최고의 봉사로 그 사랑을 표현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즉 그 이적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2-13)라고 말씀하신 에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봉사로 여기셨다. 바울 사도 역시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 사랑의 표현으로 보았다.

신체적 접촉

'하나님이 쓰시는 사랑의 언어' 가운데 다섯 번째는 신체적 접촉이다. 저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신체적 접촉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신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분이 종종 신체적 접촉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셨다. 사람들은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왔다(막 10:13).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시면서 종종 사람들을 만지셨다(마 8:2-3; 마 9:27; 요 9:11).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도 신체적 접촉을 사랑의 언어로 사용하셨다(마 17:2-8). 특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주목할만한 일이다(요 13:1-17). 여기서 주님은 봉사와 신체적 접촉, 이 두 사랑의 언어를 함께 사용하셨다.

저자에 따르면, 1세기 이래로 수천 명이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만져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만져 주었다. "그들은 병원에서 열이 나는 이마를 닦아 주거나 몸을 씻겨 주는 일로 섬기기도 했다... 그들은 교회에서 '인사를 먼저 건네는' 사람으로 섬기기도 한다. 또한 예배드리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웃음 띤 얼굴로 손을 내밀고 '등을 두드려 주며' 격려한다"(153쪽). 그들은 신체적 접촉이라는 사랑의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사랑하는 관계(loving relationships)는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 이 책에서 저자 게리 채프만은 '사랑의 언어'라는 개념을 통해 어긋나 인간관계들에 기적을 선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풍성하고 다양한 '사랑의 언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목회자, 가정사역자, 상담자, 신학생, 평신도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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