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려도 다시 일어서는 조국을 바라며

한명철 목사┃ 한명철 목사는 말씀 연구와 기도에 매진해 온 목회자이다.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팍스신학대학원(Geore Fox Evangelical Seminary)과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JSTB)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은혜와 평강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는 한명철 목사는 말씀이 어떻게 삶속에서 역사하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오로지 성경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그의 글은 읽는 이의 삶을 헤집는다. 한명철 목사의 대표적인 책은 《강한 용사》 (두란노), 《살아난다 성경암송》 (두란노), 《성경통달에 이르게 하는 자기학습법》 (두란노), 《인봉된 책》 (쿰란출판사), 《개봉된 책》 (쿰란출판사), 《붕괴의 신호음이 들릴 때》 (쿰란출판사), 《고백》 (본출판사) 등 약 30여권이 있다.

한반도 통일의 대업에 제물 된 자 있었는가? 

계백이 처자를 죽여 탄현을 버리고 황산벌을 택하니 백제의 운이 쇠하였음이다. 성충(成忠)이 굶어 죽음의 길을 택하고 흥수(興首)의 계책마저 외면당하니 신라의 운이 승하였음이다. 5천 결사대의 피가 황산벌을 붉게 물들여 사비로 향한 창검을 막으려 했으나 신라에는 관창이 있어도 백제에는 관창이 없었다.

춘추(春秋)와 유신(庾信)의 길이 달랐으나 군신의 예로 삼한일통의 대업에 뜻을 맞추니 신라는 초승달인데, 충신은 숨고 간신배가 우글거리던 백제는 보름달이다. 의지할 이 없는 의자는 의자에 앉았으나 왕좌가 아니었고 춘추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말을 달렸으나 말안장이 곧 옥좌였다. 연개소문, 계백, 유신이 한 왕을 섬겼다면 삼한일통을 디딤돌 삼아 중원을 도모할 수 있었을 터인데! 영웅이 때를 만나지 못함이 아니라 하늘의 정한 이치니 어찌하라!

역사의 거울을 보니 호남엔 계백이 없고 이북엔 연개소문이 없으며 영남엔 유신과 춘추가 없다. 통일의 대업은 민족의 숙원이건만 남북통일의 염원만큼 통일의 제물 되려는 자 어디에도 없다. 하늘은 때를 따라 영웅을 내건만 신화를 거부하는 세상이 그들을 박대하고, 시절은 철따라 익은 과일을 보이건만 성급한 사람들은 설익은 과일만을 탓한다.

일장기 아래 짓밟힌 태극기

일제가 명성왕후를 시해하던 날 백정이 된 사무라이의 칼은 무디어졌다. 한 나라의 국모를 벤 칼에는 피가 묻었으나 일본정신의 상징이었던 사무라이는 시궁창에 처박혔다. 날강도 승냥이 같던 일본제국주의의 앞잡이들은 민족의 얼을 빼앗고 나라의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토지와 양식을 빼앗고 젊음과 자유를 강탈했다. 안중근이 민족의 철천지원수에게 총탄세례를 퍼붓고 유관순이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했지만 삼천리 강토는 여전히 일제의 군화에 짓밟혔다.

논개가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께(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유유히 흐르는 남강에 몸을 던졌지만 배알도 없는 조선의 선비들은 남강에서 꽃놀이를 즐겼을 것이니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꼴이었다. 태양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의 상징인 듯 일장기 휘날리는 곳에 태극기는 없었다. 일본의 악질 순사보다 더 악랄한 것은 그들의 주구 노릇하던 조선인이었음은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바람 불면 촛불은 꺼져도 태극기는 날린다.

태극기가 휘날리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이제는 그 태극기를 부정하고 인공기를 게양하는 붉은 무리들이 피 흘려 찾은 이 나라의 국회에서 망언을 주절거린다. 단두대에 세워야 할 망언자는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극우주의자가 아니며 중국 동북공정의 입안자가 아니다. 비뚤어진 사상에 물든 정치가요 교육가며 종교인이다.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가 이 나라의 명암을 갈랐다. 한 정권이 지고 다른 정권이 얼굴을 내밀었다. 바람이 불면 태극기는 펄럭여도 촛불은 꺼진다. 태극기와 촛불이 맞붙으면 촛불이 태극기를 태운다. 이 나라에 소위 촛불 정권이 탄생하면서 올림픽에서조차 정체불명의 한반도기가 세계인의 시선을 붙들었다. 언제까지 태극기와 촛불이 상극의 심지를 돋우어야 할 것인가! 촛불을 밝히는 바람, 태극기를 펄럭이는 바람, 모든 것을 살리는 생기의 바람, 루아흐가 한반도에 불어치면 좋겠다.

좁은 반도 안에서 허덕이던 역사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한 단군의 나라! 한사군의 수치도 잠깐, 한반도는 삼국으로 나뉘었다. 신라가 당의 힘을 빌려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외세를 빌어 삼한을 통일한 것도 못마땅하지만 신라의 삼국통일은 대세였어도 안타까운 일이다. 조국은 대륙으로 한없이 뻗어나갈 기회를 놓치고 좁은 반도 안에서 허덕여야 했다.

발해가 고구려의 기상을 지녔으나 중원으로 이르는 길은 너무 멀었고 시운이 받쳐주지를 못했다. 고려는 고구려의 고토를 제대로 밟아보지 못하고 신라 말기와 조선 초기의 사이에서 어정쩡한 474년을 허송했다. 조선 500년은 국운이 피어나는가 싶더니 사색당쟁과 왜구의 노략질로 인해 자중지란을 일으켰다. 대한제국은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지만 긴 호흡 한 번 내쉬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았다.

쿠데타와 혁명, 사태와 민주화 항쟁

나라를 빼앗긴지 36년 만에 국권을 회복했지만 자주가 아닌 외세의 덕분이었기에 늘 찝찔했다. 남북에 진주한 미소강대국! 남북의 사상적 대립 속에서 좌우합작도 시도했고 적화와 멸공도 견주었다. 혼란한 남쪽의 허를 찌르며 북의 무력이 한반도를 빨갛게 물들여갔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면 오늘과 같은 대립은 없었겠지만 우리는 과연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건국의 아버지라 칭하던 노인이 노탐에 무너졌다. 기독교적 정의를 외치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던 지사가 부정선거에 휘말렸다. 두 번이면 충분했다. 나라를 걱정하고 이끌 지도자가 그 뿐이었을까? 3.15마산궐기대회에 이어 4,000명 규모의 고대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규탄데모를 벌였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4.18데모는 자발적으로 일어난 의거로서 신생조국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음을 세계에 알렸다. 그것은 다음날 일어난 4.19혁명의 전조였다.

헌법 서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이듬해인 1961년 5월 16일 4,000명도 안 되는 소수의 군인들이 표류하는 국회와 이반된 민심으로 인한 조국의 위기상황을 내세워 혁명을 일으켰다. 혹자는 군사정변이라. 군사반란이라 앙앙불락하지만 성공한 쿠데타를 혁명으로 칭함은 어느 나라나 대동소이하다. 혁명의 주체가 부하의 총에 암살당하면서 무신정권의 지속을 알리는 12.12군사정변, 이에 항거하여 이듬해인 1980년 5.18민주항쟁이 광주와 전남도민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혹자는 폭동이라, 사태라 주장하나 민주화 항쟁임을 누가 감히 부정하랴?

분열 또 분열 그래도 소원은 통일

건국 후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조국은 숱한 고비를 맞았다. 학생이, 군인이, 시민이, 노동자와 농민이, 교수와 종교인들이 교실을 박차고 근무지를 이탈하고 일터를 내버리고 가르침과 기도를 중단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격변의 한 세대를 보내며 한껏 움츠렸던 군중이 어깨를 펴고 활개를 펼치기 시작했다. 경제적 안정세를 구축하면서 사람들은 뿌듯한 자신감에 물밀듯이 들이닥친 자유를 마음껏 향유했다. 좌파정권이라 불리는 10년은 군사정권의 공과와 비교할 수 없는 분열의 재앙을 퍼뜨렸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된 상황에서 동서가 지방색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형국이 되었다.

학원에서 불을 뿜던 이념 논쟁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단과 직장에서 산불처럼 번져갔다. 전교조를 비롯한 유명무명의 각종 단체들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조국은 독재국가가 아니다. 경찰이 시민에게 폭행당하고 범법자가 법정을 유린하는 조국은 무질서해서 미국보다 더욱 자유롭다.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조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도 드물다. 북한은 그렇게 선전하고 남한은 실상이 그렇다. 남과 북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그리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이기만을 기도드린다.

시소(see-saw)를 탄 오뚝이

시소는 상대의 상승(하강)을 하강(상승) 국면에서 바라보는 놀이 기구다. 남북의 대치 상황은 늘 시소게임에 임하게 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남과 북은 군사, 경제, 체육, 외교 등 상대의 기를 꺾고자 몸부림쳤다. 보통 적이 아니라 대적이요 주적이 되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다. 서로 살기(殺氣)를 거두면 함께 살기 가능한 상생과 공존의 대로가 열릴 텐데.......

역사(saw)를 역사(saw)로, 현실(see)을 현실(see)로 보면 공존의 과정을 거쳐 머잖아 남북일통의 대업 또한 맞이하게 되리라! 한민족은 장구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오뚝이처럼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계속해왔다. 더 이상 쓰러지는 동작을 멈추고 세계사의 중심에 우뚝 서는 위대한 민족의 한국, 대한민국의 현실을 꿈꾸며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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