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작가 자신의 전 생애 동안 그를 괴롭히던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문제 삼은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반은 훌륭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신은 인생의 문제와 무관하고 신의 실재도 인간의 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입증하려 한다.

인간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the world as it is)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입장권조차 반환하고자 했다. 그러나 합리적으로 궁극적이 아닌 것은 믿을 필요가 없다는 이반의 사상은 이성의 종교(religion of reason)이며 이신론(理神論)에 불과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작품에서 제기하는 무신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신론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에 대한 문제는 그것이 신의 존재의 물음이든 아니든 간에 불 신앙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신앙인에 의해서만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반의 무신론은 니체나 막스 또는 그 밖의 실존론적 무신론과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빚어지는 현실부조리와 악을 제거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하는 인간주의적 무신론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신은 죽었다 라고 외치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보다는 신의 이 세상에서의 활동을 부인하는 실천적인 무신론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갖는 사람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것을 믿지 않고 그의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무신론자이다.

오늘날의 다원화 사회의 사람들은 개인의 행복과 복지사회를 보장하는 안전조직을 더 의뢰하고 있다. 오늘의 풍요로운 삶이 더 이상 신의 존재에 대해 물음하지 않게 하고 그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활동을 부정하는 사람이 진실로 무신론자이다.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억압의 삶을 강요하고 죄의 오염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 사람은 그가 종교인이든 아니든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다원화 사회는 인간의 복지와 풍요를 보장하지만 그러나 인간의 궁극적 관심인 죄와 죽음의 문제는 해결해 주지 못한다. 아마 애써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일 것이다.

인간소외현상은 오히려 정보화 사회에서 그 절정을 이르고 있다. 하나님이 없이도 조금도 불편해 하지 않는 삶 이것이 우리 현대인의 삶의 특성이 되어 버린지 이미 오래다. 오늘날은 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의 영혼이 죽은 것이며 따라서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간다운 삶의 회복에 우선적 과제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무신론자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불가지론자란 하나님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알지 못한다(또는 하나님의 존재여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자들은 모두 무신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실천 사이에는 거대한 간격이 있는 것이 드러났다.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활 속에서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안 믿는 것과는 무관하게 우리들 대다수는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우리들은 실제적인 무신론자들인 셈이다.

만일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면 우리는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며 그 분에 관하여 그리고 그 분과 더불어 대화할 것이며 그 분을 경배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참석율은 급속도로 쇠퇴해 가는 반면 주일날이면 각종 여가와 오락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늘어간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가치관을 반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낙태, 성적 문란을 통해 그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생명의 고귀함을 깎아 내렸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면서 세계의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에게 등을 둘린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의 초점을 하늘을 향해야 할 것이다. 무덤 뒤에 영원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현세 안에서 삶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모든 향락, 오락거리, 돈, 즐거움을 붙잡는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이며 쾌락 지향적이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의 사랑과 정의에 관한 말씀을 널리 선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동차를 굴리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빛을 말 아래 숨기는 일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생활 속에 믿는 증거가 나타나야한다! 우리의 아웃, 자녀, 친척, 친구들이 우리 안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정말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생명력 있게 자라가는 관계를 갖고자 하신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라. 하나님을 믿으라. 그를 위하여 살라.

나사렛대학교에서 교수로 섬기다가 이제는 목회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치유상담교육연구원 원장일을 보고 있으며 여러군데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다. 늘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일에 관심이 있으며 어려운 문제 함께 의논하고 상담하기를 좋아한다. 미 공인상담사및 코칭 자격을갖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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