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치의 병이나 암에 걸리게 되면 그 현실을 가장 받아드리기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그런 현실을 더 받아드리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목회자라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내면 속에는 나의 생애를 다 바쳐서 주를 위해 헌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한탄과 체념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병이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난도 겪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우리는 다 죽습니다. 

고난과 병과 죽음. 이것은 예수를 믿건, 믿지 않건 모든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면 그런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드릴 수 있을까요? 믿음은 나에게 찾아오는 이런 어려움을 면죄 받기 위한 면죄부가 아닙니다. 믿음은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나의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긍정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지만, 다른 관점으로 하나님을 통해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병과 죽음이 찾아왔을 때 현실의 벽에 가로 막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현실 앞에 주저앉아 기도하지 않는 것이 절망의 끝입니다.

그래서 믿는 만큼 우리는 기도하게 됩니다. 믿는 만큼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실까요? 연인들이 서로에게 사랑을 확인합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묻습니다. 그 때,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해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실까요? 십자가에서 양손에 못이 박히시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셔서 피가 흐르시고, 무자비한 채찍에 맞아 등은 다 갈라지고, 사람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를 향하여 사랑하신다고 하신 그 사랑의 고백이 거짓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차별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여 주셨지만, 우리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일어나는 힘들고 어려운 현실 앞에서, 그 현실이 내 생각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이 된다고 할지라도, 내가 아무리 주를 위한 헌신과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할지라도, 현실의 상황 앞에 무릎을 꿇고 자포자기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때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은혜를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과 믿지 않는 자의 차이일 것입니다.

미래로교회 서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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