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를 마칠 때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김에스더 목사 - The Second Life Foundation 대표, 뉴욕퀸즈교회 담임, 뉴욕사모합창단 및 미주여성목회자합창단 지휘

누가복음 9:57-62 

57.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사냥꾼이 독수리를 향해 총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독수리는 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고 사냥감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 독수리의 사냥감은 뱀이었는데,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개구리도 꼼짝하지 않고 무당벌레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당벌레도 풀잎에 붙어 있는 진딧물을 먹으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사냥꾼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총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혹시 누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노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우리도 이 사냥꾼처럼 뒤를 돌아볼 때가 가끔 또는 종종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려고 열심히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어떤 상황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으로 뒤를 돌아보지는 않습니까?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데, 쓸데없는 염려로 인해 목표에서 눈을 떼고 자꾸만 걱정이 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주어진 좋은 기회를 너무나 허무하게 날려보내지는 않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것, 내가 하려는 것을 혹시 다른 사람도 하지는 않을까...... 지금 내가 세운 목표가 달성되더라도, 혹시 누군가가 그것을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내가 열심히 하더라도 누군가가 내가 세운 공을 다 가져가지는 않을까...... 과연 나에게 남는 것이 있을까...... 굳이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을텐데...... 대강 이런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는 순간 즉 갑자기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고 두렵게 몰려와서 생각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그 동안 세워왔던 모든 계획과 그 동안 달려왔던 모든 수고를 순식간에 포기하지는 않았는지요?

사냥감 앞에서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총을 내려놓는 이유는, 첫째로 그것을 맞힐 자신이 없기 때문이며, 둘째로 맞힐 이유를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며, 셋째로 맞힌 뒤에 일어날 상황, 즉 일어나지도 않을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주어서 우리로 잘 살지 못하도록 유인합니다. 생각에 빠지다보면, 생각이 또다른 생각을 물어와서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게되어 결국 생각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을 잘 아는 마귀는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며, 많은 생각으로 인해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쟁기를 손에 들었으면, 추수를 마칠 때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추수가 끝날 때까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추수할 곡식들을 바라보며 그 곡식들을 다 벨 때까지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일을 마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 그만큼 시간도 지체되며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보게 되며, 듣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들려옵니다. 그러면 추수하던 손을 멈추고 엉뚱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추수밭을 떠나야 될 일도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쟁기를 손에 들었을 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내 뒤에서 발생할 일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나에게 현재 주어진 그 무엇을 최선을 다해서 하면 그만입니다.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그 무언가를 해결하겠다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앞의 예화처럼 사냥감도 놓치게 되고, 허무감만이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무언가 불안하십니까? 걱정 근심으로 인해 나의 비전도, 나의 삶의 목표도 모두 내려놓고 불안함에 나의 모든 것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에 맞는 목표를 설정한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따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대로 아무리 계획이 거창하고, 비전이 크고 높을지라도 말만 하고, 생각만 하며 실행하지 않으면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서기관입니다(마 8:19).
그는 그 동안 예수님의 기적적인 사역을 보았기에 예수님을 따라가면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 것을 기대했던 계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미래가 결코 보장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대답은, 그가 시련에 대한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그는 어려움을 감당할만한 준비가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는 전통과 형식에 매여 사는 사람입니다.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는 대답은 2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어야 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의 아버지가 지금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돌아가실 때까지는 부모님을 따라야 하니까 그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즉 부모님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나 주님을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물론 부모님에 대한 도리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보다 주의 일이 먼저라고 말씀합니다.

만약 부모님보다 내가 먼저 죽게 된다면? 그러면 영원히 주의 일은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님이 오래 장수하신다면, 다 늙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분에 대한 장례는 다른 사람이 치를 수 있지만, 지금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비로소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예수님은 인간을 향한 의무보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가 먼저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는, 이런 저런 이유와 감정에 이끌리어 우선순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족들과 인사를 하러 갔다가 사랑하는 가족이 제발 가지 말라고 한다면...... 주의 일도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한다면...... 당신에게는 주의 일보다 세상 일에 더 달란트가 있다고 부추긴다면......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고 한다면...... 이럴 경우에 그는 가족들이 납득이 가도록 그들을 설득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 이상으로 낭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결심을 했으면 앞만 보고 나가야지, 인정에 매여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넷째는 과거 집착형입니다.
예수님은 쟁기를 손에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현재를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혹시 나도 그런 유형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가 현재보다 비교할 수 없이 좋았던 사람은 계속해서 과거 이야기를 하며 현재를 살지 못합니다. 현재의 부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자꾸만 감추려고만 하며 과거 이야기만 합니다. 이와 반대로 과거가 너무 힘이 들었으면, 그 과거 때문에 혹시 또 무언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싸여서 매사가 부정적이며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과거에 얽매여서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주의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은, 현재를 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존감이 너무 낮아도 할 수 없으며, 너무 높아도 할 수 없습니다. 너무 부정적이어도 않되며, 너무 교만해도 주의 일은 할 수 없습니다.
 

  1.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의 자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현재를 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과거와 가족과 정에 이끌려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합당치 못합니다. 당신은 어떠합니까?
  2. 가족과 친지와 직장과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까?
  3. 나에게 이익이 없어보이는 데도 그 모든 것을 감수하며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4. 지금의 내 모습은 그렇게 좋지 않지만, 주님이 곁에 계시기에 자신감을 갖고 현재를 잘 살아가고 있습니까?
  5. 나를 불안하게 하며 두렵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 요소를 우리는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고 합니다. 불안과 더불어 염려 속에 살아가므로 목표를 달성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 동안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던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목표가 멀먼 멀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목표가 가까우면 가깝다고 게으른 사람이 있습니다. 올해에 세운 목표가 있습니까? 아니면 작년에, 5년 전에 , 10년 전에 세웠던 목표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 목표를 향해 지금도 전진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생각을 잡고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같은 마귀의 유혹에 결코 넘어가지 마십시오. 생각을 오래 하는 사람은 생각만 하다가 인생을 다 허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십시오. 지금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주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기쁨으로 그 일을 하십시오.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 순간에 우리에게는 여러 생각이 몰려오며, 두려움이 엄습해오며,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싶은 충동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앞에 주님이 계신데, 왜 주님을 보지 않고 자꾸만 주님께 등을 돌리려고 하십니까? 주님만 바라보면서 뒤를 돌아보지 맙시다.

달리는 선수가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면, 그는 선수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1분1초를 아껴야 하는 달리기에서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의 점수는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내 뒤에 누가 따라오는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내 뒤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지 뛰는 사람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열심히 뛰어서 목적지에 도착해야만 합니다. 목표가 정해졌으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맙시다! 앞만 향해 쉬지말고 꾸준히 달려갑시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존감도 부족하고 자꾸만 정에 치우쳐 공과 사도 구별하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렇게 주의 일을 하도록 불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생각해보니 쟁기를 손에 들고 이 사람 저 사람, 이 일 저일을 간섭하며 가느라 제가 막상 해야할 일을 너무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주의 일보다는 제 생각에 더 낫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여 살았으며, 하나님보다 부모님(배우자, 상사 등)을 더 무서워하며 그분들의 비유를 맞추느라 주의 뜻대로 살지 못했던 때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평안함보다는 두려움과 근심 걱정을 짊어지고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 동안은 쟁기를 손에 들고 자꾸만 뒤를 돌아본 저였지만, 이제부터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정에 치우치지 않고, 관습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며 살아가길 원하오니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주옵소서.
믿음이 없어서 두려움에 휩싸이므로 부정적인 인생을 살지 말게 하시며, 항상 우선순위를 알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 먼저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이제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두려움없이 달려가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결코 뒤를 돌아보지 말게 인도하여 주셔서 마귀가 넣어주는 생각에 빠지지 말게 하시며 오직 주만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최선을 다하는 경주를 함으로 최후의 승리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