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반도 끝자락에서 들리는 두 가닥의 노래

한명철 목사┃ 한명철 목사는 말씀 연구와 기도에 매진해 온 목회자이다.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팍스신학대학원(George Fox Evangelical Seminary)과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JSTB)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은혜와 평강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한명철 목사는 말씀이 어떻게 삶속에서 역사하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오로지 성경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그의 글은 읽는 이의 삶을 헤집는다. 한목사의 책은 성경을 깊이 이해하는데 혜안을 던져주고 있다.한명철 목사의 대표적인 책은 《강한 용사》 《살아난다 성경암송》 《창조적 사고를 키우는 자기학습법》 (두란노), 《붕괴의 신호음이 들릴 때》 (쿰란출판사), 《고백》《전쟁》《소통》《부흥》《대언》 (본출판사) 등이 있으며, 약 30여권 이상을 출판하였다. 한목사님의 책과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서 들리는 두 가닥(Sing apore)의 노래

1819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개발한 항구를 시발점으로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는 우여곡절 끝에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영국 통치에서 벗어났고 2년 후인 1965년에 말레이시아 연방을 탈퇴한 독립 국가다. 서울보다 조금 크고 말레이시아의 1/500에 불과한 좁은 면적이지만 국민소득 5만 불을 상회하는 소위 일등 국가에 속한다. 이곳에 최고 부국의 통치자와 세계 빈국 중의 하나인 북한 지도자가 마주 대했다.

아주 작은 섬나라, “평화와 고요”를 뜻하는 직삼각형 모양의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 당장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서로 건널 수 없는 섬을 이어주는 브리지처럼, 두려운 심연에 놓인 거대한 디딤돌처럼 싱가포르가 갑자기 부상했다. 미국의 철없는 젊은이가 차의 덮개에 스프레이를 뿌렸다가 미국의 공식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라 곤장형을 가했던 자존심의 나라에 자신만만한 트럼프가 입성했다. 두 지도자의 만남은 길바닥 싸움으로 깡과 맷집을 키운 소년과 체육관에서 몸을 단련한 청년이 사각의 링에 오른 정경과 흡사하다. 역할이 어떠하든 다윗과 골리앗이 대치한 형국이다.

잠시 영어 파자(破字) 놀이를 한다. Singapore는 sing과 apore로 되어 있다. 18세기말 스코틀랜드의 한 백과사전(Encyclopaedia Parenthesis)에서는 apore를 “배가”, 또는 “두 겹”을 뜻하는 ‘doubling’으로 정의했다. 이 뜻을 적용해 풀이하면 Singapore 곧 Sing apore란 “두 가닥의 노래”다. 지금 말레이 반도의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이와 흡사하다. 철통같이 삼엄한 경비 속에 약 570m 거리의 세인트 레지스(St. Regis)와 샹그릴라(Shangri-la) 두 호텔에 전혀 상이한 정치 체제를 신봉하는 두 지도자가 야릇한 투숙을 했다.

원수 같던 두 원수의 기묘한 회담

최고의 경호를 받으며 최고의 의전에 따라 날선 공방과, 설전, 회담 취소 등 우여곡절 끝에 초유의 역사적 대면이 성사되었다. 조마조마한 기다림 끝에 이뤄진 극적 만남이기에 세계가 초긴장이었다. 단순히 동서양 지도자의 만남, 두 적대국 수뇌끼리의 조우가 아니었다. 서로 ‘원쑤’(怨讎)로 간주되었던 두 나라의 원수(元首)가 외나무다리가 아닌 외딴 섬나라에서 실제로 만났다. 마음의 무장도 해제한 채 마치 아무 흉허물도 없는 친구처럼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게다가 두 지도자의 특징이 너무 특출 나고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기에 이 기묘한 만남이 의외의 결과물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호사가들 그리고 일반인들의 관심까지 폭증되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에 관한 문제여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도 충분했다. 세계의 각 통신사들은 놀라운 뉴스들을 타전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었다. 공동발표문에는 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필자의 귀에는 분명히 음색이 다른 두 가닥의 노랫소리로 들리니 어쩐 연유인가! 내 귀가 상한 것일까? 아니면 두 지도자가 만들어낸 화음에 불협화음이 섞여서일까? 문제는 싱가포르 회담 이후(Post Singapore)다.

현상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6월 12일 벌어진 1회전은 서로를 탐색하다 신경전으로 끝났다. 십여 초의 악수는 역사적 화해의 몸짓으로 충분했지만 실상은 팽팽한 기 싸움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한 차례 회담은 폭풍처럼 지나갔지만 앞으로 전개될 회담의 양상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140분의 단독회담, 확대정상회담, 오찬, 그리고 역사적인 합의문 채택과 서명이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화기애애했던 정상회담 분위기가 화기 애매한 후속 회담이 되지 않으려면 양측의 진정성이 관건이다.

하나님의 맷돌은 어디로 구를 것인가?

배타적이지 않고 포괄적인(inclusive) 문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실로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이어온 살벌했던 적대관계 청산에 진일보한 것은 가시적 성과다. 하지만 바벨론 유수기를 회상시킬 만한 그 세월 동안 너무 많은 문제들이 산적했고 풀어야 할 매듭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회가 거듭할수록 서로의 실력과 기술이 나오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견주기다. 통계상의 전력을 보면 이미 끝난 싸움이지만 이런 싸움에는 변수라는 것이 너무 많이 작용한다. 구곡주(九曲珠)의 야화처럼 개미허리를 묶은 끈에 바를 꿀(蜜蟻絲)을 누가 얼마나 확실하고 많이 내느냐에 따라 매듭은 한순간에 풀어질 수도 있다. 아니면 둘 중의 하나가 알렉산더 대왕처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획기적인 일도양단의 길을 취할 수 있다.

한편 링 주변을 살펴보니 가관도 아니다. 양 코너에 자리한 시진핑과 아베는 상기된 표정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심판도 아니고 관중도 아닌 어정쩡한 입장에서 경기를 물끄러미 지켜본다. 푸틴과 유럽의 국가 대표들은 팔짱을 낀 채 무관심한 척 하면서도 링과 관중석으로 부지런히 시선을 뿌린다. 앞으로 DMZ 평화의 집과 통일각, 서울과 평양, 워싱턴과 베이징, 그리고 세계의 여타 지역을 오가며 비중 있는 회담과 접촉이 빈번해질 것이다. 천천히 굴러가는 것 같지만 갈아야 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하게 갈아엎으시는데 하나님의 맷돌이 어디로 어떻게 굴러갈지를 은밀히 관조해본다.

능란한 사업가에 널뛰는 국제정세

능란한 사업가인 트럼프가 이 호기를 단번에 써먹을 리 없다. 회담이 웬만큼 길어지고 민감한 문제들이 거론되며 가시적 결과물들을 하나둘씩 쏟아내는 한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는 탄탄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재평가도 운위되며 매일 아침 시민들은 한반도 관련 소식들로 일희일비하게 될 것이다. DMZ에 근접한 땅값들은 이미 들썩이기 시작했고 관련 종목 코스피, 코스닥 주가들은 한동안 젊은 지도자의 말 한 마디에 따라 등락폭을 키워갈 것이다. 다우와 나스닥도 그 여파를 피하지 못하고 일본의 닛께이, 대만의 항셍, 독일(DAX)과 영국(FTSE), 브라질(BVSP)과 터키(BIST)의 주가들까지 그 파동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현안에서 경제적인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이합집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문서에 의한 종전 선언은 빨라도 실제 종전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카메라 앵글은 한동안 한반도의 동정을 주시할 것이다. 기자들의 발 빠른 취재 경쟁이 더욱 불을 뿜을 것이다. 천군들도 비상 대기에 처해 있을 것이고 가브리엘과 미가엘은 주님의 표정만을 주시할 것이다. 이 기묘한 상황에 머쓱해진 사탄이 헛기침을 연신 해대며 중간 간부급의 악령들을 족쳐댈 것이다.

Post Singapore를 CVIO로 대비하라

근대 한국이 어수선한 시절 세간에 퍼진 노랫말이 있었다. “소련 놈 속지마라! 미국 놈 믿지 마라! 일본 놈 일어난다! 조선 놈 조심하라!” 이 시점에서 회담 과정을 지켜보던 필자는 이곳 미국 시간으로 날밤을 새며 자판을 두드리는 중인데 이런 노랫말이 뇌리를 스친다. “러시아 놈 러시(돌진)한다(패권 회복)! 아메리카 놈 아무렇게나 한다(국익우선주의)! 일본 놈 일 저지른다(독도 문제)! 중국 놈 중구난방이다(동북공정식 대국굴기)! 한국 놈 한 눈 팔지 말고 꿋꿋해라! 꿋꿋하면 굿굿(GOOD GOOD)이요, 굿굿이면 갓갓(GOD GOD)이다!” 역시 관건은 O(Obedience)다.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복종’만이 우리의 상황을 선으로 바꿀 것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새끼손가락 걸어 약속하고 엄지손가락 찍어 확인해도 합의 내용이 이행되려면 양측의 뼈를 깎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요란한 속보의 홍수 속에 결국 CVIG도, CVID도 명문화되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CVIO(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복종) 의지는 확고부동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다.

어쨌든 한반도에는 전혀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었다. 이 기류를 제대로 타면 윈윈(win win)의 상승 국면에 놀라운 비상을 이루겠지만, 기류에 잘못 휘말리면 토털로스트(total lost)의 하강 국면에 비참한 추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세기의 회담 후에 김정은과 트럼프가 좌우 수레바퀴 되어 역사의 지평선에 섰다. 한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모으면 포스트 싱가포르(post Singapore)는 김정은과 트럼프의 이륜마차(2기통)에서, 문재인과 시진핑이 합류한 사륜마차(4기통)가 될지, 나아가 아베와 푸틴까지 가세한 육륜마차(6기통)가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반드시 반도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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