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남철 목사(평강중앙교회. 삼산노회장 역임)

[전도서 4:9~10]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사랑의 편지’에 게재된 한 독자의 사연입니다.

아홉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아이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아들은 집에 가는 길에 도넛을 먹고 싶다고 하고, 딸은 붕어빵을 먹고 싶다고 야단이 난 것입니다. 둘의 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고, 한 아이 말만 들어주자니 차별하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오빠가 먼저 동생에게 ‘가위, 바위, 보’로 정하자고 했습니다.

어린 동생은 아무 생각 없이 “그래, 그래!” 하며 신이 났습니다. 그러나 가위, 바위, 보를 잘 할 줄도 모르는 동생이 지게 되면 길거리에서 떼를 쓰며 울 것이 뻔하니 내심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둘의 가위바위보에서 동생이 이겼고, 우리는 사이 좋게 붕어빵을 먹으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쉬워하는 아들을 위로해 주고자 “다음에는 오빠가 좋아하는 도넛 사 먹자.”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살짝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동생은 맨날 가위 밖에 낼 줄 모르거든요. 오늘도 가위 낼 줄 알고 내가 일부러 져 준 거에요. 잘했죠?”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부모의 욕심과 기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나 반성해 봅니다. 우리가 서로 경쟁하고 서로 이기려고 하기보다 조금만 더 양보하고 배려한다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고린도전서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어느 심리학자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습을 세 가지 모습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밀림의 사회입니다. 밀림 속은 생존의 경쟁이 치열한 현장입니다.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의 살벌한 투쟁이 벌어집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폭력과 투쟁, 거짓말과 이간질, 폭로, 흠집내기, 등 그 어떤 방법도 불사합니다. 사생결단의 사회입니다.

두 번째는 스포츠의 사회입니다. 규칙의 범위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스포츠와 같이 법규에 따라서 정의에 의해 경쟁하며 싸우는 사회입니다. 승자와 패자가 있습니다. 승자는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패자는 슬프고 괴로운 냉혹한 사회입니다.

세 번째는, 교향악의 사회입니다. 교향악에서는 모든 악기가 악보에 충실하며 질서를 지키면서 절제된 자기의 소리로 협동과 조화를 창조해 냅니다. 각기 다른 악기들이고 다른 사람들이고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고 특색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음악을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조화를 이루는 그래서 감동을 주는 사회입니다. 여기에는 승자와 패자가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도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힘이 있고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밀림과 스포츠 경기장과 같습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밟아야 하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냉혹함과 비참함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모습이요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교향악단과 같은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영원한 승자도 없고 영원한 패자도 없으며 또한 영원한 원고도 없고 영원한 피고도 없습니다. 다 어울려 더불어 살고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으로 인하여 세워진 생명 공동체입니다. 평화와 화목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생각과 경험과 배경과 능력... 각각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예배와 양육, 교제, 봉사, 전도, 선교라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으고 조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피를 나눈 형제자매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나눌 수 없는 영원한 영적인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해서 연합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시편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은 나를 무시하고 버릴지라도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요 큰 재산입니다. 혼자는 일어설 수 없지만 둘이 서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여럿이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혼자서는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영적인 시험에 들어 낙심하거나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위대한 엘리야 선지자도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 앞에 죽기를 자처했듯이 때로는 강하다가도 약해 질 때가 있고 습관적인 반복, 형식 등에서 오는 공허함과 무기력함 등으로 오는 좌절도 있습니다. 이럴 때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 영적 동지 영원한 가족이 있다면 우리는 위로를 받고 격려 받으면서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주님의 십자가는 위로가 됩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이 십자가를 깨닫고 부활을 바라보도록 나를 인도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내 곁에 있을 때 나는 위로 받게 되고 용기를 얻고 힘을 낼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릅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애써주고 정말 힘들 때 따뜻한 위로와 격려와 사랑으로 힘과 용기를 심어 준 믿음의 동지들과 영적 멘토들을 생각하며 서로를 위해 중보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윤남철 목사(평강중앙교회. 삼산노회장 역임)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고 이웃과 약자들을 돌아보지 못한 채 이기적으로 살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지 못하고 사명을 다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허락하사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사도 바울처럼 희생과 섬김, 사랑과 수고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소서.

예수님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써 인격 관계, 섬김의 모범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하소서.

혼자가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함께 하는 자로 서길 원하오니 영적인 교제를 통해 함께 영적으로 성장하고 함께 건강한 신앙생활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말씀 안에서 서로 믿음과 사랑과 비전을 가지고 위로자가 되게 하시고, 약하고 낙심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영가족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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