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육/문화 시문학
【송광택 詩】일단 정지 / 3호선 전철/ 책 / 산책아들에게 / 어머니 / 히로시마 원폭 / 만남 / 새벽

 

일단 정지

    

                  송광택

 

삶의 어느 길목에서

돌연 나타나는 ‘일단 정지’

가던 길 멈추고 뒤돌아보면

복병처럼 숨 죽이고 다가오는

안개

 

숨가쁘게 달려온 것도 아니지만

일단 정지하고 돌아 보네

편린처럼 흩어진 시간의 조각들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시간의 영상

 

이젠

미운 사람 없어라

쓰라린 마음도 없어라

한 무더기 낙엽처럼 쌓여가는

살아온 이야기

 

3호선 전철
 
                                      송광택
 
책이 수북하다
앉아있는 책
서 있는 책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할머니
무슨 음악 듣고 계신가
 
바닥에 가방 놓고
그 위에 앉은 학생
게임에 몰두하고 있네
 
한 어르신 얼굴에서
아장아장 어린 시절
찾아본다
 
열세 살 소녀 시절
고운 미소는 어디 갔을까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
조금씩 작아지는
몸 항아리
 
이 항아리 안에
무엇을 담고 있을까
 
저마다 품고 있는
말랑말랑한 이야기 책
 
세월 속에
바람 속에
떠밀려 가고 있다

 

                                     송광택

잠들어 있을 때

흔들어 깨우고

지쳐있을 때

내 등을 밀어주는 너

 

네 품에서 뛰놀다가

그 무릎에서 잠들고 싶다

네 그늘 아래 쉬다가

그 어깨에 기대고 싶다

 

길을 잃을 때 나침반이 되고

목마를 때는 청정한 샘이 되며

잠 못 이루는 깊은 밤

초롱한 눈빛의 벗이 되어다오

산책

 

울타리를 걷어내고
닫힌 문을 열어라
짐은 가볍게
눈은 맑게
그리고
약간 고개를 쳐들고
다정한 이 곁에 없어도
홀로
순례자처럼 나그네처럼
길을 나서라
맑은 샘물 한 모금 기대하며

이제
때가 되었다
길을 나서라
신비의 숲 속으로
태초의 첫날
그 밝음과 놀라움을 만날지도 모르니
두근거리는 마음
진정시켜라
숨죽이고 있던
네 영혼
풀어놓아라

 

아들에게

                    송광택 

 

물이 되어라 
흘러가며 
부딪히며 
내려가는 계곡에서 
물이 되어라 
큰 돌 작은 돌 막아서지만 
아름다운 소리 만드는 
물이 되어라 
숲을 키우고 
잠잠히 자리 잡고 있는 
바위를 적시며 
꿈을 꾸어라 
큰 바다에서 만날 
친구들을 생각하며 
물이 되어라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어두우면 빛이 되어 
더러움 속에서도 
아픔 속에서도 
하늘마음 간직하는 
물, 
물이 되어라 
        

어머니 

                                 송광택 


이 새벽
맑은 눈으로 하루를 여시는
당신의
촉촉한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고운 빛으로 물든
다함 없는 은혜,
바로 이로써 당신은
우리 의 영혼과 온몸을
감싸주십니다.

새로운 탄생의
경이로움으로
고요히 다가와서는
아침 이슬처럼
당신의 손끝은 투명하여
그 손길 이르는 곳마다
사랑의  향기가 살아납니다.

하루가 지나
저녁 황혼이 
가슴 깊이 스미어 들때
당신은 모든 이의
채 이루지 못한 꿈을 거두어
하늘의 은총 아래 묻으며
두 손 모아
이 모든 꿈이 빛 가운데 부활하기를 기도하십니다.

 

 

히로시마 원폭

                              송광택

 

우리는

그것을

버섯구름이라 하네

거리를 두고 보면

그건

그저 버섯구름이라네

 

건반 위에 남긴 지문보다

더 희미한 흔적으로

소리 없이

사라진 생령들

모든 이의 마음속에서

모든 현이 끊어 지 는 소리

그건

다만 무너져 내리는 소리

뉴욕과 파리에서

모스크바와 동경에서

서울과 아프리카 오지에서

그건 저주의 빚

천만 개의 송곳으로 날아와

온몸을

천천히 그리고 깊이 누르는

원혼들의

습격

 

이제는 신화

짙은 안개 속에 묻혀버린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안녕하다

밑없는 구렁 속으로 떨어지면서

우리는 모두 안녕하다

그날 이후

 

만남

                            송광택

 

빛은
우리를, 만남을
기다린다

빛은
이웃의, 눈물의, 분노의
그리고
마지막 불씨 같은 희망의
기다림 뒤에 서 있다.

삶의 다양함
느낌과 부딪힘과
부딪히는 소리의 다양함
모두 다
빛이 태어나려는 진통이다.

빛을 만난다.
낯설지 않은 만남,
눈빛, 목소리
앉고 일어 섬까지
낯설지 않다.
기다리고 기다린 만큼
아파도 참은 만큼 밝게
밝게 우리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새 벽

                                      송광택 

  

새벽은 깊은 우물이다
새벽에
내면 깊은 곳으로
두레박을 내리는 기쁨
내 은밀한 가슴 헤치고
뼈 속까지 시려오는
생수를 올려
내 황폐한 뜨락에 쏟아 붓는다

생수의 투명함은
진리같이
가슴에 와 닿고
와 닿은 하늘의 마음은
싱싱한 새벽 정기

네 이마에 내 이마 마주 대고 있으면
스스로 깨달음이 되는 새벽
늘 깨어
나를 기다리는 새벽 

송광택 목사, 창조문예 신인작가상, 바울의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목사, 계간 국제문학 편집이사

최미리 기자  voheassa@naver.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미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