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양을 파종하는 휴면세포 겨냥하는 암 연구자들

세균에게서 빌려온 유전체편집이라는 무기 말고, 다른 종種에게서 빌려온 또 하나의 최신 항암제가 있다. 그것은 ‘암 살상력’이 탁월한 바이러스를 용병傭兵으로 고용하는, 암살상 바이러스oncolytic virus(OLV)다. OLV는 암세포만을 감염시켜 살해하고, 건강한 세포는 그대로 내버려둔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예: 홍역 바이러스, 폴리오 바이러스,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연구실에서 변형하여 암을 선택적으로 사냥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들은 암세포를 감염시킨 다음 폭발시키며 빠져나옴으로써 암세포를 죽이며, 면역계의 시선을 끌어 바이러스와 종양을 동시에 공격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화학요법 등을 사용하지 않고 OLV를 사용하면 많은 이점이 있다. 첫째, 암은 변이를 통해 개별 화학요법제의 공격에 저항성을 띨 수 있지만, OLV의 경우에는 저항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낮다. 왜냐하면 많은 약물들은 한 가지 필살기만 보유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는 스위스 군용칼과 같아서 다양한 살상기술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OLV는 다른 약물들보다 선택성이 높은데, 이럴 경우 종양만 특이적으로 겨냥할 수 있으므로 환자에 대한 독성이 낮아진다. 셋째, OLV는 종양 안에서 증식하여 축적되므로, 보충하지 않을 경우 혈중농도가 점차 하락하는 약물과 달리 시간 경과함에 따라 암 살상력이 실질적으로 증가한다.


물론 다른 항암제들과 마찬가지로 OLV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난 몇 년간 바이오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실시한 초기 임상시험 중에는 – 성공작이 없는 건 아니지만 - 실패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OLV의 핵심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종양을 향해 이동하는 바이러스가 도중에 면역계에 발각되어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유능한 면역계라면 아무리 변형된 바이러스라도 불심검문 없이 통과시킬 리 만무하다. 전세계 연구실에서 다양한 솔루션이 임상시험에 계류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인간의 세포를 연락선으로 개조하여 바이러스를 종양이 있는 곳까지 실어나르는 방법도 있고, 바이러스에 면역억제제를 적재하여 면역계를 일시적으로 억제하는 방법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 좀 더 직접적인 솔루션이 이미 효과를 보고 있는데, 그것은 바이러스를 종양에 직접 주입하는 방법이다. 상당수의 암들은 접근이 불가능하므로, 이 방법은 모든 암에 적용될 수 있는 솔루션은 아니지만 피부암에는 안성맞춤이다. 2015년 10월, 전세계가 기다리던 최초의 OLV가 마침내 FDA의 승인을 받아 T-VEC이라는 이름의 항암제로 탄생했다. T-VEC은 수술이 불가능한 흑색종melanoma(피부암)을 치료하는 주사제로,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변형하여 만든 것이다. T-VEC은 종양세포만을 감염시키도록 프로그래밍되었을 뿐 아니라, GM-CSF*라는 분자를 코딩하는 유전자를 장착하여 면역계의 암 살상능력을 증강시키도록 설계되었다.

FDA에 제출된 승인신청서에 수록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436명의 전이성 흑색종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T-VEC을 투여받은 환자군의 16.3퍼센트에서 최소한 6개월 동안 피부 및 림프절의 병변 크기가 줄어든 데 반해, 표준 치료제를 투여받은 환자군에서는 불과 2.1퍼센트가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흑색종은 최근 증가일로에 있는 데다, 진행성 단계에서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T-VEC의 임상시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 결과와 T-VEC의 혁신적 성격을 부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OLV라는 새로운 치료법의 등장을 축하할 단계는 아니다. 왜냐하면 환자의 생존율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지 않았고, 뇌, 뼈, 간 등의 내부장기에 전이된 흑색종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별로 없고, T-VEC이 FDA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요식행위를 타파하고 새로운 길을 연 만큼, 다른 OLV들이 그 뒤를 이어 완전히 새로운 계열의 항암제 군단을 형성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과립구-대식세포 집락 자극인자granulocyte-macrophage colony-stimulation factor

종양을 파종하는 휴면세포 겨냥하는 암 연구자들

암 연구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신속하게 분열하는 종양세포'를 살해하는 항암제를 설계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그중 상당수의 전략이 180도 달라지고 있다. 침묵 상태에서 전신으로 퍼져나가 종양의 씨를 뿌리는 악성세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암으로 인한 사망의 약 90%를 차지하는 전이암(metastasis)을 파종하는 것은 '증식하는 종양세포'가 아니라 '침묵하는 종양세포'이기 때문이다. 초기 치료가 성공한 것처럼 보여 완치의 희망을 품는 환자들 중 상당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재발을 경험하는데, 그 주범이 바로 휴면 암세포(침묵하는 종양세포)들이다. 증식하는 종양세포들을 겨냥하는 기존의 치료법은 휴면 암세포들을 종종 놓치는데, 그 이유는 활발히 분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휴면 암세포(dormant cancer cell)들은 희귀하며, 체내에 존재하는 수조 개의 정상세포들 중에서 걸러내기가 어렵다. 그 동안에는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연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고 있다"라고 마운트 사이나이 이칸 의과대학에서 암을 연구하는 훌리오 아기레-히소는 말했다.

암 연구자들은 오는 6월 19-22일 캐나다 몬트리올에 모여, 휴면 암세포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아기레-히소에 따르면, 그런 모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연구자들의 수가 임계치에 도달했다. 휴면 암세포 연구가 임상적 측면에서도 절실히 요구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특히 유방암, 전립선암, 췌장암과 같이 재발률이 높고, 때때로 치료한 지 몇 년이 지나 재발하기도 하는 암의 경우에는 휴면 암세포 연구가 시급히 요망된다. "의사들은 종양을 제거하고 방사선 치료를 한 후 제반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조만간 암이 전이되는 것을 보고는, '도대체 이것들이 어디에서 왔나?'라고 의아해한다"라고 캘리포니아 소재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미나 비셀(암 연구자)은 말했다.

침묵하는 세포를 스토킹하라

'모종양(parent tumor)의 발달 초기에 휴면세포가 떨어져나와, 혈류를 타고 신체의 다른 부위로 이동한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참고 4).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다른 조직이나 장기에 정착한 휴면세포들은 효과적으로 침묵하며, 미지의 유발요인(trigger)이 찾아와 자신을 깨울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때가 돼야만 그들은 비로소 분열을 시작하여 새로운 종양을 형성한다.

그런데 휴면상태(dormancy)를 연구하려는 암 연구자들은 곧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 기존의 암 생쥐모델(참고 5)은 신속하게 성장하는 치명적인 모종양, 즉 원발종양(primary tumour)을 생성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면상태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것은 '서서히 성장하는 종양'이며, 원발종양이 제거된 지 한참 후에 그것들을 추적할 수 있는 도구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런 모델 동물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라고 인디애아폴리스 대학교의 유방암 전문가인 캐시 밀러는 말했다. 그러나 많은 연구실들이 노력을 거듭한 끝에, 1년 이상 휴면세포를 추적할 수 있는 생쥐 모델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휴면세포를 식별하는 기법도 향상되고 있다. 듀크 의대의 세포생물학자 조슈아 스나이더는 형광표지(fluorescent marker) 혼합물을 이용하여 암 관련 유전자를 발현하는 휴면세포들을 확인·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소의 제이슨 비엘라스(유전학)는 이번 몬트리올 회의에서 예비결과를 발표할 예정인데, 그 내용은 특이적 DNA 시퀀스를 이용하여 휴면세포에 바코드를 붙이는 것이다. 바코드가 부착된 세포들은 저렴한 DNA 탐지방법을 이용하여 '10억 개의 세포 중 하나'의 정밀도로 탐지될 수 있다.

일단 휴면세포가 확인되면, 휴면세포가 발현하는 유전자를 결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이용하여 '휴면을 유도하는 인자'와 '휴면세포를 깨우는 유발요인'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정보들을 입수하면, 휴면세포가 깨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휴면세포가 계속 휴면상태에 머무는 한, 환자의 목숨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밀러는 말했다.

휴면세포를 저지하라

다른 한편에서는 휴면세포를 저지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아기레-히소의 연구실에서는 2015년, "승인된 두 가지 약물(5-아자데옥시시티딘, 레티노산)의 결합체가 (실험실에서 배양된) 전립선암 세포와 생쥐에서 휴면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참고 6). 그리고 마운트 사이나이의 종양학자 윌리엄 오와 동료들은 임상시험을 통해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립선암 환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다른 연구자들은 휴면세포를 완전히 처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아기레-히소의 연구실에서 암을 연구하는 베로니카 칼보-비달과 동료들은 일라이릴리의 연구진과 손을 잡고, PERK 억제제(PERK inhibitor)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다. PERK(protein kinase RNA–like endoplasmic reticulum kinase)는 휴면 암세포에서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현되는데, 생쥐를 이용한 선행연구에서 PERK 억제제가 휴면세포를 살해하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연구진은 그 메커니즘을 좀 더 자세히 알아내기 위해 개별 휴면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밀러에 따르면, 재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암을 식별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야만 의사들로 하여금 '휴면세포를 겨냥하는 치료법'이 필요한 환자를 선별하게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녀는 다른 유방암 연구자들과 손을 잡고, 추가적인 호르몬치료법을 통해 재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환자를 판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재발 여부를 훨씬 일찍 판단하는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s://www.nature.com/news/breast-cancer-caught-in-the-act-of-spreading-1.12342
2. https://www.nature.com/news/cocktails-for-cancer-with-a-measure-of-immunotherapy-1.19745
3. http://www.aacr.org/Meetings/Pages/MeetingDetail.aspx?EventItemID=150&ItemID=665&DetailItemID=665#.Wyant_ZuLbI
4. Marx, V. Nature Methods 15, 249-252 (2018); http://dx.doi.org/10.1038%2Fnmeth.4640
5. https://www.nature.com/news/cancer-genome-study-challenges-mouse-avatars-1.22782
6. Sosa, M. S. et al. Nature Commun. 6, 6170 (2015); http://dx.doi.org/10.1038%2Fncomms7170

※ 출처: Nature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5445-x

양병찬(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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