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심방은 무엇입니까?

A. 심방(尋訪)은 목회적 돌봄(Pastoral Care)으로 영혼 돌봄을 목적으로 가정에 장로가 방문하는 것입니다.

‘심방’은 장로교 정치 원리에 있는 제도입니다. 우리는 ‘Disciple’을 ‘제자도’라고 번역하지만 본래 의미는 ‘권징’이고 ‘심방’의 의미가 있습니다. disciple의 기본 의미는 ‘훈련’입니다. 심방의 목적은 영혼 돌봄입니다. 훈련은 그 사람의 상태를 파악한 뒤에 훈련의 강도를 정할 수 있습니다. 돌봄을 이루기 위해서도 영혼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심방은 영혼 돌봄이라고 하는데, 일차 과정은 영혼 상태 파악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강하게 하는 훈련 혹은 영혼을 위로하는 사역으로 돌봄을 진행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심방은 본래 제정된 심방의 원리를 벗어나 있습니다. 목사가 방문하면 모두가 심방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우리가 운용하는 교회 질서는 17세기 무렵에 결정된 것인데, 당시 교회는 기독교 사회였기 때문에 비기독교 사회인 우리와 잘 맞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심방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심방은 결석 심방일 것입니다. 기타 성도의 요구로 심방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심방은 본래 심방 거행자인 치리 장로가 계획하여 진행합니다. 사적 업무에 목사가 방문해서 예배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회 질서라고 볼 수 없습니다. 개인은 목사를 청할 자격이 없습니다. 장로나 목사가 방문 계획을 세워 방문을 통보하고 심방을 진행하는 것이 합당한 질서입니다. 우리는 심방을 요청하면 심방하는 것이 일상인데, 본래 의미는 아닙니다. 이러한 질서는 구교(천주교)에서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제의 방문은 대단한 일이기에 평신도가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장로교는 그러한 수준은 아니지만, 사적으로 목사를 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심방은 천주교의 고해성사를 개혁한 산물로 보아야 합니다. 고해성사는 개인이 고해방을 방문해서 알지 못하는 사제에게 죄를 고해해야 하고 사죄 선언을 받는 구조입니다. 비인격적인 방법입니다. 심방은 성도가 선출한 장로가 공개적으로 방문해서 대면해서 영혼의 상태를 파악하며 안녕과 성장을 도모하도록 질서를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은 예배가 아니라, 영혼 돌봄을 위한 구체적인 대화가 필요합니다. 영혼 돌봄의 1차 과제는 목사 설교 이해 정도라고 보아야 합니다. 성도가 목사의 설교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장로가 파악하고 목사와 협력해서 설교의 방향성과 강도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합당한 심방은 성도에게 영적 양식이 되는 복음 선포를 효과적으로 이루게 합니다. 말씀 종교라고 한다면 심방으로 목사의 설교 이해 수준은 반드시 파악되어야 합니다. 말씀 종교라고 하면서 말씀의 수위를 조절하지 않는 것은 거짓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사가 임의대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독단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목사와 장로는 협력하여 복음 선포의 강도의 수위를 조절해서 성도가 합당하게 설교를 듣고 믿음의 정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심방 예배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 너무나 깊숙하게 심방 예배가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방문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부목사가 오면 강도가 약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비기독교적 사고라고 보아야 합니다. 심방을 위해서 성도는 장로를 선출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기 영혼의 비밀을 잘 보장하고 자기를 위한 장로를 직접 선출해서 영혼의 돌봄을 의탁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스스로 세울 수 있다는 발상은 교회에 대한 불신이며 자기에 대한 과대망상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탁월한 이성을 소유했을지라도 스스로 설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병자를 위한 기도와 심방은 성경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도 기도와 함께 기름 사용을 제언했습니다(약 5:14). 우리 사회는 의학 분야가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 사역자가 매우 긴밀하게 관찰하며 방문해야 합니다. 심방은 특별계시 영역을 이루기 위한 영적 훈련이고, 병자 심방은 일반 영역 육체의 치료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약함으로 영혼의 약함이 올 수 있는 것을 방지하는 사역을 진행해야 합니다.

통상하는 이사, 개업, 기타 등등의 심방은 폐지되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분야는 매우 체계적인 지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타부(taboo) 기능이 있는 심방은 우상적입니다. 돼지머리를 올려놓지 않은 개업식을 대신한 개업예배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서운함을 이길 믿음이 필요하며, 더 체계적인 전문 지식이 필요합니다.

심방은 우리 교회 생활에 너무나 깊이 들어 있기 때문에 쉽게 조정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리를 먼저 결정하면서 진행한다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첫째, 장로는 자기를 심방하도록 선출한다. 둘째, 심방은 목사의 설교 이해 정도를 장로가 측정한다. 셋째, 심방은 장로가 하여 목사에게 보고하여 협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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