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22-27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예수께서는 서른 살이 되자 자신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령에 이끌리시며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에게 가장 큰 세 가지 시험을 다 통과하신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큰 능력을 행하시며 친히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에서 큰 칭송을 받게 됩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는 자신이 자라난 나사렛으로 가셔서 그곳 회당에서 성경을 읽으려 서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사야서가 쓰인 두루마리를 요청하여 받으신 후 이사야 61장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복의 날”로 표현된 부분은 생략하고 읽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구원 받을 자를 부르시고 깨끗하게 하시기 위함이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보복의 날”은 택한 자를 다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에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는 주의 재림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 후 성경책을 덮으시고 책을 돌려주신 후 앉으셔서 방금 낭독한 본문으로 강설하셨습니다. 이에 회당에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주목하고 바라보며 예수님의 강설을 들었습니다. 강설하시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그들은 예수님의 강설을 들으며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에 감동을 받고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 서로 말합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은 예수님의 강설로 인하여 감동을 받고 주님을 칭찬하였지만 곧바로 세상 기준으로 예수님을 평가하면서 주님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방금 들은 주의 말씀을 거부합니다. 즉,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아니, 이 청년이 너무 말을 잘 하고 영감이 있어서 대단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가난한 요셉의 아들이군, 이런 자가 이렇게 훌륭한 강설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세상 기준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판단한 후에 주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돈도, 명예도, 권력도, 학식도 없는 시골 청년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더냐”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당신들이 속담에 빗대어 나에 대해, ‘의사야, 네 자신이나 고쳐라. 네가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들었는데 여기 고향에서도 그 일을 한번 해 보아라!’고 말할 것을 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가뭄이 몹시 심했을 때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보냄을 받지 않았고 오직 시돈 지방의 사렙다에 있는 과부에게만 보내졌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문둥병 환자가 있었다. 그러나 시리아 사람 나아만 외에는 아무도 깨끗하게 되지 못하였다.”(눅 4:23-27, 쉬운 성경)

예수님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구약의 예언 성취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상 기준으로 판단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부르심을 받지 못했고” 또한 “깨끗하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결론입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보혈교회, 연세대학교 전자공학, 미국 필라 웨스트민스터 목회학 석사, 비블리컬신학교 신학석사. 현재 인천 송도거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러한 일은 예수님 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엘리야와 엘리사 때에도 발생했다고 알려줍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는 바알 우상이 이스라엘을 장악한 때였습니다. 바알은 돈과 풍요와 성적 쾌락의 우상이었습니다. 바알 우상신을 섬기던 자들은 그 가치관이 돈과 풍요와 성적인 쾌락을 삶의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바알을 숭배하느라 하나님이 보내신 주의 종들과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였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심한 가뭄이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알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의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지 않으시고 도리어 북쪽의 동쪽 해변가인 시돈 지방의 사렙다 마을의 과부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바알에게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풍요의 신인 바알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이 거짓되고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가뭄과 기근과 굶주림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오직 세상에 다 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예수님을 세상 기준으로 판단함으로써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요, 최고의 선지자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했습니다. 이는 마치 구약에서 우상 바알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를 영접하지 않고 또한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던 현상과 유사한 것입니다. 

아무튼 구약에서 엘리야 시대, 그리고 엘리사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삼 년 반의 가뭄 시기에 가루와 기름이 넘치는 주의 기적을 체험한 자가 아무도 없었고, 또한 나병 환자 중에는 깨끗하게 된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의 대다수가 바알과 아스다롯을 심각하게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참으로 사람을 부르시고 그들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시는 바로 그 메시아이십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에 빠져 세상 기준으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그분의 말씀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엘리야, 엘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면서 아람의 나아만 장군처럼 ‘깨끗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혈통과 무관하게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죄사함과 함께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0-13).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해 도리어 구원의 기회를 얻게 된 시돈 사람 사렙다 과부와 아람 사람 나아만 장군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방인들이던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시돈 사람 사렙다 과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렙다 과부에 대한 기사는 열왕기상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및 주변 국가에 가뭄이 한창일 때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엘리야는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그릿 시냇물 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제 그 시냇물까지 마르자 하나님의 명에 따라 시돈의 사르밧 과부에게로 가게 됩니다. 이제 엘리야는 그곳에서 약 3년 반의 가뭄이 끝날 때까지 머물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가보니 사르밧 성문에 이를 때에 주께서 말씀하신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 과부를 불러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 달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서 한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신 것과 매우 유사한 장면입니다. 결과도 비슷한데 엘리야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르밧 과부가 가뭄 기간 내내 물과 떡을 실컷 먹을 수 있었던 것처럼, 수가성의 여인 역시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받아 마시게 됩니다. 물론 그 샘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의 영혼에 넘치는 성령으로 인한 은혜의 강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엘리야는 그 과부가 물을 가지러 가려고 하자 한 가지 청을 더합니다.
“물을 가져올 때 떡 한 조각도 가져오라.”

그러자 과부가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고백합니다. 그녀는 놀랍게도 엘리야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 

이에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왕상 17:13-14). 

이때 과부는 그 상황에서 엘리야의 말을 믿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떤 상황입니까?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음식을 해먹은 후 이제 아들과 함께 굶어 죽게 되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주의 종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수 있습니까? 오히려 마지막 먹을 음식을 달라는 엘리야에게 욕을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은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내 삶을 던지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가난한 과부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하나님께 바친 것처럼, 사르밧 과부 역시 주의 종을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원의 기적을 체험하는 믿음입니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5-16). 

엘리야의 말을 믿고 그를 영접하고 물과 떡을 준 사르밧 과부는 가뭄이 끝나는 그 날까지 끊임없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차고 넘치는 기름과 가루로 이웃에게 나누었을 것이며, 함께 하던 엘리야 역시 하나님의 종으로서 더욱 존경과 신뢰를 얻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들으면서 마음 속에 생겨났고, 주께서 보내신 엘리야를 만났을 때 실험대에 올랐습니다. 이 때 과부의 상황은 절박하고 궁핍하고 낭떠러지 끝에 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먼저 그리스도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참 믿음으로 확증되고 하나님의 기적과 공급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과부는 남은 평생을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주의 참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즉, 주의 참된 백성은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사는 자들이며 날마다 받는 하늘의 만나로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4). 

그 후 사르밧 과부는 죽은 아들을 다시 얻게 되면서 하나님은 부활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부활의 신앙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는 부활의 신앙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땅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원히 이 땅에 임할 주의 나라를 바라보며 남은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왕상 17:24). 

이제 부활의 신앙을 가진 과부는 남은 삶을 날마다 죽음 앞에서 사는 것처럼 살게 됩니다. 즉, 당장 죽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참 믿음은 반드시 순교적인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이번에는 아람(수리아, 시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눅 4:27). 

나아만 장군은 세상적으로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고 또한 부요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만 깨끗함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엘리사를 통해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병에서 깨끗하여지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 

구약에서 나병은 영적으로 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병이 전염병이듯이 죄 또한 전염병이며, 나병은 그 근원이 말라야 치료될 수 있듯이 죄 또한 그 근원이 끊어져야 치료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나병은 병이 나았다고 표현하지 않고 깨끗하여졌다고 표현합니다.  

나아만 장군은 돈도 많았고, 권력도 거의 왕권에 이를 정도였으며, 또한 세상 영광을 누리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나병 문제, 즉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자,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나아만처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합시다. 그러나 심한 나병에 걸렸고 인간의 힘으로는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행복할 수 있습니까? 돈과 권력과 명예와 인기가 있으니 나병은 상관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병에 걸린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비참과 절망과 두려움과 슬픔에 빠질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류는 영적인 나병 환자인 것을 아십니까? 그들은 깨끗하여지지 않으면 이제 곧 더러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아십니까? 영적인 나병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한, 참으로 그 어떤 인간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이제 곧 죽음과 함께 영원한 게헨나, 즉 영원한 쓰레기 소각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다”는 말씀이 두렵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공동체로서 지금으로 말하면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하는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하여 천국을 확정 받지 못한 영적인 나병 환자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만일 영적인 나병 환자들이 자신의 비참한 상태와 죽음 이후의 상태를 의식한다면 이 땅에 사는 동안 잠시도 평안을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 말씀처럼 영적인 나병 환자들이 그들의 영원한 상태를 알게 된다면 반드시 미쳐서 쉴새 없이 자살하고픈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더라도 영원한 지옥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여 그 영혼이 깨끗하지 못한 교인은 영적인 나병에 걸린 상태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나병환자들처럼 가련한 자들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영적인 나병 환자에 걸린 자들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지금 나사렛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들 앞에 서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는데,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바알 신으로 상징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함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않고 거부하였으니 참으로 영적인 나병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떤 영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 내에 있다고 해서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된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영적 나병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서 믿고 순종해야 그 안에서 죄 사함 및 모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아만 장군이 깨끗하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나병환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병에서 깨끗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영적으로 나병환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 병에서 깨끗하게 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자에게는 반드시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신자를 허락하십니다. 나아만의 경우는 그가 포로로 잡아온 어린 이스라엘 소녀였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아이가 그의 여주인에게 말하였습니다.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가 우리 주인 나아만의 나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아내를 통해 이 정보를 듣게 되었고, 이에 나아만 장군은 나병을 낫기 위해 그 선지자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관인 아람 왕에게 나아가 그 여자 아이가 말한 사마리아의 있는 선지자에 대해 말하였고, 아람 왕은 그 나라를 구원한 나아만을 너무나 소중한 큰 용사로 보는지라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까지 서 주며 선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나아만 장군은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와서 아람 왕의 편지를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은 말도 안 되는 편지 내용에 전쟁을 치르자는 것으로 오해하고 옷을 찢으며 괴로워합니다. 이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듣고 염려 말고 나아만 장군을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집 문까지 찾아와서 그 앞에 서게 됩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집 문 밖에 나와보지도 않고 종을 보내어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지시합니다 그리하면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분노합니다. 
“감히 아람 나라의 큰 용사가 왔는데, 그것도 왕의 편지와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갖고 왔는데, 선지자가 문 밖에 나와보지도 않고 종을 통해 지시한다는 말인가!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그러면서 그가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려 할 때, 그의 종들이 만류합니다. 
“아니, 장군님, 아무도 고칠 수 없는 나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선지자가 더 큰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고작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한 것인데 그것조차 따르지 않으면 말이 됩니까?”

바로 이때,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꺾고 나병의 치료를 위해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나아만 장군은 나병으로부터 깨끗하게 되어 완전한 자유와 건강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라는 영적인 나병에서 낫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과거의 죄악 된 삶에 대해 회개함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세상의 모든 명예, 돈, 권력, 자랑 등을 내려놓고 겸손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자아를 부인하고 주의 명령을 따르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누구도 영적인 나병인 죄로부터 깨끗하여질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기를 갈망하기 바랍니다.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잠그듯이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분의 십자가에 여러분의 영혼을 잠그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에 생명을 다해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나아만이 물에 몸을 잠근 후 일어날 때 그 몸이 깨끗하여져서 일어난 것처럼 우리는 영적인 나병에서 깨끗해지고 또한 새로운 영혼으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6-8, 10-11)

이 이후로 우리의 과거의 죄악은 전부 다 사함 받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도다”(골 2:13-14). 
그러나 정죄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이처럼 나아만의 문둥병이 믿음과 순종으로 깨끗해진 것처럼 우리 영혼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름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 영혼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나병의 근원이 마를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 같은 새 살이 돋음 같이 우리 영혼이 새로운 생명을 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영혼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9-10).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놀라운 거룩한 힘이 우리 영혼에 흐르게 됩니다. 
[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9-14)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2, 31). 

그러므로 죄 사함을 받고 그 영혼이 어린아이처럼 새 것이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 영혼의 새로운 생명이 하나님의 영의 강력한 보호와 도움 하에 얼마든지 죄로부터 온전하게 자유로운, 새롭고 거룩한 감사와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또한 우리에게 새생명과 성령을 부으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자존심과 세상 조건들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께 나아가 거룩함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영적인 나병에 걸린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자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놀라운 능력과 위로와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깨끗함을 얻는 믿음을 다루었습니다. 주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바알 우상의 가치관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멸시하며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처럼 주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면 죽음에 이를지라도 주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며, 나아만 장군처럼 영적인 문둥병을 처절하게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보혈의 강에 잠김으로 부활의 믿음과 함께 깨끗함을 얻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 그 영혼은 갓난 아이처럼 새롭게 될 것이고, 나아가 그리스도의 영을 따를 때 그 영혼이 강건하게 성장하여 주의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바알 우상에 물든 상태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까? 여전히 세상의 돈과 풍요와 쾌락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비록 자신들을 신자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바알 숭배자들일 뿐입니다. 심지어 야보고 사도는 돈과 세상에 물든 자들이야 말로 바알 신을 섬기는 자들로서 의인되시는 그리스도 및 그를 따르는 자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자들이라고 밝혀줍니다. 
[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약 5:1-6)

또한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와 신자들에 대해서는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이 땅의 교회들은 원 가지가 아니라 접붙임을 받은 가지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겸손 가운데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라도 구약의 이스라엘처럼, 현대의 유럽 교회들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버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롬 11:20-22).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며 또한 자기 자신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없으며,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으며, 그 영혼이 새롭게 될 수 없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영혼 안에 임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원 받지 못하고 죽으면 영적 문둥병인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구원은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더 이상 늦추지 마시고 영적인 나병을 치유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 나아와 나병을 치유 받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구원을 얻고자 생명을 바치고자 할 때, 심지어 모든 자존심을 다 십자가에 못 박고 순종할 때에, 죄 사함과 함께 새롭게 태어난 영혼,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의 내주하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즉,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인 참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가, 그리고 이 설교를 듣는 모든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함으로 영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한 자, 곧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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