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음악 이대로 좋은가?

 이 이삭 목사 (Azusa Pacific Univ. Calvin Theological Sem.)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최상의 방법은 모짜르트의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1968년 11월 독일 스위스 방송(Das deutsch-schweizerische Radio) 프로그램(Musik für einen Gast)에 초청을 받은 칼.바르트(Karl Barth 1886 – 1968)가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1756 – 1791), 의 음악과 자신의 신앙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며 고백한 그의 음악관이다.

실제 바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교의학( Church Dogmatics /Ger. "Kirchliche Dogmatik").등 유명한 작품들을 저술했고 그의 벽에는 모짜르트와 칼빈(John Calvin 1509 – 1564) 의 초상화가 나란히 같은 높이로 걸려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천국에 간다면 먼저 모짜르트의 안부를 묻고 그 후에 어거스틴(St. Augustine of Hippo 354 – 430) 이나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 1225 – 1274) 루터(Martin Luther, 1483- 1546 ) 칼빈, 슐라이에르 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 – 1834) 등을 만날 것이라는 말은 유명한 그의 어록이 되었다. 그렇게 탁월한 신학자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생각되는 음악에 어떻게 그렇게 심취할 수 있었을까? 그는 분명히 모짜르트의 음악을 통해 영감을 받았고 성령의 소리를 들었으며 매일 새로운 하나님의 가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완전한 공의이시며 완전한 사랑이시다. 이 세상에 이 두가지 속성이 훼손됨 없이 나타난 분은 분명히 예수그리스도 한 분 뿐이다. 이는 인간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교리, 삼위일체론이 포함된 기독론(Christianity)이 되었고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가장 민감한 신학적 이슈가 되어왔다. 그런데 이 예수님 외에 이 두 가지를 가장 완벽하게 담아낼 수 있는 합리적인 그릇, 그것이 음악이라는데 우리는 주저하지 않을 수 있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비율(ratio)에 근거한다. 피아노의 건반 88개 중 흰건반52개 ,검은 건반36개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 최저28hz -최고 43000hz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이 주파수를 단위로 3을 곱하고 2로 나누는 방법 그리고 거꾸로 2를 곱하고 3으로 나눠주는 피타고라스의 순정율에 따라 12음계가 만들어 진 것이다. 얼마나 수학적이며 얼마나 합리적인가? 바하의 평균을 또는 화성학이나 대위법 모두 이런 수학적 원리로 만들어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완벽한 완전5도의 비율(1:1.5)을 음악계에선 피타고라스비율(Pythagorean Ratio)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가장 합리적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과 가장 완벽한 화음이 탄생하는 것, 이것은 너무 선명한 하나님의 현현인 셈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찬송중에 거하시며(시22:3) 우리는 찬미로 제사(히13:15)를 드려야 한다. 구약시대의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적 관점에서 취급되었다. 따라서 찬양을 담당하는 제사장이 따로 있어 찬양을 집례하도록 했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음악 이대로 좋은가? 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 클래식이나 CCM이나 찬송가나 중요한 찬양의 기준, 그것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 영성이 담겨야 한다. 찬양이 수천곡집이 있어도 매일 새로운 곡이 쏱아져 나와도 마치 유행가처럼 유행이 지나면 퇴색되는 이유는 정상적인 리듬과 멜로디와 화음을 무시한 세속음악의 부대속에 영이 아닌 누룩과 꿀을(레2:11) 첨가한 찬양아닌 찬양을 우려내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거의 모짜르트 한사람의 음악만을 평생들었으나 매일 아침 하나님의 가슴을 느끼며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오늘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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