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87) - 잠언(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지혜란 무엇인가? 우리는 오늘날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지혜는 신앙과 대조적인 입장에 있다. 지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신앙은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 가를 문제 삼는다.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잠13:1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14:27). 현명한 가르침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하신 풍부함 속에 있는 인생에게서 성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이자 지혜인 것이다. 지혜는 이론과 원리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능력 이라기보다는 매일 일상 속에 살아가는 삶의 지혜와 사물과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다. 지혜의 예는 기술자나 예술가의 전문지식을 말하며 통치자나 사법적인 전문지식을 말한다.

지혜는 생존과 관련된 좋은 상식이다. 한마디로 지혜는 경험에 근거한 지식이다. 지혜는 인생을 사는데 유사한 사물의 연관성과 삶의 규칙에 대한 지식에서 나온 삶의 관찰에 근거하고 있다. 자연과 인간관계이든 사물의 통찰력이 상상력을 가진 말로 요약되거나 평행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잠3:16-17). 그래서 지혜는 마음으로 얻어지게 될 수 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이 지혜 경험의 수집과 전달은 전승(고대인들의 잠언, 삼상24:14-“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을 만들었다. 이 전승은 개인의 경험을 따라서 그 권위를 가지게 된다(욥기8:8-“청컨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 지혜의 목적은 위험과 해로움을 피하고 의롭고 존귀하고 성공적인 인생에 이르는 방법을 보여준다.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잠15:24).

지혜 문학이 주로 발견되는 곳은 구약 정경의 마지막 부분인 성문서이다. 지혜가 이스라엘의 후기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상 맞다. 특별히 지혜가 이스라엘 현상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혜문학을 전 근동에 걸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바벨론 지혜와 가나안 지혜가 있고 이스라엘에서는 유목민적 지혜, 근동의 아들이라고 알려진 지혜이다. 구약 그 자체가 잠언의 수집의 저자로서 외국인이 언급되고 있다(잠30:1; 잠31:1). 이집트는 특별히 이스라엘 지혜에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보인다. 잠언 22:17-23:11은 다소 이집트 아멘엠오페(Amenemophis)의 금언집의 경구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잠언은 이스라엘과 유대 형태 안에서 고대 근동의 지혜로서 제시하고 있다(피히트너). “내가 너로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너를 대적하사 그 원을 펴시리라”(잠22:19, 23; 23:11). 이스라엘은 이방 지혜를 자신들의 신학적 논제로 받아 들여 그 정당성을 가지고 수용하여 여호와 신앙과 신앙의 지혜를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시작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이자 시작이라고 본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