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1-9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과 밀접하며 또한 이 땅에 강림하신 성령의 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가 말하는 천국은 이 땅에 임하는 천국을 말합니다. 즉, 복음과 성령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천국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임하는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여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는 복음의 특징을 지니는데, 그 이유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말합니다.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롬 16:25-27; 엡 3:7-9)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과 하나님 나라, 그리고 성령의 강림은 예수님의 오심과 십자가의 구속 및 부활 승천이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 주제는 사상적이거나 철학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보다 영적이며, 구약의 예언 성취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 특히 예수께서 언급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에게 하신 인류의 대강령이라고 할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 성취라고 보아야 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 왕에게 주신 인류의 대강령으로 불리는 예언은 이러합니다. 
[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2-13, 16)

그리고 때가 차매 마침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그 왕위에 영원히 앉게 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성육신한 후 공생애를 시작하며 외치셨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하신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세워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니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공생애 사역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눅 11:20-22).

이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권능인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다윗 언약이 말한 ‘그 왕’임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이 언약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장본인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왕위를 받았는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위를 받으신 때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신 후에 십자가 상에서 그의 귀한 보혈을 흘려 자기 백성의 죄값을 대신하여 치르신 직후였습니다. 그리고 왕위 즉위식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을 때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사무엘하 7장의 다윗 언약과 관련한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신 예수님의 선포에서 확증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 16:19). 

그런데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때가 언제입니까? 바울이 설명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8-11). 
 
또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 직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눅 24:46-53).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오른 편의 영광을 얻으신 후 성령을 보내실 때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을 보내신 사건은 인자이며 마지막 아담이신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왕위에 오르신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성령을 통해 공식적으로 출범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스데반 집사는 순교하면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 7:55-56).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만유의 주 되심과 하나님 나라의 왕 되심,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인한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완전하고 철저하게 순종하심으로 다윗에게 예언되었던 이 땅에 임하는 영원한 나라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주 예수께서 보내시는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이 땅에 공식적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민족과 혈통에 국한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로서 온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죄 사함의 복음과 함께 성령으로 영혼을 거듭나게 하여 구원함으로 그 나라에 들어오게 합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백성 된 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 나라는 무엇보다 죄와 세상 권세와 마귀를 이기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러한 거룩한 승리의 권능으로 임하는 것은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아담으로써 구속을 마침으로 인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지금 영적으로 당당하게 부활의 권능, 성령의 권능 가운데 힘차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거하시는 동안, 자신의 십자가의 구속에 의해 이 땅에 임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미리 비유로 제자들과 주의 백성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로 그 나라를 설명한 이유는, 비유 그 자체가 복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결코 깨달을 수 없습니다. 비유 역시 예수께서 주의 영으로 가르쳐 주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비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0절을 보면, 예수께서 천국 비밀을 비유로 가르치자 제자들이 묻습니다. 
“어찌하여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마 13:10). 

이때 예수께서는 주 예수님과 관계가 맺혀진 너희들은 비유를 이해하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되지만, 주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자들은 도리어 비유를 들으면서 그 마음이 강퍅하여질 것이라고 알려주십니다. 

그러면서 “천국의 비밀이 선포되는 곳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개념은 사도 요한이 가르친 개념과 연결됩니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8-19).  
즉, 천국 복음이 알려지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더욱 복음을 듣고 모든 면에서 풍성하여지지만, 믿지 않는 자는 그 정죄함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일반 은총 가운데 주어졌던 하나님의 은혜들마저도 빼앗기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비유 및 천국 복음은 믿음으로 받지 않는 자들에게는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합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어도 그들이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지 못하고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과 연관됩니다. 하물며 천국 복음을 전할 때 그 마음이 강퍅하여 그 복음을 거절한 자들이 당하게 될 심판은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 심판은 다름 아닌 지옥인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의 어둠과 죄악은 복음을 들을수록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현상은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자들, 그래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6). 

복 있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복음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자리에 있으니 창세 전부터 복을 받은 자로서 지극히 복이 있는 자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 11:28).

참으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상태에서 성령의 역사를 따라 주의 복음이 믿어지고 깨달아진 자들이니 얼마나 복이 많은 자들인지요! 나아가 그 말씀대로 순종할 때 누리게 되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열매들은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풍요와 평강과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지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 13:17).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 1:10-12)

지금 베드로 사도의 서신을 받는 자들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상태에서 그 나라에 들어온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토록 구약에서 예언하고 소망하던 성령의 시대, 곧 하나님 나라의 시대를 친히 누리는 복을 얻은 자들입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 전체의 큰 그림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접근해야 합니다. 즉, 주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가장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게 전한 복음입니다. 그러나 비유는 복음이기에 어둠에 속한 자와 빛에 속한 자, 곧 불신하는 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각각 다른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좌우에 날 선 검처럼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보호와 능력과 축복의 역사로, 반면에 주의 복음을 거절하고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저주의 역사로 나타납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해서 예수님의 비유를 해석할 때는 예수께서 친히 알려주신 틀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 틀은 마가복음 4장 26-29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 4:26-29).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서는 도구는 복음의 씨앗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의 속량과 부활 승천입니다. 그리고 승천 직후에 메시아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 후 성령을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공식적으로 세워졌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천국 복음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가 공식적으로 이 땅에 도래한 것이며 그 나라는 추수 때까지 계속 확장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인한 열매가 땅에서 나와서 익으면 낫을 대는 추수 때가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큰 그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안전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님의 여러 비유 중 첫 번째 비유로서 그 곳에 모여든 큰 무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 비유를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따로 해설하여 주셨습니다. 

첫째 비유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렸는데,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었다.”
“더라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아듣고 이해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비유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18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18-23)

한편, 마가는 예수님께서 해 주신 설명 부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 4:14-20)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11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1-15)

여기서 마태, 마가, 누가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예수님의 설명을 좀 더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첫째, 마가복음 4장 14절에 의하면,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자”입니다. 즉, 씨앗은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8장 11절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언급합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 8:11).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19절을 보면, 우리 개역 개정은 천국 말씀이라고 하였지만 원어로 보면, 그 씨는 (바실레이아), 즉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구체적으로 비유에서의 씨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이미 우리가 인용한 마가복음 4장 26절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막 4:26). 

우리는 여기서 성경 전체에서 생각할 때, 땅에 씨, 즉 복음의 말씀을 뿌리는 사람은 가장 먼저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또한 그 이후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는 주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장 먼저 전하였고, 그 이후로 주의 복음에 의해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자들마다 그들 역시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와 세상을 향해 복음의 씨를 뿌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을 비롯하여 그분을 머리로 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함이 가장 합당합니다. 

그 다음 내용은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라는 주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이 말씀을 원어로 보면,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지 못한 모든 자들은 악한 자가 와서 그 사람의 마음 안에 뿌려진 것을 가져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표현이 신기합니다. “이 사람이 길 가에 (말씀의 씨가) 뿌려진 자”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사람의 마음에 뿌려지는데, 그 사람의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가 마귀가 가져간 사람은, 다름 아닌 “길 가에 씨가 뿌려졌는데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린 것”처럼 아무런 변화도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마 “길 가에 씨가 뿌려진 것과 같은 사람”은 불신자인 경우가 그러하고, 또는 신자라도 복음을 들을 때 딴 생각을 하거나 졸거나 아예 말씀을 무관심하거나, 듣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가 그러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복음의 씨를 받은 후에도 마귀가 그 씨를 가져가기 때문에 그 씨가 뿌려지기 이전의 상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저는 설교를 통해 복음을 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예배 후에 그 마음에 아무런 남은 것이 없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길 가에 씨가 떨어진 것 같은 사람’입니다. 불신자가 복음을 듣고 거듭나지 않는 경우는 늘 ‘길 가에 떨어지는 씨앗’의 경우가 될 것입니다. 반면 거듭난 신자가 복음을 들음에도 ‘길 가에 떨어진 씨앗’의 경우가 되는 때는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주의 복음을 청종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복음의 씨앗이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경우인데, 이는 사람이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가 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볼 때 씨 뿌리는 자에게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셋째는, 씨가 가시떨기 위해 떨어진 경우로서 자라나는 가시에 의해 씨의 생명이 막혀서 성장하지 못함으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지막으로는 “좋은 땅에 씨가 떨어진 경우인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이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하여” 백 배든, 육십 배든, 삼십 배든 맺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씨가 옥토에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자, 맨 처음에 씨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며, 나아가 사도들과 신실한 선지자들입니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는 삶과 고백으로 복음을 전하는 거듭난 자들입니다. 특히 주의 복음을 철저하게 온전히 회중에게 전하는 설교자들 역시 씨를 뿌리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땀을 흘리며 수고함으로 씨를 뿌리는 자가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네 바로 열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복음의 씨가 길가에 뿌려진 경우가 될 수도 있고,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진 경우가 될 수도 있고, 또한 가시떨기 위해 떨어진 경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씨를 뿌리는 자에게 슬픔과 실망이 되는 경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씨 뿌리는 자에게 큰 보람과 만족과 기쁨을 주는 “좋은 땅에 복음의 씨가 떨어지는 경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삶이 좋은 땅에 복음의 씨가 떨어지는 경우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 복음이 선포될 때, 또는 복음을 듣게 될 때, 또는 성경을 통해 복음을 읽게 될 때, 들으려고 노력하고, 또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뿌려진 그 복음을 마귀가 가져가지 못하도록 온 마음과 뜻을 다 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가 우리 마음 속에 심겨진 복음의 씨를 마귀가 가져가도록 하는 것입니까? 네, 복음보다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갖게 되면 우리 안에 뿌려진 복음은 곧바로 마귀가 물고 갑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둘째, 돌밭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경우는 말씀을 듣고 그 때는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받지만 감정과 지식에만 머물 뿐, 실제로 삶의 가치관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말씀으로 인하여 어떤 손실이나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실족하며 시험 들어 믿음을 떠납니다. 심지어 누가복음에서는 믿음 때문에 시련을 당하면 배반을 한다고 알려줍니다. 이러한 사람이 바로 ‘돌밭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경우로서’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적인 차원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가치관을 통해 입증되는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시련과 고난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려면 기도와 말씀을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가운데 믿음을 굳세게 해야 합니다.   

셋째는, 복음의 씨가 가시 떨기에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말씀을 듣지만, 세상의 염려나 재물의 유혹 때문에 복음의 말씀이 그 무게에 눌려 결실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또한 기타 욕심, 그리고 향락의 정욕이 우리 안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싹과 이삭을 내지 못하도록 공기를 막음으로 마침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맺는 경우가 되려면 염려와 재물의 유혹, 향략의 정욕, 그리고 기타 중독성이 있는 욕심을 회개하고 차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복음의 씨가 좋은 땅에 뿌려진 경우인데, 이 경우는 사람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결실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백 배, 어떤 사람은 육십 배, 또 어떤 사람은 삼십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사도 누가는 좋은 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데, 좋은 땅에 복음이 뿌려진 경우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눅 8:15)라고 말합니다. 즉, 옥토의 특징에는 말씀을 듣고 지키기 위한 ‘인내’가 반드시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의 씨앗이 옥토에 떨어지는 경우는 어떤 사람에게 복음이 역사하여 그 사람 자체가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옥토에 복음의 씨가 떨어진 경우는 또 다시 더욱 복음을 뿌리는 것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또한 그 사람 자신 역시 복음의 역사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하여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를 향한 성장 및 열매의 풍성함에 있어서는 옥토의 질에 따라 서로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100배, 그리고 또 어떤 경우는 60배, 그리고 또 어떤 경우는 30배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열매 맺는 양이 다른 이유는 성도들마다 자신의 마음에 심겨진 복음의 씨를 기경하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내고 물과 공기를 얼마나 성실하게 공급하는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오직 옥토에 복음의 씨가 떨어진 경우에만 씨를 뿌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옥토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경우에 해당합니까? 즉, 여러분의 성품에 있어서 뚜렷하게 그리스도를 닮는 변화가 있습니까? 또한 여러분을 통해 뿌려지는 복음의 씨앗 때문에 다른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되어 또 그가 열심히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사는 모든 인생 중에 가장 복되고 가치 있고 보람된 인생은 복음의 씨앗이 옥토에 떨어진 그러한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네 부류의 경우 가운데 어디에 해당합니까?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서 주 예수님께 풍성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열매가 있습니까? 내가 받은 구원을 100배로 확장했습니까? 혹은 60배라도 확장했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30배라고 확장했습니까?

아니면 5년 전 내 성품과 지금 성품에 있어서 더 나은 것도 없고 오히려 열악해진 것은 아닙니까? 나로 인해 주께 영광 돌리며 복음을 알려주어 고맙다고 하는 열매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열매는커녕 도리어 나로 인해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에 욕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이 시간 각자 자신의 삶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은 옥토가 복음의 씨앗을 만나는 삶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에서는 매 주일마다 복음의 씨앗이 쉬지 않고 뿌려지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여러분들과 이 공동체를 사랑하사 쉼 없이 복음의 씨를 뿌리고 계십니다. 이제 열매를 맺는 것은 오직 우리의 마음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받은 복음의 씨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가꾸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사모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이 여러분의 전부입니까? 그분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이 내 삶에 없는 것이 분명합니까? 만일 우리 마음에 주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보다 더 소중한 우상이 있다면 우리는 길 가 밭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경우, 돌 밭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경우, 가시 떨기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경우가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러한 사람의 구원은 성경이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오직 성경이 구원을 보장하는 경우는 옥토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는 경우로서, 반드시 100배, 또는 60배, 적어도 30배의 결실을 맺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째 비유가 말하려는 복음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복음의 씨를 심겨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큰 결실을 가져다 줌으로 우리 주께 큰 기쁨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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