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는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적 종교운동 중 하나로, 다양한 분파가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 불완전한 신인 데미우르고스가 완전한 신의 영(프네우마)을 이용해 물질을 창조하였고, 인간은 참된 지식인 그노시스를 얻음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구조를 지닌다.(위키백과)

영지주의는 헬레니즘시대에 유행했던 종파의 하나로 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발생한 밀교의 교리가 혼합되었다.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강성해지면서 쇠퇴했다. 영지주의는 유대교, 동방밀교, 점성학, 철학 등 모든 사상을 융합시켰고 다양화시켰다. 영지주의는 초대교회에 침투해서 활동했다. 교회에 영지주의의 창시자는 시몬 마구스(Simon Margus)이고, 니콜라스(Nicolas)의 주도로 형성된 니골라당(Nicolaitans)이 버가모 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계 2:15). 2세기 교회에도 심각한 위협을 주었기 때문에 순교자 저스틴, 테툴리아누스, 이레니우스 등이 영지주의를 반박했다.

영지(靈知, Gnosis)란 지식(깨달음)으로 구원을 가져온다는 것인데, 신일합일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지식이라는 것이다. 사실 영지주의를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이원론이지만 금욕과 방탕을 모두 포함한다. 육체를 감옥으로 보고 탈출하는 방법이 다양한 것이다. '지식'으로 인간의 육체를 초월해서 구원, 신일합일이 되는 것이 영지주의(Gnosticism)의 핵심 사상이다.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두 종파가 있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몸담았던 마니교(摩尼敎, Manichaeism)와 중세의 대표적 이단인 카타리파(Cathari)이다. 두 종파는 모두 이원론을 근거로 한다. 마니교는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이해했고, 카타리파는 악을 거부하기 위해서 극단적 금욕주의를 추구했다. 카타리파가 꾸준하게 성장하자 이노켄티우스 3세는 십자군을 파견해서 토벌하기까지 했다.

마니교가 교회에 의해서 쇠퇴할 때 비잔티움에서 바울파로 존속하다가, 10세기 경에 불가리아 지역에서 보고밀파(Bogomiles)로 계승했다. 이들이 프랑스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카타리파로 정착했다. 알비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알비파(Albigenses)라고도 한다. 이들은 동방교회지역에서 서방교회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활동했다.

영지주의는 유대교 사상에도 침투해서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Kabbalah)를 형성했다. 카발라는 동방밀교와 관계가 깊다. 유대교는 동방(바벨론)에서 제작된 탈무드가 중요 경전인데, 동방 밀교인 카발라도 중요한 축을 갖고 있다. 카발라 신비주의도 주문(呪文) 효과를 인정하여 적극 활용한다.

신약성경에서 영지주의는 사도들에게 교회에서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2,000년 교회에서 영지주의는 떠나지 않았고, 현대 교회에서는 신비주의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어 있다. 영지주의는 유대교에 침투해서 카발라 체계를 구축했다.

영지주의는 독자적인 종교 체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종교 체계에 잠식해서 자기화시키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영지주의로 인하여 성경 진리에 반하여 옳지 않은 사상(극단적 이원론)이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부패시켰다. 유대교는 자기근본진리와 현재진리체계를 분별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충분(충족)하게 주신 계시의 말씀 성경으로 하나님의 백성(어린 양)들에게 바른 길(옳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1-3) 

임채화(광신대 2년, 형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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