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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 주장은 정치행위재판에서 지니까 이제는 "정교분리"를 외치는 것도 정치행위이다.
  • 김시환
  • 승인 2018.05.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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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기도하는 동역자들에게 한국의 사도행전 시리즈를 연재한다. 필자인 김시환 목사는 뉴저지한밝교회 원로목사로서, 미국합동장로교총회 서기 및  기독저널 주필을 역임하였고 뉴욕에서 러브영피플 사역을 하였다. <편집자 주>

김시환 목사

한국의 사도행전(7) 

“주님, 안심하십시오. 저희들은 주님을 위해 독재정치에 관해 정교분리 원칙을 지킵니다. 대신에 저희들 교회를 사람들로 채우겠으니, 어디에서든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하시며, 건강축복ㆍ물질축복ㆍ성공축복ㆍ천국축복으로 채워 주소서”

지난 날 한국교회 가운데 노골적으로 이런 ‘목회성공 기도’를 한 교회들이 많았다. 사실 1961년부터 1990년 노태우정권 중기까지 신학적 보수주의를 천명(闡明)하고, 정교분리를 교의(敎義)로까지 만들어 주장하면서, 오로지 ‘목회성공’을 향해 달려온 교회와 그 목회자들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는 목회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목회자나 당회원들은 자신들의 이런 행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제시대와 같은 ‘정교분리론(政敎分離論)’을 교의화(敎義化)해서 내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유사신학적 변증에 스스로 모순이 되는 행동을 하였다. 물론 그들의 ‘반공(反共)’ 행위나 WCC의 ‘용공성(容共性) 거부’ 행위는 투철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한다. 그 행위는 교회의 예언자적 직분을 행하는 옳은 행위였다고 본다. 그런데 그 예언자적 메시지를 주는 행위는 분명히 정치관여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교분리 주장이 정치참여가 아니라고 했다. 정교분리론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독재자를 위한 조찬기도회에 열심히 나갔다. 그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로비까지 하는 이들도 있었다. 독재자를 위한 조찬기도회에 다녀와서는 이를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은근히 자랑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는 그런 행위는 ‘정치참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재자를 위한 조찬기도회에 나가 ‘이 통치권(독재권력)은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며, 온갖 아부성 발언만 늘어놓고 나오는 짓은 하나님과 국민들 앞에 무서운 범죄행위였다. 그것 역시 정치참여 행위요, 정교분리론의 자가모순(自家矛盾)을 드러낸 행위였다.

“한국사회에 박정희 독재라는 거대한 모순을 세워놓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일부 정의감이 살아있는 보수주의 교회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 판단은 맞는다. 그런데 그것이 ‘독재라는 모순 앞에 절을 하라’고 세우신 것인가?

로마제국에서는 그 황실과 귀족사회의 부패의 결과로 네로황제가 나타났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렇다고, 그 네로가 자신을 신으로 내세우며 절을 하라고 할 때, 거기에 절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세우셨는가? 아니다. 네로와 같은 권력 편집광이 등장하게 만든 로마제국 정치계의 부패와 악을 깨닫게 하고자 하심이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네로의 등장은 ‘로마제국의 악’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크리스찬들의 강한 아가페 윤리의 태풍이 불어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이 현상은 교회가 제국의 정치와 종교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몰아넣으신 섭리라고 보아야 타당한 해석이다. 이런 모순과 불의를 내세우실 경우의 하나님 뜻(입장)을 마땅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교훈은 이런 하나님의 입장과 뜻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한다.

바울이 ‘위에 있는 권세 앞에 순복(順服)하라’(로마서 13:1)고 권고할 때, 네로와 같은 미치광이 권력편집광의 불의(不義) 앞에 절하라는 의미였는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은 바울 자신이 그의 행동으로 입증했다. 그는 네로에게 단순히 ‘종교범’이 아닌 ‘정치범’을 겸한 반역자로 보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 목에 칼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네로와 같은 모순이나 불의를 교회 앞에 세워놓으실 때엔 절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경우엔 하나님께서는 크리스찬들의 양심 속에 질문을 던지신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제국에게 살해당한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들은 ‘정교분리론’ 따위를 이런 경우에 내밀지 않았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런 짓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냈던 것이다. 그 편지에서 그는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가?

"그(하나님)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예수)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예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예수)로 말미암아 자기(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1:13~20)"

"그(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모리이시라. ....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 (이 모든 것은 한 때 쓰이고는없어지리라.) 어찌하여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골로새 2:9~22)"

바울 사도의 이 가르침 어느 부분에 ‘정교분리 원칙’ 비슷한 것이라도 있는가?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처럼 ‘역사의식을 상실한 보수주의’는 사이비 보수주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카이퍼나 웨슬레나 칼빈이나 루터는 말할 것 없고, 어거스틴이나 사도들과는 더욱 상관없는 신앙이다.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주의 유일무이한 통치권자’로 인정한다면, 자신들의 생존 기간에 그분을 그런 통치권자로 모시는 행위를 보였어야 한다.

최근에 사법재판을 일삼던 어떤 목사가 진행 중인 재판에서 이길 승산이 없으니 이제는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한국교회가 법원과 싸워야 한다고 선동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교인들 가운데 판검사가 백여 명이라고 그가 그토록 자랑하던 그 교회 법조팀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나 보다. 항상 정권에 아부했던 그가 이제는 정교분리를 외치다니 말이다. 제발 정교분리 주장 그 자체가 가장 큰 정치행위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김시환  hahnbarc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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