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갱신과 변화를 위한 희망 프로젝트

이대희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를 역임했다, 신학교, 학술원, 목회자, 교회교육등 세미나와 강의를 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진행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 쉬운 기독교이해> <전도가 안 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을 담당했으며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200여권의 이야기대화식 성경교재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50여권의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2016년 문체부 세종도서).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하브루타 연구소장. 미국 Kernel University Korea Campus 국제 객원교수로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를 포함한 이야기다. 또한 이것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창세기 3장 이후에 계속 반복되는 성경의 핵심 주제다. 문제는 죄를 지은 인간의 강퍅함이 더해지면서 인간의 변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데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선지자들이 그렇게 회개와 변화를 외쳐도 돌아오지 않고 제 갈 길로 가는 인간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수없이 본다. 그래서 혹자는 인간은 거의 변화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목회자들에게는 절망감이 다가 온다. 듣지 않아도. 비록 당장 변화되지 않아도 계속 외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것은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음을 믿기에.....

사람의 변화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이것을 잘못 오해하여 자칫 인간의 의무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소관이라 맡기고 인간은 손을 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악함이요 무지에서 오는 게으름이다. 하나님이 하실줄 믿고 인내를 갖고 실천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이루신다. 말씀으로 변화될 줄 믿고 전하는 한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변화를 이루신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대희 목사의 리뉴얼 한국교회 희망이야기>는 한국교회와 내가 새롭게 변화를 이루는 길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이다.

이것을 위해 연재 구성을 성막의 모형을 따라 진행하고자 한다. 성소뜰-성소- 지성소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손수 알려주신 사람의 변화의 방법의 모델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제시된 이 성막모델은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기에 이것을 필자는 재해석해서 지성소-성소- 뜰로 순서를 거꾸로 적용 했다. 뜰- 성소- 지성소는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과정으로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기를 죽이는 먼 여정길이지만 지성소- 성소- 뜰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이루신 십자가의 모델로 적용한 것이다.

이미 구원 받은 우리는 지성소가 성령으로 우리 중심에 들어와 있다. 구원의 확신과 의미를 얼마나 아느냐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동인이 된다. 나의 노력으로 지성소에 이르는 것이 아닌 이제는 이미 지성소 되신 주님이 내안에 계심으로 그분을 믿음으로 실천이 가능하게 되었다. 모든 삶의 변화의 힘은 내안에 있는 예수님과 성령님이시다. 얼마나 그분에게 집중하느냐가 우리의 삶의 변화가 결정된다. 물론 여기서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존재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오직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행하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길은 순종하는 일이다. 그러면 그분이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이런 구조로 삶의 변화를 이해한다면 가장 중요한 변화의 시작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왜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셨는가? 하는 근원적인 본질의 질문을 할 때 깨달음이 오면서 성령이 나를 사로잡게 된다. 모든 문제를 나에게서 출발하지 말고 하나님의 질문에서 출발하면 변화는 이루어진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방법이 누구에게서 왔는지를 살피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나에게서 왔는지. 세상에게서 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서 왔는지를 살피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1517년 루터가 로마교황에게 제시한 95개조 항목은 지금 로마교황청이 행하고 있는 베드로 성당 건축공사와 그것을 위해 생각해 낸 면죄부와 그것을 위해 설득하는 설교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제시한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것을 공개 토론하자는 것이 루터의 제안이다. 그러나 로마교황은 그것을 거부했다. 로마교회가 타락의 이유는 왜? 에 대한 질문이 없었다. 모든 것은 “왜” 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들은 자기 욕심에서 출발했다. 그러니 겨우 생각해 낸 방법도 세상을 닮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핵심은 ‘왜?’가 없으면 방법도 없다. 설사 그럴사한 내용과 방법을 제시한다고 해도 왜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갈수록 위험 한 것이 된다. 왜? 질문에는 인간의 숨은 동기와 목적을 파헤치는 작업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데 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 왜 하필 제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의 질문으로 밤을 지새우고 답을 얻어 담대하게 “일어나자 함께 가자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처럼 우리도 겟세마네 기도에서 ”왜“ 에 대한 질문을 심각하게 던지면서 거기서 문제 해결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이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당연시 생각하고 있는 신앙과 교회의 이야기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거기서 해결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것은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답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데 우리가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질문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우리에게서가 아닌 하나님에게서 출발하자는 뜻이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는 희망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연재 구성 방식은 <왜(지성소) - 무엇을(성소) - 어떻게(뜰) >로 진행해 나갈 것이다. 필자와 함께 한국교회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행복한 리뉴얼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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