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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목사의 길을 다시 묻다으시대고 폼 잡고 지시하는 것에 익숙하면 어느 순간 껍데기만 화려한 바리새인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본해럴드신문대표, 본국제신학교학장, (재)본월드미션이사, (사)새길과 새일부이사장, 등.저서: 제자세우기40일영적순례(1,2권), 충성된일꾼되어가기, 주기도문연구, 팔복, 십계명, 등

목사란 신분의 굴레에 파묻혀 있다 보면, ‘나’란 정체성에 대한 심각하게 훼손된 모습을 보게된다. 그때 문득 뒤돌아서 이것은 아닌데 라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나는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가?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의 장이 늘 필요하다. ‘나’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가고 있는가? 목사의 길을 다시 묻고 점검해 보았다.

 

첫째, 목사란 들꽃의 인생이다.

목사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30년전에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깊이 한 적이 있다. 그때 목사란 들꽃의 인생이라고 신학적 정의를 내리고 지금까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들꽃의 특징은 환경에 좌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자리가 길가든, 기름진 밭이든, 산속이든, 가시나무든, 바위틈이든 열악한 장소이든, 관계하지 않고 떨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특징이 있다. 이것이 들꽃의 삶이다. 나는 들꽃의 삶을 살아내는 목사가 되겠다고 늘 다짐하며 살아갈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목회지는 하나님이 친히 구역으로 재어준 소중한 곳이라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베드로의 길이있고 요한의 길이 있다. 누구나 똑같은 옷을 입고 걸어갈 수 없다.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사명의 장도 길도 다르다. 다른 밭에 기웃거리지 말라. 내 밭이 화려하든, 초라하든, 시골이든, 도시이든, 넉넉한 곳이든, 척박한 곳이든, 관계하지 말라. 하나님이 자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이다. 다른 밭에 기웃거리다보면 내 밭이 황폐해진다. 내 사명의 밭을 잘 가꾸는 것이 지름길이다. 다른 밭에 기웃거리다보면 비교와 열등감의 저주의 사슬에 묶여버린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구역은 아름다운 곳이다. 축복의 장소이다.

 

둘째, 1명의 성도를 위해서 교회를 지키겠다.

목회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늘 자신에게 던져본다. 교회 개척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른 교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개척교회를 한다거나, 큰 대형교회를 이루겠다는 거룩한 욕심도 없었다. 한명이라도 우리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리겠다는 결단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늘 연약한 한 사람에게 관심이 많다. 연약한 사람은 누군가의 영적 도움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과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목회란 그 한 사람이 일어나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돕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 했다. 사명의 길이란 항상 화려한 대장군처럼 말을 타고, 한껏 치장하며 명예롭게 으시대며 폼 잡고 타고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볼품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병들지 않는 목회가 되리라 본다.

주님은 귀신들린 한 청년을 회복시키기 위해 무덤가로 찾아갔다. 옷을 벗고, 자기 몸을 자해하고, 괴성을 지르고, 무덤가에 살고 있다. 이 모습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가치가 전혀 없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위해 주님은 무덤으로 가셨다. 그리고 귀신아 떠나가라 이 한 마디에 청년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고 옷을 입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을 했다. 이것이 목회이다. 목회는 사람을 살리는 위대한 섬김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님 나라의 일꾼으로 동역자로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종합예술이다.

한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렸다면 이미 병든 목회자이다. 목회가 사명이 아니라 직업으로 추락했다는 반증이 된다.

 

셋째, 성도를 이용하지 않는다.

청소년 시기에, 혹시 내가 목회자가 된다면 비성경적인 방식으로 성도들의 재산이나 헌신을 이용하는 어리석은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나의 목회 가치 중에 중요한 경구가 있다면, “성도를 이용하지 않는다”이다. 어떤 목사가 귀한 주님나라의 동역자인 성도를 이용하겠는가?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삯군 목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부분 목회자들은 성경적인 정당한 것이 아니면 성도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목사들은 성경적인 정당한 헌신도 요구하는 것도 머뭇머뭇거린다. 혹시 성도들이 힘들지 않을까? 마음에 부담은 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연약한 목회자가 더 많다.

 18년 목회를 하면서 나의 유익과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누군가로부터 예수라는 이름으로, 선교라는 명목으로 들먹거리며 요구한 적이 없다. 주님이 주시면 소중히 간직하고, 주님이 열어주시면 열심히 사명의 장으로 가고, 주님이 서라하면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인내의 시간을 기쁘게 보냈다.

주님께 늘 다짐한다. 하나님이 내 주변에 허락하신 소중한 분들은 나의 섬김의 대상이지 나의 이익과 성공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님이 허락한 일을 할때는 사람들과는 계산하지 않는다. 늘 하나님과 계산하고 산다. 사람을 의지하면 결국에는 초라해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룰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규칙보다는 부단히 하나님의 규칙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좋아하면 된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얻으려고 하면 늘 초라해지는 것이다.

 

넷째, 충성스런 일꾼이 되겠다는 결단과 의지의 삶이다.

나의 마음속에 한결같이 떠나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충성스러운 일꾼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을 이끌어왔던 힘이며 동력이며 나를 나 되게 한 에너지였다. 나를 부르시고 훈련시키시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 나의 귀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일꾼은 충성해야 한다. 목사는 일꾼이다. 일꾼은 일꾼의 모습으로 섬김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 으시대고 폼 잡고 지시하는 것에 너무 익숙하면 어느 순간 껍데기만 화려한 바리새인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주님께서 다양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주셨다. 사역의 기초는 네 가지 가치에서 기반을 두고 있다. 모든 목회자들은 누구나 목회적 기준점을 가지고 있다. 소중한 가치를 다시 뒤돌아보고 점검하면 주님 나라 세워가는 일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성결신문 2018.7.7. 오피니언 기고 글]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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