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떠난 감사여행 (34)-임승훈 박사

임승훈 목사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더감사교회/ 더감사운동본부/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 그녀는 미국의 작가요, 교육자이자 사회주의 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녀는 천국과 지옥의 작가 스베덴보리의 사상을 추종하는 것으로도 알려진다. 그녀는 미국의 남북전쟁(1861-65)이 끝나고 15년 뒤 태어났다. 혼란과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갔지만 남부와 북부인의 가슴 속에 큰 상처를 남기고 간 전쟁의 후유증을 앓던 시절이다. 1880년 6월27일 미국의 동부 앨라배마주의 터스컴비아(Tuscumbia)에서 말이다. 생후 19개월 때 뇌수막염과 함께 심한 열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했다. 간신히 살아났으나 그 여파로 청각과 시각을 잃었다.

그녀의 부모는 보스턴의 한 맹아학교에서 앤 설리번을 헬렌의 가정교사로 모셔왔다. 설리번과 헬렌이 함께한 초기의 이야기, 다시 말해 헬렌이 정신적, 지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시기의 이야기가 『내가 살아온 이야기(The Story of My Life)』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헬렌 켈러는 1904년 가정교사 앤 설리번의 도움으로 비장애인도 힘들다는 하버드대학교의 래드클리프를 졸업했다. 그것도 인문계 학사를 받은 최초의 시각, 청각 중복 장애인으로 알려진다.

헬렌은 미국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금 모금운동을 벌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등 자신의 일생을 장애인들을 위해 바쳤다. 이외에도 헬렌 켈러는 여성인권운동가이기도 하다. 명사로 활약하면서 대통령 자유 메달과 수많은 명예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1968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워싱턴DC의 미국 국립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일화 한 가지만 소개하자.

그녀는 설리번을 만나고 수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짜증을 잘 내고 신경질적이며 성질 급하던 헬렌이다. 가정교사 설리번의 눈물겹도록 정성어린 돌봄과 감성적 가르침과 교제가 헬렌, 그녀를 변화시켰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헬렌은 점차 자신감, 성취감, 비전과 꿈, 인생설계 등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이목구비는 비뚤어져 있다. 심성은 자라고 있었으나 외모는 아직 자신이 없었다.

얼굴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에 사진촬영은 극구 사양했다. 언어는 반벙어리형태로 정확한 발음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19살까지의 사진은 거개가 얼굴 옆면사진이 대부분이다. 어쩌다가 뒤쪽을 촬영한 것도 나온다. 하지만 좀처럼 정면사진은 찾기 어렵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정면 사진을 꺼렸음을 알 수 있다.

헌데 그가 1900년 20살이 될 때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기적 같은 일이다. 세계적인 수재들이 즐비하다는 일류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헬렌에게 서서히 자신감이 생긴다. 하버드에 입학하고 난 뒤에는 당당하게도 정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녀는 당당한 감사에 도전하였다. 넘치는 감사생활 말이다.

김정진의 〈독서불패(讀書不敗)〉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3중고를 갖고서도 훌륭한 삶을 살아낸 헬렌 켈러의 고백을 볼 때마다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이런 간절함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죠! 헬렌 켈러가 얼마나 독서를 사랑했고, 독서 덕분에 과거의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인 사고로 바뀌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죠. 사랑과 감사가 흘러넘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제2의 헬렌 켈러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단, 헬렌 켈러처럼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감사함으로 살았을 때 말이지요!”

‘사랑과 감사가 흘러넘치는 사람은 누구든 제2의 헬렌 켈러가 될 수 있다.’ 헬렌 켈러는 참으로 하루하루를 간절하게 감사함으로 살았다. 넘치는 감사의 생활을 말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꼽은 20세기 최고의 수필은 다름 아닌 헬렌 켈러의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다. 이 글 중에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에서도 역시 그녀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다’고 글을 맺는다.

“내가 만약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 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때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 윈도우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3일 동안 눈을 뜨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정책을 제시한다. 그것이 미국의 여권과 장애인들의 권리를 일취월장 드높이는 역할을 했다. 그의 사상적 기저는 스웨덴의 신비주의 철학자 스베덴보리를 추종하였다. 천국만을 노래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미국의 현실을 개혁하는 실천적 여성으로 앞장섰다. 20세기 미국의 정부가 그녀를 가장 두려워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이 모든 지식과 지혜, 그리고 행동철학은 모두가 감사의 마음 밭에서 나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녀의 몇 가지 명언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눈이 먼 것 보다 더 안 좋은 게 있을까? 있다. 볼 수는 있지만 비전이 없는 사람이다."
"절대로 고개를 떨구지 마라. 고개를 치켜들고 세상을 똑바로 보라."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
"낙관주의는 성공으로 인도하는 믿음이다. 희망과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세상은 고난으로 가득하지만, 고난의 극복으로도 가득하다."
"독재는 신념의 힘을 꺾지 못한다."
"얼굴을 계속 햇빛을 응시하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다."

 "지식은 사랑이요, 빛이요, 통찰력이다"
"믿음은 산산조각 난 세상을 빛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힐 때, 다른 한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닫힌 문만 오래 바라보느라 우리에게 열린 다른 문을 못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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