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7:13-17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시록 7장에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씻김을 받은 이들이 흰 세마포 옷을 입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라고 말씀하는데, 수많은 이들이 이 환난에 대해 7년 대환난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7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이며 정말로 7년간의 대환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즉 완전하게 큰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것인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환난과 핍박을 당할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큰 환난을 통과하여 나온 자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즉 큰 환난에서 나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좁고 협착한 길로 가면서 그리스도 때문에 핍박을 달게 받으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것을 말한다.

이단이나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한 이들은 성경을 문자대로만 해석한다. 피로 옷을 씻으면 빨갛게 되는데 성경은 희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그것을 뭐라고 할 것인가? 그래서 문자대로 해석하면 성경은 온통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덮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므로 반드시 성경에서 감추인 보화를 찾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모든 숫자나 단어가 상징하는 의미를 알 수 있다.

계시록 7장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은 주님의 군대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주님의 군사가 될 수 있는 첫번째 조건은 어린양의 피로 씻김을 받는 일이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어린양의 피로 흠뻑 적셔져서 자기의 존재와 형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 보여야 한다. 그러한 이들이 주님의 군사가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기의 생각과 주장과 감정과 지식과 경험 등이 살아서 꿈틀거리면 군사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군대가 입고있는 흰 옷은 성도들의 거룩한 행실인데(계 19:8), 이는 성도들의 행위가 아닌 그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즉 자신을 부인하고 어린양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자들만이 자신을 성령께서 이끌어가시도록 도구로 내드릴 수 있기에 완전한 자기 부인이 된 자들만이 성령의 열매인 믿음의 행위가 나오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것 같은데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지만 믿음의 행위가 나오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행한다면, 아직 자기 부인이 안 된 것이다. 완전히 자기 부인이 된 사람만이 백마를 타고 앞서 싸우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흰 옷은 승리는 뜻한다.

오늘날 교회가 거룩을 잃어버렸다. 영적으로 분별은 잘 하지만 거룩까지 가지 못한다. 즉 깨닫기는 하는데 행함이 없다. 이는 이미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들에 의해 교회가 오염되었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자기의 귀를 즐겁게 해 줄 선생만 따라다니며 긍정의 힘과 같은 번영 신학을 추구하므로 자기의 배를 위해 목회하는 삯군들은 축복의 메세지만 선포하고 회개의 메세지는 선포하지 않는다. 거룩의 첫 걸음은 회개인데, 분별까지 간 다음에 회개를 건너 뛰고 곧장 축복을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종교다원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때에, 세계 교회가 연합하여 WCC를 만들고 그 기구를 통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고 세계의 인권 문제를 해결한다는 이유로 종교다원화를 추구하며 선동하는 자들을 교회 연합 행사의 강사로 세운다. 이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며 장사를 한다. 교회에서 예수의 이야기만 하면 너무나 쉽게 장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철없는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소수 정예부대를 사용하셨다. 왜냐하면 주께서 하셨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이 했다고 인간의 행위를 자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의 행위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종교다원주의자와 더 가까이 앉으려고 하며 이세벨의 독이 든 술잔 앞에서 떡고물이라도 떨어지면 주워먹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이세벨에게 경배한다.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떡고물을 줍기위해 기꺼이 이세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다.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과연 목회자들 중에 누가 거룩한 전쟁을 할 수 있을까? 누가 주님께서 피흘려 세우신 교회인 주님의 군사들을 대장되신 그리스도께로 이끌 수 있을까?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않은 자가 자기 혼자 뿐이라고 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7천명을 남겨놓으셨다고 하셨다. 항상 어느 시대건 주께서 남겨놓으신 소수 정예부대가 있다. 그들의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가 있다. 종려나무 가지는 초막절(장막절)에 사용한다. 이는 15절에서 주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장막은 성막을 말하며 성막은 성전을 말한다. 즉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는 것은 성전이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를 성전으로 만드신다는 것이다. 이를 요한복음 1장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본문은 장막절 즉 모든 것을 마치고 안식하는 안식일에 이루어지고 있는 광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절기 중 가장 마지막 절기가 장막절이다. 그래서 계시록의 마지막인 21장과 22장을 보면 어린양이 성전이라고 말씀한다. 장막절에는 세상 모든 열방이 회심하고 주께로 돌아오도록 기원한다. 그래서 계시록의 결론은 건물 성전이 없어지고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군사들의 몸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장막절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계 21:22)

장막절인 안식일의 개념에 대하여 16-17절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계시록 21장과 같은 말씀이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계 21:6-7)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씀하는 것과 반대의 상황이 안식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어서 몸이 상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신명기 28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신 28:47-48)

이렇게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은 상태는 저주의 상태 즉 심판을 받은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주리고, 목마르다"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5장에서도 똑같은 단어로 사용되면서 예수께서는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에서 저주에 해당하는 것이 신약에서는 복을 받은 상태로 표현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리고 목마르게 하시므로 그들이 회개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 육체의 주리고 목마름을 경험하면서, 그러한 목마름을 육체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라고 하신 말씀대로 영혼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저주가 복인 이유는, 그렇게 의에 주리고 목마를 때 천국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천국의 시작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대한 목마름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둘이 짝을 이룬다. 복과 저주, 구원과 심판 등과 같이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으며, 택함을 받은 자는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은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그 짝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완전한 연합이 이루어져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짝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을 때 선악 지식나무를 따먹은 인류는 항상 2분법으로 선과 악, 복과 저주, 구원과 심판, 흑과 백 등으로 분리하여 생각하고 판단한다.

천국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17절에서 어린양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할 것이며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한다. 16-17절 말씀은 이사야 49장10절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사 49:10)

계시록 6장6절에서는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말씀하며 또 16장 8-9절에는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라고 말씀하듯이 주께서 장막을 치심으로 안식에 들어간 자들에게는 어떠한 것들도 상하게 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어린양께서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7장37-38절에서 명절 끝 날(큰 날) 즉 장막절에 예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외치셨던 것이다.

주일에도 구별되지 않은 채 세상으로 나가며 자신의 정욕과 쉼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장막절이 이르지 않았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자는 생명수 샘물로 인도되어 결코 목마르지 않는 장막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한 이들이 12 샘물이다. 12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수이다. 따라서 샘물 열 둘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칠 것이며 그 12 샘을 통하여 세계의 모든 족속을 뜻하는 숫자인 70(창 10장)개의 종려나무가 번성하게 될 것이다(출 15:27).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양의 피로 완전히 자기 부인을 한 자만이 흰 옷을 입은 자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왕같은 제사장이다. 그러한  열 두 샘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70개의 종려나무인 열방에 복음을 전하며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를 먹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는 죄를 짓지 말고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님께서 이끄시는대로 흰 세마포 옷을 입은 거룩한 군사로서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세계의 열방에 생명의 양식과 생명수를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기원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 121:5-7)

본헤럴드 미국지사장,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적용]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를 얻은 흰옷 입은 하늘나라의 군사인가? 

군대는 전쟁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영적 전쟁터에서 주께서 가르쳐주시는 전략과 전술을 적절히 사용하여 잘 싸우고 있는가? 아니면, 내 몸의 건강과 마음의 기쁨을 추구하며 어떻게든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나의 행복을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가?

찬양과 기도는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는 행위이다. 나는 피조물이고 찬양받으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만드신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며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것이 찬양이다.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통해 주께서 무엇을 이루실 것을 듣는 것이 기도이며, 마음껏 주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나를 죽이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한 찬양과 기도를 하는 이가 하늘나라의 군사이다. 

군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뢸 수 없다. 오직 명령에 충성 즉 믿음의 행위만 있을 뿐이다. 나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충성을 다하는 군사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나의 뜻을 이루어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 또는 감히 하나님께 명령하는 오만불손한 자인가? 

어린양의 피로 씻김을 받지 않은 채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기만을 바라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 나의 죄인됨을 고백하며 온전히 주님과 연합되지 않은 채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을 간구하지 말라. 이는 다른 모든 종교인들이 하는 종교 행위이며 우상 숭배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장막을 치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므로 그분과의 완전한 연합을 통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세계 열방을 가슴에 품고 그들을 제자 삼아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전도인과 성전으로서의 직무를 다 하자.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 오늘날 거룩을 잃어버린 수많은 교회 속에서 환난과 핍박 속에도 굴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4) 바알에게 무릎을 꿇고 이세벨의 술잔 앞에 줄을 서서 하나님과 우상을 동일시하며 함께 섬기는 종교혼합주의를 옹호하는 거짓 선생들이 많은 이때에 거룩한 분별력을 갖고 오직 주님만 섬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5)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하시며 항상 소수 정예부대를 통해 역사를 이루시는 주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저 역시 주께서 남겨놓으신 소수의 그루터기가 되어 언제 어느 때든지 주께서 도구로 쓰시기에 합당한  귀한 도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6) 항상 그리스도 안에 거하므로 육체적으로 주리고 목마른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복된 자로 살아가므로 이미 승리하신 주님의 의로운 흰 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고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라며 즐겁게 찬양하며 살게 하옵소서

7) 저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제 속에 살아계셔서 충성된 믿음의 열매가 매일 매순간 주렁주렁 맺히도록 인도하옵소서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