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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낳는 것과 하나님이 낳는 것(약 1:15-21)
  • 박홍섭 목사
  • 승인 2018.07.1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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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하나님을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17절에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한 것처럼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되 좋은 것을 주시며 무상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은사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분이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미쁘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이 주신 것은 모두 좋은 것이며 온전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세상에 나쁜 것이 있고 악한 것이 있죠?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것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인간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연도 사람이 들어가면 다 파괴되고 오염되지 않습니까? 원래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받아서 잘 관리하고 다스려서 땅에 충만하고 번성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동안 문제가 생겼습니다. 15절을 보실까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사람이 나쁘고 악하게 만드는 과정을 이렇게 선명하게 표현한 데가 없습니다. 욕심이 잉태한다고 하죠. 임신 한다는 뜻입니다. 임신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무엇인가가 태어납니다. 사람이 임신하면 사람이 태어나고 개가 임신하면 개가 태어납니다. 그런데 욕심이 임신하면 뭐가 태어납니까? 죄가 태어납니다. 

욕심은 하나님이 주신 경계를 넘어 갖고 싶은 것인데 오늘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죄가 어느 날 그냥 쑥 하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잉태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죄로 연결되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경고도 하고, 자기 양심이 그것은 옳지 않다고 사인도 보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욕심을 버리지 않을 때 어떻게 됩니까? 여자가 임신하듯이 그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욕심이 잉태됩니다. 그렇게 욕심이 잉태되어 자라면 그에 상응하는 의지적 행동이 선을 넘고 경계를 벗어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가 되는 과정과 그 죄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심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이 파괴되고 왜곡되어 나쁘고 악한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는 과정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셔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잘 사용하고 잘 관리해서 더 영광스럽고 더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것들을 잘 사용하고 관리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정해주신 말씀의 선을 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생의 경계를 지키면서 사랑의 교제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것이 유지 될 것이고 유지될 뿐 아니라 더 복되고 풍성하게 자라고 완성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인생에게 사단의 거짓과 속임수가 들어옵니다. 사단은 하와의 생각 속에 거짓과 속임수를 심어서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었고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게 하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도록 욕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와에게는 그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하나님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의 생명의 교제와 거기에서 오는 모든 좋은 것들을 잃어버릴 것이며 반드시 사망이 온다는 엄중한 경고가 있었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사랑으로 잘 관리하고 다스릴 때 영생이 주어진다는 복된 약속도 있었습니다. 이 경고와 약속을 생각하면서 욕심을 버렸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하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욕심을 잉태해서 결국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무서운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과 단절되어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을 부수고 망가뜨리고 변질시키면서 영원한 사망을 불러오는 사단의 하수인과 죄의 종이 되고 만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나쁘고 악하게 만들죠? 속아서 그렇습니다. 사단에게 속아서 마음속에 욕심을 잉태한 것이고 계속 속아서 그것을 죄로 낳고 그리고 또 속아서 사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 속음의 결과 사람과 자연과 온 피조세계가 죄와 사망의 영향 아래서 썩어짐의 종노릇 하고 신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16절에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죄는 목적하는 지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번으로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죄의 지향점이 어디입니까? 사망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사탄은 죄를 짓는 사람이 지옥의 영원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결코 놓아주지 않습니다. 이번 한번만 눈 감으면 된다. 이번 한번만 즐기면 된다가 아닙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된다가 아닙니다. 여러분을 지옥으로 이끌기까지 죄는 한번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사탄은 조금만으로 여러분을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도록 속지 마십시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아담 이후 모든 인생은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속아서 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속는 줄 모르고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땅과 이 땅에서 사는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을 불러 당신의 소유 삼아 다시는 속지 않는 사람들을 만드시기로 뜻을 세우시고 그것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창조된 사람들을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낳으신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아진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단은 거짓과 속임수를 심어 욕심을 잉태하게 하고 죄를 낳아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었지만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심어 생명을 낳아 하나님의 소유인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거듭남입니다. 구원입니다. 이것을 벧전1:23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빛들의 아버지이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불변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고 있습니다. 사람은 마귀에게 속아서 욕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부수고 파괴하고 변질시키며 나쁘게 만드는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인생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십니다.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고 공기를 주시며 물을 주시고 바람을 주십니다. 여전히 인간에게 재능을 주시고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난 이성적 능력을 주십니다. 모든 좋은 것을 여전히 공짜로 주시고 있고 선물로 주시고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주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잘난 인생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중단하면 잘날 수 없고 살수 없습니다. 주시는 하나님 없이 살아 갈 수 있는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생이 마치 자기 힘으로 사는 것처럼 오만을 떨고 있으니 참 안타깝고 가소로운 것이죠. 

하나님이 주시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구원입니다. 거듭나게 하는 은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는 중생의 은혜가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왜 이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까?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주어지는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한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는 엄청난 희생을 해산의 고통으로 감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의 영혼 속에 진리의 말씀을 복음의 씨앗으로 심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심어주신 진리의 말씀은 능력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심겨지는 순간, 바로 생명의 기운이 작동하면서 초자연적으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진리가 말씀으로 우리 속에 심겨져서 우리의 중심을 새로운 본성으로 탄생시키는 최초의 사건을 신학적으로는 중생, 혹은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구원은 그렇게 진리의 말씀을 심어 우리를 낳으신 것으로 시작하여 생명이 자라는 것으로 연결되고 영원한 영광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주권적인 은혜의 사건이기 때문에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바라기는 지금 이 시간,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자리로 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진리가 말씀의 씨앗으로 심겨지는 놀라운 구원의 일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교회가 하는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뜻대로 부르신 자들에게 이 거룩한 말씀의 씨앗이 심길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이고 그 씨앗이 싹이 나고 줄기가 돋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부수고 파괴하고 나쁘고 악하게 만들어 영원한 사망을 향하여 달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지키고 나누면서 더 풍성하고 좋은 것으로 확장하는 생명의 삶이되기를 원한다면 교회에 나오셔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셔서 계속 이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19-21절을 보실까요?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왜 우리가 교회에 나와야 할까요? 여기가 아니면 우리의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겨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곳이 없고 그 말씀들을 들을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아니면 우리 영혼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이 자라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게 해줄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에 심긴 말씀을 받고 이미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이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받을 때 구원의 역사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과 급히 말하는 것과 성내는 것을 버리고 속히 말씀을 듣고 온유하게 그 말씀을 받는 태도를 가지셔야 합니다. 그것은 또 다음에 살피기로 하고 오늘은 이 정도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받아야만 사는 인생입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구원하는 진리의 말씀을 받아야만 제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저와 여러분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좋은 것이 욕심에서 나지 않고 빛들의 아버지이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는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말씀을 듣는 자리로 속히 나아오십시오. 욕심을 잉태하여 죄를 짓는 일을 중단하시고 진리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속히 하십시오. 헛된 소리, 더러운 소리 격동하는 소리 탐욕과 분을 자극하는 소리에 빠르게 반응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온유하게 받는 일에 빠르게 반응하십시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고 무엇을 끌어안고 사셨는지요? 풀의 꽃처럼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없어지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어제로 족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썩고 말 분토와 같고 배설물과 같은 것들을 보배처럼 끌어안고 사는 것도 지나온 세월로 족하지 않는지요? 이제 남은 생애는 여러분의 영혼을 능히 구원할 항상 있고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안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듣고 그 말씀을 온유하게 받는 자리로 나오셔서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홍섭 목사  bonh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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