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8:1-4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1. And when he had opened the seventh seal, there was silence in heaven about the space of half an hour. 2. And I saw the seven angels which stood before God; and to them were given seven trumpets. 3. And another angel came and stood at the altar, having a golden censer; and there was given unto him much incense, that he should offer it with the prayers of all saints upon the golden altar which was before the throne. 4. And the smoke of the incense, which came with the prayers of the saints, ascended up before God out of the angel's hand. (KJV)

드디어 어린양께서 일곱째 인 즉 마지막 인을 떼신다. 그리고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해진다. 이는 침묵을 말한다. 마지막 인을 떼자 잠시 고요해지고,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 준비를 한다.

나팔은 전쟁을 알리며 군대를 소집할 때 사용되며(민 10:1-9, 삿 7:20, 느 4:20), 새로운 한 해(나팔절)와 절기를 알릴 때 사용되었고(레 23:24, 민 10:10, 29:1, 시 81:3, 고전 14:8), 왕의 대관식(왕상 1:34, 왕하 9:13)과 여호와를 찬양하며 제사를 드릴 때(시 98:6, 150:3, 대하 20:28, 28:29), 회개를 선포할 때(사 58:1, 렘 6:17, 겔 33장, 호 8:1, 욜 2:15)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낼 때(출 19:16~19, 시 47:5, 살전 4:16, 계 4:1) 사용되었다.

일곱 나팔이 울려퍼진다는 것은 나팔절의 시작과 더불어 신랑 예수께서 오실 것을 알리는 것이므로 나팔절부터 속죄일까지 회개할 시간을 주며 회개하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때 회개할 것인지 계속 하나님을 훼방하며 불순종하며 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며 이 정해진 기간동안 회개하지 않는 자는 마지막 추수 때인 장막절에 가라지와 쭉정이로 분류된다. 

그래서 나팔이 울려퍼진다는 것은 회개와 반역이라는 영적 전쟁을 알리는 것이며, 이 기간동안 회개한 자들 즉 알곡(그리스도의 군사)을 모아 마지막 초막절인 추수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어 알곡은 곡간에 가라지는 풀무불에 던지고, 그리스도의 대관식과 더불어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

일곱 나팔을 분다는 것이 거듭나지 않은 이들에게는 '나팔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재앙과 심판을 의미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이들에게는 '재앙'이 아니라 나팔소리와 함께 주께서 영적 전쟁을 위하여 회개를 선포할 주님의 군사들을 모으는 '하나님 나라의 군사 모집'을 의미하며 그 군사들을 통해 구원을 이루실 것이므로 일곱 나팔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주님의 임재를 알리는 것이다.

본문은 여리고 성 함락과 연관되어 있다. 여호수아 6장을 보면, 백성들 앞에서 일곱 명의 제사장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며 여리고 성을 돌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본문 1절의 상황을 여호수아 6장10절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

여리고 성은 외벽과 내벽 즉 이중으로 성벽을 만들어 감히 넘볼 수 없는 성이었다. 외벽은 라합의 집이 이 성벽 위에 있었을 정도로 약 5m 정도의 높은 기초 성벽 위에 높이 7m, 두께 약 2m 정도의 진흙 벽돌로 세워졌다. 또한 내벽은 지상에서 14m 정도 높이의 둑 위에 세웠으니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성벽이 휘장이 찢어진 것과 똑같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제아무리 튼튼하게 쌓은 성벽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단단한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내리기 위해서 즉 성막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단단한 고집과 자아가 찢어지고 깨지기 위해서 일곱째 날에 일곱 나팔이 울려퍼지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음성이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분향단은 기도하는 곳이다. 우리가 분향단 앞에서 기도하며 부르짖기 전에 가장 먼저 침묵을 배워야 한다. 즉 순종과 마음의 귀를 열어 다른 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을 배워야 한다. 순종하는 사람 즉 귀를 열고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만이 부르짖으라고 명령할 때에 그 음성을 듣고 외칠 수 있다. 명령을 듣고 외칠 때 자신의 모든 자아가 깨어지고 휘장이 찢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침묵하지 않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계속 입을 벌리고 자기 말만 하는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으므로 자아가 부서지고 휘장이 찢어지는 여리고 성의 함락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주여, 주여"하며 매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찬송하며 아무리 외쳐보아야 주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며 주 앞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일 뿐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입을 열지 말고 침묵을 배우라고 말씀한다. 입을 열지말고 마음의 귀를 열어 들을 귀가 있으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할 때 조차 우리의 입을 열어 우리의 요구사항을 외치기만 하고 결코 주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잘못된 기도 사실상 그것은 기도가 아니므로 분향단에서 향기로 올라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응답이라는 말이 불필요한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6)

성경은 우리에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대하 20:15)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죄인들은 끊임없이 반역의 길을 걷기 위하여 스스로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의 방법을 외치며 싸우러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죄악 속에서 죄인들끼리 자기의 지식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싸우지만 주님의 나팔 소리를 듣지 못하므로 그러한 싸움은 끝이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께서 싸우시고 주께서 승리의 소식을 전해주시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싸우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잠잠히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폭풍 전야가 고요하듯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반드시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침묵은 다른 종교인들이 하는 것처럼 명상을 하며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있는 시간을 말한다. 즉 세상을 보던 눈을 감고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의 말씀만 듣는 시간이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다.

그러나 성미가 급한 사람들은 결코 세상을 보던 눈을 감지 못하고 뉴스를 하루라도 듣지 못하면 안절부절한다. 다른 이들보다 세상 소식을 하나라도 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그것을 알리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선악 지식나무를 열심히 따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리에서 하나님처럼 살려고 애를 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므로 그분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아담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군사가 된 자들은 제일 먼저 입을 다물고 침묵할 뿐만 아니라,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청종하는 훈련을 해야만 한다. 주님 대신에 주신 목회자와 가족들과 이웃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보이는 사람의 말도 듣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분의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성경과 주의 종을 통해 말씀하시며 심지어 당나귀의 입 즉 만물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진정으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만이 여호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주님의 명령에 따라 외치는 그의 부르짖음은 그의 견고한 요새인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구원의 첫 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시 62:1)

[적용]

나에게 있어서 무너져야할 여리고 성은 무엇인가?

나의 견고한 진인 여리고성이 무너졌는가? 아직 그대로 있는가?

내가 가장 보기 좋아하고 듣기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의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전혀 관계가 없거나 하나님의 나라와 반대되는 것은 아닌가? 그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가, 상대방의 말을 듣기를 좋아하는가?

내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나는 얼마나 잠잠히 입을 열지않고 들을 수 있나? 얼마나 그들을 참아줄 수 있는가?

마음은 닫은 채, 귀로만 듣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버리지 않는가?

마음의 문과 귀를 막아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 하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아직까지 휘장이 찢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정욕을 못박아 죽고 부활한 것이 아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세상 정욕으로 죽어있는 상태이다. 단단히 빗장을 잠그고 그 누구도 쳐들어올 수 없는 주님의 군대와 싸워서 허물어져야 할 여리고 성일 뿐이다.

마귀의 음성과 성령의 음성을 구별하여 들을 수 있는가? 

마귀의 달콤한 속삭임 즉 나 자신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거나 그들의 말을 듣지 말고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며 틈만 나면 더러운 말로 그들에게 화풀이 하며 미워하며 계속 주변 사람들과 싸워서 절대 지지 말라는 생각을 따라가지는 않는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아프거나 말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아프다고 해도 귀 기울여 듣기 싫어하고 내 몸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 몸만 챙지기는 않는가? 

내 몸이 피곤하고 귀찮으면 다른 이들이 무슨 말을 하건 반응을 안 하는가?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므로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하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하며 화를 내기 전에 화를 낸 결과를 생각해보며 입을 다물고 인내와 절제와 화평과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주변에 힘들고 아픈 이들의 거의 들리지 않는 신음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침묵하며 마음의 귀를 열어서 그들의 세미한 음성까지 들을 수 있는가? 즉 연약한 이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가?

나의 기도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님께 구하며 살아가는가? 직장과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얻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들을 구하고 있는가?

주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가? 

나는 죽고 주님과 그분의 영광만이 나타나기를 진정으로 원하며 간구하는가?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가? 그래서 주 앞에서 아무 할 말이 없으며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가? 

얼마나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잠잠히 기다려보았는가?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주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군사를 모집하고 계시는데, 저의 솔직한 심정은 주님의 자녀로 사랑과 은혜를 받으며 살고 싶고 전쟁터에서 힘들게 싸우는 군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욕심은 없고 평범하게 살고싶은데 왜 저를 군사로 부르시고 고생스러운 훈련을 통해 연단하시는지요?

3) 저의 견고한 요새인 자아가 살아서 제 삶의 주인 노릇을 하고있는 동안 저는 계속해서 주님의 명령과 여리고 성처럼 고집센 제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하며 전쟁을 치열하게 하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 마음을 주의 말씀이 아닌 제 뜻대로 지키려고 했음을 고백합니다.

4) 평소에 다른 이들의 말을 듣기 보다는 제 말을 다른 이들이 듣기를 원했을 뿐만아니라, 주의 말씀을 듣기 보다 제 말을 주께서 들어주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말에는 관심도 없고 특히 제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다른 이들을 배려한다는 것처럼 귀찮은 것이 없어서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입은 많이 거칠어졌으며 명령과 더러운 말과 상처주는 말과 저주의 말을 수없이 하며 살았습니다. 혀를 조심하라는 말씀을 알면서도 다른 이들이 저를 위해 조심해주기를 바랐고, 제 혀를 금하려고 하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5) 저의 무너져야 할 여리고 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저에게 알려주시고 회개케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령께서 그 단단한 여리고 성을 위로부터 아래까지 완전히 무너뜨려주셔서 성령 안에서 거듭난 자로서 저 자신을 부인하며 제 십자가를 지고 평소에 제가 원했던 모든 정욕과 세상적인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앞서 가신 주님만 따라가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게하여 주옵소서.

6) 이렇게 저 스스로도 절대로 무너지기 싫은 마귀의 종노릇에 익숙한 완고한 저를 불러주시고 조각목 다듬듯 다듬어주시며 주님의 나라를 위한 그릇으로 쓰시기 위하여 풀무불에 던져 연단시켜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던지신 그 풀무불 속에서 불필요한 모든 찌끼들이 다 제거되어 주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정금같이 새롭게 태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오니 저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옵소서.

7) 이제는 주 앞에서 잠잠하며 성령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게 하셔서 저는 완전히 죽고 오직 제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므로 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주님의 영광만이 나타나게 오늘도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he 2nd Life Foundation, 뉴욕퀸즈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