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의 자살에 부쳐

【【최원영목사ㅣ 본푸른교회담임.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본헤럴드 신문 대표, 변화산기도원 공동원장,저서ㅣ 제자세우기 40일 영적순례 (1,2권), 주기도문 연구 등

노회찬 의원은 현대 정치사에 귀한 인물이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죽음은 한국 정치에 큰 손실임이 분명하다. 그의 죽음은 매우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다. 무생물인 돈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양날의 칼이 되어 우리 사회를 아주 더럽게 오염시키고 있다.

노회찬 의원은 진보주의 논객이었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전투적이면서 또한 해학도 있기에 그의 논리를 좋아하는 무리들이 많다. 또한 나름대로의 대중적인 이미지도 가지고 있는 소중한 국민의 대변인 진보논객이었다.

사회를 보는 시각에 대해 진보논객, 보수논객, 중도논객들이 모두 필요하다. 그는 분명히 진보논객으로 사명을 다했다고 본다.

그의 죽음을 놓고 종교계는 서로 자신의 신학적 안경으로 해석하고, 그 반대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깊은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왜 자살이란 죽음을 선택했는지 과도한 추측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살의 동기에 대해 살아있는 사람들의 추측이나 가정은 명확한 답이 아닐 수 있다.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회찬이란 인물에 대해 두 가지로 그의 삶을 돌아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그가 걸어왔던 삶의 모습들이다. 그는 분명히 한국 사회의 자산이었다.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몸으로 살아왔다. 노동자들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 현장에서 치열하게 몸소 살아온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역사 속에서 재조명되어 많은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며, 소중한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후대는 그가 걸어갔던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그의 철학과 가치를 담아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다.

둘째는 그는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것도 우리 정치계에 큰 담론을 담아내는 진보논객이 말이다. 그의 자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해석의 문제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자살을 미화하거나 감성적 접근은 우리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혹자는 그의 자살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같은 동일한 평행선에 놓고, 고귀하고 의로운 죽음으로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살은 자살 일 뿐이다.

한국은 자살공화국이다. 자살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아니다. 자살은 우리 사회 공동체를 어둠으로 인도할 뿐이다. 자살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대단한 결단력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자살보다 더 큰 용기는 무엇일까? 잘못을 시인하고 뭇매를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양심이란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다.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혼자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자살은 책임 있는 지도자가 선택해서는 안 되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거짓말의 무게가 양심을 짓눌러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포기를 선택한 것도 큰 용기이겠다. 하지만 그 용기보다 더 소중한 행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난의 화살을 온 몸에 맞으며 견디며 살아내는 치열한 모습이다. 그것이 국가를 위하고 그가 함께 살아왔던 소중한 이웃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지도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없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보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걸아가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올랐던 것처럼 지도자는 죽을 권리가 없다. 기독교적 가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사람들은 자살할 권리가 없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우리 사회의 방향과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국민에게 고난을 뚫고 일어나는 절연한 모습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 자살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는 사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16:6). 어쩌면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고통이 되는 분들이 이 땅에 너무도 많다. 그래도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신 신의 엄중한 선언이며 배려이며 마음이다. 더군다나 공인이나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자살을 하면 안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민족을 가슴에 품고 걸어가야 할 지도자의 숭고한 길이다.

노회찬 의원이 자살을 통해서 깨끗한 양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죽음으로 속죄하는 것보다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양심을 죽음으로 지키는 것도 용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무너진 양심을 다시 세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야 말로 위대함 아닐까?

정치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치 말고도 나라를 위해 더 귀하게 헌신할 분야가 많다. 진정한 리더의 모습은 인생의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를 성숙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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