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90) - 잠언(4)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잠1:6).

지혜의 세계는 삶의 적용에 유익한 것이다. 인생이 하나님의 세계를 알고 그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지혜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잠언과 전도서의 지혜 세계를 한 마디로 말하면 ‘누가 선한 것을 아는가?’ 라고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선한 세계를 추구하는 지혜로운 삶이 바로 지혜의 세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잠언은 솔로몬의 잠언(미쉬레이 쉐로모)이라고 하는데(잠10:1;25:1), 이는 솔로몬에게서 지혜의 잠언이 기원한다는 뜻이며 개별적 잠언이 솔로몬의 저작이라고 명확하게 단정적으로 말하기보다는 그의 저작을 말함으로 솔로몬의 권위를 둔 것이다. 솔로몬 왕을 표제어로 삼아서 표현한 것이다. 잠언은 지혜를 직유법(처럼, 같이)을 사용하여 표현하거나 어떤 형상을 사용하여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비교한다. 그리하여 자연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의 상호 관계를 말함으로서 지혜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교의 강조는 추론과 적용을 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26:11). 인생이 살면서 한 번 행했던 것대로 그대로 답습하여 따라감으로 인간이 실패를 거듭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어리석은 실패를 거듭 행하지 않는 지혜는 하나님 말씀과 영적 분별을 통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가능한 것이다.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르느니라”(잠26:14).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사실의 비교는 단순히 보다 생생하게 본질의 초점을 드러나게 해주거나 궁극적으로 자연과 인간 생활 사이에 유비(類比, analogy)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추정하도록 한다. 그래서 단순한 질서를 통해 온 세상의 본질을 포착하도록 한다.

잠언은 최소한 이스라엘 안에서 보편적 세계 질서가 아닌 여기저기에서 탐구된 사실을, 유비를 통하여 특별하고 구체적인 본질에 대하여 질문하며 지혜의 질문에 이르게 한다(허미슨). 이 비교의 말(tertium comparationis)이나 비교의 관점은 즉 사물의 다양한 상태나 행위의 연속성 등에 있는 공동성의 요소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 비교 잠언은 보통 한가지로 규정되지 않고 모호하거나 심지어 수수께끼(히도탐, 오묘한 말, dark saying, enigmatic, riddles; 왕상10:1; 삿14:12; 잠1:6)와 같은 말로 표현되어서 잠언이 거의 우연히 나타난 말이 아닌 것을 보여준다. “의인이 악인의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의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잠25:26).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 “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잠25:3).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니라”(잠25:11).

잠언은 수비학(數祕學, numerology)을 사용하여 수적 담화를 표현한다. 이 동일한 수적 표현은 형상이나 직유의 특별한 형태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숫자는 다양한 형상을 보여주며 상호 관계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잠언 30:18-19). 여기 길이라는 말이 향상(진보)을 결정할 수 있고 항상 새로운 어떤 빛나는 삶의 방식을 언급하는가? 또는 회고하며 더 이상 되짚어 볼 수 없는 어떤 자취를 말하는 것인가? “음녀의 자취도 그러 하니라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잠30:20). 어떤 경우에는 독자가 “첫 세 현상으로 인해 네 번째 인간 행동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만 도입하는 현상으로서 그런 인상을 받게 된다”(볼프). 다시 말해 독수리 자취나 뱀의 자취와 바다의 배의 자취는 남자와 여자의 연애 행각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음녀의 자취가 앞 선 자취처럼 알 수 없고, 더욱이 악인의 행각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잠언은 자연의 대한 지혜를 제공하고 있고,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만 유일하게 도움이 된다(시104; 욥38). “셋-넷”에 더해서 다른 수적 시리즈가 있다. “하나-둘”에서부터 “아홉-열”(잠30:15이하; 6:16이하)이다. “육-칠”가지를 말하고 있다. 심지어 예언자는 이러한 말투를 사용하기도 한다(암1:3이하, 서 너 가지).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고(하브, 달라) 다고(하브, Give) 하느니라. 족한 줄(티스바에나)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혼) 하지 아니 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잠30:15-16).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6:16-19). 이러한 숫자를 통해 정확하게 말씀을 외우고 묵상해서 지혜롭게 살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중요한 신체 부위 다섯(눈, 혀, 손, 마음, 발)을 말하고 거짓 증인, 형제 이간 자를 언급하며 부정적으로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언급함으로 이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잠언은 경계하고 경고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르아트)이 지식의 근본(레쉬트)이거늘 미련한 자(에윌림)는 지혜와 훈계(호크마, 우 무살)를 멸시하느니라(바주)”(잠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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