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이 과정을 견뎌내고 싶다. 더 늦기전에......

김종연,집사(본푸른교회),  청소년기에 들어선 자녀를 바라보며 기쁨과 아픔과 꿈을 기도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가정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까? 주님께 묻는다면, 주님께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라고 위로를 받으며 믿음으로 주의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부모님은 7남매를 키우셨다. 물론 돈을 버는 것은 오로지 아버지만의 몫이었다. 늘 부족했고, 부족했고, 부족했다. 어린 시절 소원이 있다면,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 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부모가 되어 있다. 부모가 되어 보니 그때에 나에게 부족했던 것이 돈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예전의 나의 기질과 아주 비슷한 똑똑하고 반항기 많은 아들을 키우고 있다. 내가 어릴적에 어른들이  ‘너하고 똑같은 자식 낳아 키워보라’ 하던 말씀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사랑의 감정과 이성을 절제할 수 있는 훈련이 되었다면 지금의 혼동된 모습은 많이 없었을 것이다. 좀더 감정을 절제하고 부드럽고 세련되게 표현하는 훈련이 되었다면 소통의 어려움으로 오해가 쌓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들의 사랑은 자녀들과 소통이 잘 안되었다.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강압적이었다. 그런데 딱하게도 나는 나의 부모님에게서 그런 무뚝뚝하고 퉁명스럽고 강압적인 형태로 사랑하는 법만이 내 몸에 자연스럽게 배었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억눌린 사랑의 방식이 나도 부모가 되어 내 사랑의 수준으로 나의 아이들에게 표현하였다. 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법은 그대로 나에게 반사되어 내 마음에 상처로 원망으로 남았다. 그럴수록 나의 사랑의 방식은 점점 무뚝뚝해지고 더 퉁명스러워지고 더 강압적인 표현이 많아졌다.

사랑은 서로 믿어주며 인내하며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것이겠지....

그 결과, 상처를 받을까 봐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녀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서로에게 필요한 만큼만 사랑한다. 저 밑에서 표현 못하고 울고 있는 사랑을 꾹꾹 눌러놓고 겉으로는 아주 조금만, 사랑을 표현하고 산다. 이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것이다.

청소년기에 들어선 나의 자녀. 너무 예민하여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대지에 서서 불안하게 바라볼뿐이다. 나는 나의 자녀들을 너무도 사랑한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 불편한 관계에 있다. 어찌해야 할까? 내가 다른 아이들과 나의 자녀들을 비교하듯이 나 또한 다른 부모들과 비교될 수 있다. 

나의 부모를 탓하랴, 나의 환경을 탓하랴, 다른 누구와 무엇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고 있다. 나는 나이 50이 되어 청소년기에 들어선 자녀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세상을 배워가는 아이들처럼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초보 부모의 심정으로 내딛고 있다.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이 과정을 견뎌내고 싶다. 더 늦기전에, 나는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나의 가정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까?' 기도할때마다, 말씀을 필사할때마다 주님께서 나를 위로하시는 것 같다. '너의 가정 여전히 희망이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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