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Global Missions 미국지사
【오늘의 기도】인봉한 책을 펼친 그리스도(26) 세상에서 가장 크신 분요한복음 4:9-16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다.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시고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을 통해 열두 지파를 이루게 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만드셨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으나,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정복되면서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며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며 야곱이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서 그들의 조상이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이루게 한 야곱과 비교할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기때문에 그녀는 예수님께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큽니까?"라고 질문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예수께서 물을 달라고 하실 때 고분고분히 물을 드리지 않았다. 또한 친절을 베풀지도 않았다. 그녀는 물을 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예수님이 유대인이면서 어떻게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라고 말씀하시자 더욱 교만히 대꾸했다. 

예수님을 보니 먼 길을 와서 피곤해 보였고 예수님의 손에는 물을 길을만한 아무런 도구도 없었다. 따라서 그녀는 물을 길을 그릇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어떻게 생수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핀잔을 주듯이 이야기 한다. 게다가 그들의 조상인 야곱은 자기들에게 우물을 남겨주어 그곳에서 자자손손이 물을 마시게 해주었는데, 그러한 야곱보다 더 큰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투로 말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시자, 그녀는 그 말을 세상적으로 해석한다. 그 동안 물을 길러 다니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자기를 편안히 먹고살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만해도 예수님의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태클을 걸어오던 그녀가 공손히 부탁하는 자세로 바꾸어 이젠 좀 편안히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사마리아 여인의 태도를 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을 때가 많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헌신과 봉사를 원하실 때에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희생하지도 않으면서 할 말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기 위해 우리를 테스트 하시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따지기만 한다.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않고 머리로만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유익한 지를 계산만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주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은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이것은 구시대의 유물이므로 지금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며 내가 하나님보다 더 똑똑한 척하며, 하나님을 내가 주관하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그러다가 주님을 믿는 것이 무언가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으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꼬리를 내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겸손한 척 부탁하는 투로 열심히 간구하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은 영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세상적인 판단 기준을 갖고 육의 대답 즉 동문서답을 하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선민을 만드셨다. 그래서 야곱의 자손들은 세상과 구별된 성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민처럼 살지 못했다.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만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던 것이다. 과거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혈통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과해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야곱이 판 우물을 통해 육적인 물을 공급받으며 살아갔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을 통해서 영적인 생수를 공급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7-39)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여인이 생각하는 야곱과 비교할 수 없이 큰 분이시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눅 3:16). 

즉 세상에서 요한보다 큰 사람이 없는데, 이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푸는 것조차 감당할 수 없는, 예수님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예수님보다 큰 사람이 없으며 예수님이 가장 큰 분이라는 말이다.

나의 삶 속에서 내가 가장 크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혹시 그것이 주님의 말씀보다 더 높은 곳에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주님의 말씀보다 그것을 더 크게 평가하며 더 가치있게 생각하여 선택을 해야할 때에는 말씀을 버리고 그것을 선택하지는 않았는가? 만약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을 남겨 준 야곱이 세상에서 제일 큰 자인 줄로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세상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우물' 하나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필요로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주실 수 있는 만물의 주인이시며 왕중의 왕이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이시다.

야곱은 물을 얻기위해 힘을 들여 땅을 파야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시며, 말씀으로 5천명을 먹이셨으며, 말씀만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위대한 분이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이 세상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다. 감히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위대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교만한 말과 태도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물'은 '말씀' 또는 '진리'를 뜻한다. 우물은 교회를 상징하며 교회에서 반드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성경에서 우물가는 만남의 장소이다.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 역시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을 만나서 이삭의 아내가 되었다. 우리는 우물에 가서 즉 교회에 가서 반드시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며 반드시 그 신랑과 결혼을 하여 그분이 머리가 되고 우리는 지체가 되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적용]

오늘날 우물은 많은데 즉 교회는 많은데, 정작 그 안에 물이 없는 즉 진리의 말씀이 없는 교회가 너무나 많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들이 좋아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사람들을 끌어모으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게 모인 무리들은 참된 크리스천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종교집단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며 다른 종교인들처럼 최선을 다해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우상 하나님을 섬기며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과 대화하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서 (성경을 읽고 교회를 다니면서도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해서)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고 계속해서 말대꾸만 하면서 "내가 옳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내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기도는 오래 하면서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않고, 오히려 "왜 나에게 이런 환난을 주십니까"라며 하나님께 따지거나 내 소원과 내 뜻만 이루어달라는 기도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은 과거에 우리가 주인으로 섬겼던 우리의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신다. 즉 '남편' 또는 '주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바알'이라는 우상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너무나 어리석어서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육체의 갈증만 해소해 줄 우물만 있으면 만족하며 영의 갈급함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인 줄을 모른다. 우리의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인데, 그분께서 지금 우리 앞에 찾아오셔서 말씀을 하시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기 위해 직접 우리를 찾아오시고 가르쳐주신다. 우리가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우리의 생각대로 말하고 우리의 제한된 수준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그 크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한 주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한 주님과 대화하며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이세상을 소유한 자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한 분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는 든든한 백을 가진 사람이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 있으면 온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의 것이 내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만 바라보며 오늘도 그분의 자녀로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며 기쁨의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잊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자!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부족한 것 투성이이며 기도할 때마다 주님의 뜻을 간구하기 보다는 주로 제 주장만 하며 제 뜻을 이루어달라고 떼를 썼던 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순 투성이이며 혼자 잘난 맛에 사는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 물과 피를 쏟으신 그 사랑을 생각할 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3) 주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무엇을 하라고 하실 때마다 토를 달고, 그것을 하려면 ~이 필요하고 ~을 해야하는데, 그것(계획)도 없이 무엇을 하겠느냐는 등 항상 부정적인 생각과 말이 앞섰던 저였음을 고백합니다. 

4) 제가 원하여 달라고 간구했던 육적인 것과 너무나 거리가 멀게 사랑의 주님은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값지며 가장 필요한 성령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육체와 영은 서로 소욕을 거스리기에 저는 끊임없이 불만과 원망을 토로했고, 그 결과 저는 계속해서 환난 속에 살아왔습니다. 주님과 동문서답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했음을 이제라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 저의 어리석음과 주님의 긍휼하심은 어찌 그렇게 차이가 많은지요! 높은 하늘에서 하감하실 때에 개미 한 마리나 통 속의 물 한 방울처럼 거의 존재감이 없는 제가 잘난척을 할 때 얼마나 웃음이 나오시겠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잘난척 떠들어댔던 순간들을 생각하니 정말 창피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6) 과거에 제가 제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제 남편처럼 사랑했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저와 교회의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저의 모든 견고한 진을 내려놓사오니 주의 말씀으로 그 단단한 요새가 박살이 나도록,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주께서 친히 부숴뜨려 주옵소서.

7)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이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의 아버지가 되어주시니 더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신 이 행복을 저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누리며 그들도 구원의 기쁨을 맛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he 2nd Life Foundation / 뉴욕퀸즈교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수경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