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世襲)이란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국어사전)이다.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세습(世襲)이 계승(繼承) 혹은 승계(承繼)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답습(踏襲)은 사람과 관계가 없는 문화(전통, 방법)의 한 예가 계속되는 것인데 부정적인 용례로 많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세습이란 구체적인 뜻은 무엇일까? ‘습(襲)’이 쉽지 않은 단어이다. ‘습(襲)’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제시는 “시신(屍身)의 머리를 빗기고 목욕을 시키는 뒤에 옷을 갈아입히는 절차”로 제시하고 있다. ‘습(襲)’은 죽음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정권은 세습정권인데, 1인자가 죽은 뒤에 그의 자녀가 1인자의 자리에 서기 때문이다. 북한의 세습과 한국교회의 세습은 상당히 다른 경우이다. 한국교회가 제정한 세습은 사역자의 죽음과 전혀 관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목회세습이란 이상한 어휘를 정착시킨 부적당한 예일 것이다.

왕정(王政)이 아니고 귀족도 없는 우리 시대에 ‘세습’이란 용어가 난무하게 통용되는 원인을 교회에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옛날에 있었던 음서제(蔭敍制)는 사회에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 현대시대에는 음서제의 반대인 연좌제(連坐制)가 있기도 했다. 연좌제는 1981년에 폐지되었으니 먼 이야기도 아니다. 조상을 잘 만난 복으로 관직을 얻을 수 있었고, 조상을 잘못 만난 화로 관직에 오르지 못할 수 있었다. 우리 시대에는 두 제도는 폐지되었고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 우리사회에 세습이란 용어가 발생하고 있다.

먼저 필자는 음서제가 반드시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덕일 소장은 조선시대 음서제가 있었고, 음서제로 등용된 관료에게는 음(蔭)으로 표기했고, 수치로 여겨 60이 되어도 과거에 응시해서 ‘음’자를 없애려고 했다고 밝혔다. 조선 시대에 재야에 묻혀 있는 사람을 등용시키는 천거 제도도 운용했다. 선의의 경쟁의 장을 열어주었고 가능성과 명예를 주는 시스템이다. 이덕일 박사는 예비과정 없이 한 번에 임용되는 우리의 고시시험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제시했다.

일단 우리는 “목회세습”, “교회세습”은 부당한 어휘라는 것을 인지하자. 결국 “교회당 세습”으로 보아야 하는데, 그것도 정상적인 어휘는 아니다. 일단 통용되는 의미로 “세습”이라고 한다. (사)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조직적으로 세습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모든 세습을 거부하고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현상이다.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하는 것은 공동의 결정으로 진행한다. 자기공동체의 지도자를 공동투표로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최고 의결 방법이다. 그런 절차에 문제가 있는가? 자기공동체의 결정을 공동으로 결정한 것을 누가 배격할 수 있는가? 절차에 문제가 없는데, 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 교회의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세습반대운동”보다 “합리적인 교회 운용 의식”을 구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예로 “교회정관제정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한 운동은 세습반대보다 더 어려운 수준이다. 필자는 토론이 가능한 구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구조,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의식 수준 등을 제언한다. 그리스도인은 당대의 양심인이고 지식인이었다.

1세기 기독교의 수용자들 중에 로마 군인들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 기독교의 질서, 명예, 충성이 군인과 가장 잘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초기 기독교 전래에도 그러한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그런 개신교가 왜 불통의 대표적 집단으로 전락했을까? 기독교 정신을 세속 정신과 일치시켰기 때문이다. 교회지도자인 목사의 책임이 가장 크고 절대적이다. 복음의 사람은 거룩을 위해서 자기 결단을 해야 한다. 누구의 책임전가 핑계할 수 없다. 교회가 합리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모두가 결단하고 정진해야 한다. 합리는 개방이 아니라 성도의 교통이 있는 것이다. 영적 교통이라고 강조하면서 여타 소통을 금지하는 것에 속지 않아야 한다. 교회는 이해할 수 있는 물질 소통에 명료해야 보이지 않은 영적 소통을 할 수 있다. 초급을 못하면서 고급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겠는가?

M 교회의 세습 결정은 자기 교단 법을 위배하는 불법 사안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습방지법이 없는 교단에서 행하면 무방하지 않겠는가? 결국 현실적인 반대 운동을 넘어서 우리의 의식 수준을 고양시켜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짓밟히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맛을 잃은 소금이라고 볼 수 있다. 맛있는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질서, 명예, 헌신, 부르신 주님께 충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교양과 온유가 넘치는 한국 교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