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신학덕담 신학덕담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2018년 8월 12일 황상하의 신학덕담

개혁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 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햇볕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곳입니다.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비가 내리지 않고 햇볕이 들지 않는 곳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것을 경험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장소 뿐 아니라 모든 자연 질서와 원리, 그리고 인간이 만든 제도와 인위적 질서 가운데도 하나님의 통치는 미칩니다. 인간관계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도 하나님의 통치는 미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곧 하나님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나님 나라 비유를 듣고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룩에 의해 부풀은 가루 서 말이나 새들이 깃들일 만큼 자란 큰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어떤 결과물이 아닙니다. 가루를 부풀게 하는 능력과 겨자씨가 싹이 나고 자라게 하는 능력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곧 생명력 즉 하나님의 생명통치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이나 예수님 당시나 교회 시대에도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를 구가 했던 이들은 모두 메시야 스캔들에 빠졌고 거치는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고 한 때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넘어졌었고 교회 역사에서도 넘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 나라 개념은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무의식 가운데 왜곡되고 변질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씀과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에 촉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바른 하나님 나라 개념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게 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토대가 잘못된 개인이나 교회는 상식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차원의 하나님 나라를 구가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정체성을 상실하여 자꾸만 세상과 같아지려고 하게 됩니다. 현대 교회들이 점점 가시적 하나님 나라를 구가는 경향들이 그 증거입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결과물들은 아무리 그 물리적 규모가 대단 하여도 그 자체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능력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물리적 규모에 압도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역행하는 경우는 대형교회에서 현저하게 많이 저질러집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보다 물리적 규모나 권력이나 돈의 위력에 굴종하는 전형적인 세속나라의 모습입니다. 한국 통합 측 교단의 큰 교회가 교단 법을 어기고 세습을 하였는데도 그 총회 재판국이 그 세습을 정당 하다고 판결하자 그 교단 신학교 교수들이 그러한 판결을 한 총회에 대하여 “근조(謹弔) 통합 총회”라고 하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불의와 불법에 저항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곳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지식인들이나 언론들이 바른 말을 하지 않고 왜곡되고 거짓된 정보와 논리로 일관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역하는 행위입니다. 거짓말 하는 세상 언론이나 정치인이나 지식인을 비판 하기가 부끄럽게 온통 교회나 신학교들이 오히려 세상보다 더한 경우가 허다한데 장신교수들의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모습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지 않듯 이곳 미국이나 한국에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드러나지 않는 그루터기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기억해야 하고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 혼란스럽다면 하나님 나라와 반대개념의 집단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 나라 개념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정치체제라기보다는 경제 체제를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하나님 나라 개념을 표방한 경제체제입니다. 따라서 얼핏 보면 그 이상이 하나님 나라와 같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하나님 나라 개념을 도용하고 빙자하여 인위적으로 낙원을 건설하려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오해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생명 통치임을 알지 못하고 제도와 방법으로 오해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나 믿음은 방법론이 아닙니다. 현대 교회들 중에는 복음을 성공과 행복의 방법론으로 변질시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현대 교회 강단의 메시지가 복 받는 비결이나 방법들을 메시지화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생명 통치를 분별하고 따르도록 가르치지 않고 성경을 성공을 위한 매뉴얼 정도로 취급하는 수준의 설교가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른 말로 하면 유신론과 무신론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나 자본주의는 그 바탕이 유신론입니다. 반면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그 바탕이 무신론입니다. 유신론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현실적으로 많은 부조리와 모순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섭리에 대한 믿음과 인정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그 주장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고 이상적일지라도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섭리를 믿지 않는 무신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유신론적 사상이나 무신론적 사상은 모두 장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는 두 진영의 사상이 끊임없이 학문적 논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제가 다르고 지평이 다르기 때문에 두 사상의 학문적 논쟁은 합일점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개념이 바르지 않으면 일반은총의 가치도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해함에 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는,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힘이 미미하고 약하다는 사실입니다. 유약해 보이는 하나님 나라 때문에 실망하거나 실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두 제자가 엘마오로 내려가면서 길에서 만난 낮선 동행과 나눈 대화 중에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실망이 드러나 있습니다.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19-21).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한 실망을 예수님께 이야기 한 것입니다. 눈이 어두워 동행자가 주님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주님을 폄하하였는데, 이 모습이 우리들의 진면모일 수 있습니다. 정치력이나 경제력이나 지력이나 인기 같은 것이 하나님 나라와 함께 한다면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일이 없을 텐데 하나님 나라는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처럼 패배 같기 때문에 그 나라의 백성들까지 실망하곤 합니다. 신학교 교수들이 교계의 영향력 있는 대형교회 목사의 그릇됨을 지적하지 못하고 볼룸이 큰 촌지나 사례에 압도되어 잘못을 저지른 대형교회 목사를 두둔하는 목사들은 그 잘못을 저지른 목사와 공범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바로 노골적으로 주님을 폄하하는 행동입니다. 그런 목회자들에게 돈 많고 영향력 있는 대형교회 목사는 주님보다 튼튼한 동아줄입니다. 교단 안에서나 대사회 활동에서나 목사는 교회 사이즈와 재정 능력만큼 영향력 있는 발언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인데 이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지 않고 미미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왕이신 주님이 오늘날에도 자기 백성들에 의해서 폄하되고 배척당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고 하신 말씀이 현실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상고하여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고 미미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것이 불안하다면 주님의 또 다른 말씀에 귀 기우려야 합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황상하  joseph1952@naver.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황상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