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는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장소: 변화산기도원 본당, 본푸른교회수련회중 시온찬양대 특송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 사이에 두 아들이 태어났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고, 그의 직업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동생 아벨은 양치는 자였다. 두 사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가인은 땅에서 나온 소산물로 예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안 받았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았다.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안 받았고, 아벨의 제사는 받았을까? 그 이유를 성경에서 유추해보면 오늘날 우리들의 예배의 모습을 점검해볼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첫째, 자신의 제사가 거부당한 가인의 행동을 보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창4:5). 가인은 마음이 상해서 하나님께 노골적으로 기분 나빠 했다. 가인의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묻기를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6,7). 가인의 불량스러운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너에게 있다는 것이다.

둘째, 아벨과 가인의 제사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 양중에 아무것이나 드린것이 아니라 구별하여 드렸다. 성경의 저자는 아벨의 제사를 설명할 때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이것은 아벨이 신앙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구별된 마음, 헌신된 마음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농산물중에 아무것이나 하나 드린 것이다. 제물에 정성이 담겨져 있지 않은 것이다. 마음을 드리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안 받았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셨다. 먼저 ‘네 죄부터 다스리라’고 말씀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로 시작해서 예배로 마치는 인생들이다. 가끔씩은 우리의 예배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예배는 외적인 환경도 중요하다. 그러나 성경에서 요구하는 예배는 내적인 준비가 먼저 임을 제시하고 있다. 예배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할것인가?

본푸른교회 수련회 중 기도의 시간.  김기락안수집사님이 90세가 넘으신 어머니 심계순권사님의 손을 꼭잡고 기도하는 모습.

최원영목사, 노년을 믿음으로 천성을 바라보며  준비하시는 심계순 권사님에게 안수기도하다. 본푸른교회 담임. 본헤럴드 대표. 등

(1)마음에 진실함과 정직함이 있는가를 점검하라. 진실한 마음은 예배자 자신의 삶의 태도이다. 하나님이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아니한 것은 가인에게는 진실한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정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속에서 취해야 할 태도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라는 것이다. 정직은 깨끗한 언어와 행동이다. 예배자들은 하나님앞에서 정직한 언어와 행동이 필요하다. 그럴 때 예배를 받으신다.

(2)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하고 있는가? 점검하라. 하나님앞에 나올때에 주님을 무조건 신뢰해야 한다. 무조건 신뢰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는다는 고백이다. 예배자들은 무조건 하나님을 창조자요 구원자요 부활의 주님이시오, 재림의 주님이시오, 심판자이심을 믿어야한다.

누가복음 18장에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나온다. 세리의 기도에서 예배자의 마음을 알게된다. 바리새인은 서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니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아주 당당하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무결점의 예배자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런데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한다.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의 기도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는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구원하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런 고백이 담겨져 있다. 마음의 자세와 태도가 정직하고 진실하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애절하게 가슴을 치며 기도하고 있다. 이것이 예배자의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 있다.

예배자들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당신의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는 성령의 거룩한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라고 고백할 때, 예배를 통해서 무한한 하늘의 은혜를 부어주시고, 새롭게 하시거고, 힘주시고, 응답해주시고, 그의 인생을 높이신다. 이것이 기독인들의 삶의 자세요, 예배자의 태도이다. 예배드리며 분노하지 마라. 주의 일을 하고 분노하며 안색이 변해서는 안 된다. 주의 일을 할 때나 예배할 때 기쁨과 감사와 은혜로 해야 복이 된다.

(3)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가를 점검하라. 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가?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시45:11).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요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다.

(4)예배를 신령과 진정(‘in spirit and truth’)으로 드리고 있는가를 점검하라. 신령은 ‘성령’을 의미한다. 성령님이 예배를 주관할 수 있도록 내어 드려야 한다. 진정이란 ‘진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진리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5)예배는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당신은 예배를 통해서 가치를 창조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예배란 영어로 worship이다. 이 단어는 worth(가치)와 ship(창조)라는 말이 합쳐진 합성어이다. 예배란 곧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예배를 통해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날마다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들과 주일날만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들을 비교해보라. 분명히 차이가 날것이다. 얼굴빛이 달라진다. 눈빛이 생동감에서 차이가 난다. 삶에 열정이 다르다.

예배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대해 드린다는 것은 날마다 내 인생 가운데 가치를 창조하는 거룩한 행동이다.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이다. 그러나 가치가 건강하면 건강한 생각과 건강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가치가 병들면 병든 삶을 살아간다. 예배는 가치를 창조하는 거룩한 행위이다. 예배를 정성스럽게 드리면 영육간에 새 힘을 얻는다. 신앙의 근력이 아주 강건해진다. 왜 신앙의 근력이 약해져갈까? 예배를 대충 드리거나, 무미건조하게 드리거나, 예배를 빼먹으면 신앙의 근력이 아주 쇠약해진다. 그러면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언어의 고백이 병들어버린다.

예배를 받지 않은 하나님을 향해 분노하는 가인에게 하나님은 '네 죄부터 다스리라'  말씀하셨다. 예배에 왜 기름부음이 없는가? 왜 예배에 은혜가 없는가? 우리는 모든 이유를 남에게서 찾을려고 한다. 설교가 빈약하다. 찬양과 악기의 수준이 떨어진다. 교회 예배 환경이 준비가 안되었다. 등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지 못해서 성령님의 임재가 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네 안이 깨끗한가를 점검하라고 하신다. 기획된 화려한 예배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훈련된 예배자들이 거의 없다. 예배는 외적인 요소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인 청소를 먼저 하는 것이다. 내적인 마음의 준비가 더 소중하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적으로 준비된 예배자들을  찾으시고,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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