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 목사가 말하는 좋은 설교, 나쁜 설교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설교는 영적인 작업임에 틀림없으나 커뮤니케이션이 작동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설교자들은 자신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체크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 회중들과 연결이 가능하다. 설교자들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회중들과 협상하고, 여론을 만들고, 성도들을 설득하며, 사역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왜 설교가 어려운가?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이고 어떤 설교가 나쁜 설교인가?

 

전문용어가 즐비한 어려운 설교

전문용어를 사용한다. 전문가들은 자신들만의 용어로 자신의 정보를 전하려 한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전문가 집단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회중들도 만나 복음 메지시를 전달한다. 주님이 사용하신 복음은 전문용어가 아니라 보통 일상용어였다. 설교자들의 착각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이 아는 용어를 회중들도 모두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예전 총회장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헬라어 원어를 자주 사용했다. 어느 책을 인용했는지 모르지만 회중들은 물론 나 역시도 이해하기 힘든 용어여서 전혀 감동이 되지 않았다.

불평불만 가득한 부정적 설교

불만이나 불평을 늘어놓는다. 설교자들이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설교 중에 교회와 교단, 한국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는다. 회중들은 설교 내용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표정과 감정, 그의 매너, 그의 인격을 함께 듣는다. 불평하는 설교자를 성도들은 신뢰하기 어렵다. 오히려 회중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속히 자리를 떠나게 만든다.

영업사원 같은 소울soul 없는 설교

영업사원처럼 말한다. 회중은 상품을 사러온 쇼핑객이 아니다. 설교자들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

목사도 듣고 싶은 설교

언제부터인가 나는 성경책 안에 “내가 듣고 싶은 설교”라는 메모를 적어놓고 설교 전에 읽어본다. “첫째, 하나님 말씀 그대로 듣고 싶다. 둘째, 주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듣고 싶다. 셋째, 온라인이 아닌 설교자의 가슴에서 나온 설교를 듣고 싶다. 넷째, 설교자의 심장에서 나온 설교를 듣고 싶다. 다섯째, 성도들 알고 사랑하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싶다. 여섯째, 설교를 듣고 무언가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하는 설교를 듣고 싶다. 일곱째, 유창한 말이나 혼을 쏙 빼놓는 설교가 아니라 더듬거려도 진실한 설교를 듣고 싶다”. 일곱째가 여기에 해당된다.

주제가 산만한 설교

주제가 산만하다. 자주 경험하는 것인데 많은 설교자들이 너무 많은 주제를 한 시간에 설파하려 노력하는 것을 본다. 설교에도 좀 여백이 있으면 좋겠다. 설교를 통해 떠먹여 주려하지 말고 회중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기회를 주면 좋겠다. 그리고 급하지 않게 한 시간에 한 주제에 집중하면 좋겠다. 여기저기 본문을 옮겨다니지 말고 선택한 본문에 더 깊게 들어가면 좋겠다. 본문에서 벗어난 설교가 아니라 본문안에서 깊은 샘을 파서 맑은 물을 길어올려 청중들이 시원한 샘물을 마시게 하면 좋겠다.

매일 비슷한 설교

늘 설교가 비슷하다. 무슨 설교를 하든지 비슷한 결론, 회중들이 짐작하고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이라면 흥미가 떨어진다. 설교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기 때문이고,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설교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TV에서 개그맨들이 공연하는 것을 보며 놀란다. 그들은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거쳐 연습하고, 발표하고, 자기들끼리 비판하고 무대에 올린다. 그러면서도 반응이 없는 몇 코너는 편집에서 삭제된다. 설교자들도 그들처럼 고민해야 한다. 설교에 집중하자. 그리고 설교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자. 그 설교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성도들을 시원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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