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크라(miqrâ˒,성경낭송), 교회는 성경을 큰 소리로 읽기 위해

 

이대희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Th. M).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 성경학박사과정(D.Litt)을 졸업했다. 예장총회교육자원부 연구원과 서울장신대 교수와 겸임교수(10년)를 역임했다, 학술원 교수 강의와 전국 목회자와 교회교육 세미나와 강의등을 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평생말씀학교인 <예즈덤성경대학>을 20년째 교수하고 있으며 극동방송에서 <알기쉬운 기독교이해><크리스천 가이드> < 크리스천 습관과 인간관계> < 재미있는 성경공부> <전도가 안된다구요>등 성경과 신앙생활 프로그램 담당했으며 동부구치소 재소자 성경공부와 다양한 직장 소그룹 성경공부 사역. 중국목회자 훈련사역과 북한선교 지도자 훈련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현장 사역 경험(소형.중형.대형교회,개척과 담임목회)과 연구를 토대로 200여권의 이야기대화식 성경교재와 다양한 실천 프로그램을 제시한 50여권의 저서( “유대인 밥상머리 자녀교육법” ( 2016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올해의 책 선정). “한국인을 위한 유대인공부법” (대만번역 출간)가 있다. 현재 꿈을주는교회 담임목사. 예즈덤성경하브루타 연구소장. 미국 Kernel niversity Korea Campus 국제 객원교수.

 

성경의 이름은 맨 처음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성경을 The Bible (그 책) 이라고 부른다. 책중에 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은 “최고의 책”과 “거룩한 책”이라는 의미 이상 다른 뜻이 없다. 유대인은 성경을 구약성경으로 한정지어서 말한다, “타나크” 라고 부른다. 토라(모세오경)-느비임(예언서)-케투빔(성문서)은 구약성경의 구조다. 이것의 첫 글자를 이어서 읽으면 타나크가 된다.

초기 이스라엘 사람은 성경을 ‘타나크’가 아닌 ‘미크라’라고 불렀다. 성경은 보는 책이 아닌 읽는 책이며 선포하는 책이다. 이것이 곧 미크라이다. 공동체가 모여서 말씀을 함께 읽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미크라”는 “읽다, 선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성경은 읽는 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을 읽는 것은 큰 소리로 운율과 감정을 넣어 읽는 것을 말한다. 계속 이렇게 읽다 보면 암송까지 된다. 낭독은 글을 그대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이라면 낭송은 온 몸을 움직이며 큰 소리를 내어 리듬을 타고 운율에 따라 읽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초대교회 예배의 중요한 이유는 성경읽기였다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한다는 온몸의 표현이다. 입으로만 읽는 것이 아닌 오감과 모든 몸을 다하여 전인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나의 몸이 되고 삶이 된다. 매주일 온교인이 모여 성경을 낭송한다고 생각하며 모습을 상상만 해도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유대인은 지금도 회당에서 성경을 읽는 낭송의 모습은 몸을 흔들고 운율을 맞추어 리듬을 타고 소리 내어 읽는 방식을 자손대대로 전수하고 있다.

성경 안에는 미크라의 단어가 많다. 성경에서 미크라는 공공모임에서 말씀을 다시 듣는 리허설을 의미한다. 미크라는 “회의, 소집, 소집, 독서”를 뜻을 담고 있다. ‘미크라(miqra)’의 단어는 ‘카라(qara)’ <외침, 읽기, 암송>에서 유래했다. 성경에서 미크라는 거룩한 집회 ‘모에드(moed)’인 안식일과 절기의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거룩한 모임은 성경을 읽기 위해서 모였다.

말씀이 중심된 모임이 곧 교회다. 말씀이 없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크리스천의 모임도 말씀이 없다면 아무리 거대한 모임일지라도 의미가 없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에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모에드) 주의 말씀을 다시 읽고(미크라) 듣기(쉐마) 위해서 모이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모이는 것이다.

예배 모임에서 행하는 설교의 역할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 이미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설교는 말씀을 재생과 재현하는 일이다. 이것은 신명기와 선지서가 동일하게 말하는 핵심의 주제다. 주신 말씀을 기억하라는 말씀이 반복하여 나온다. 세상모임은 사람과 교제하기 위해 모인다. 하지만 교회는 거룩한 말씀을 읽고 들으러 모인다. 구약의 절기와 성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한 모임이었다[민수기 10:10(소집), 느헤미야 8:8 (독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신4:10, 5:15.16:12, 출애굽기 12:42]. 구약의 절기 마지막 날에 거룩한 성회로 모였는데 그날은 특별히 말씀을 읽는 날이다.[ 민수기 29:35, 역대하 7:9, 느헤미야 8:18]

신약에서도 교회는 안식일에 성경을 읽으려고 회당에 모였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는 모습과(눅 4:16) 바울이 회당과 기도처에서 성경을 읽는 모습은 구약의 모습이 신약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행13:14-15, 42, 44, 15:21 , 16:13, 17:1-2, 17:17] 요한이 일곱 교회에 보낸 요한계시록을 보아도 이것은 동일하다. 성경은 모여서 읽는 자 - 듣는 자 -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강조한다(계1:3) 교회에 모임의 목표는 말씀을 읽는 것이다.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 한다.

성경은 보는 책이 아닌 읽는 책이며 선포하는 책이다. 공동체가 모여서 말씀을 함께 읽을 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말씀을 읽는 것은 직접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순간이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역사한다. 그때 읽는 성경말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직접 선포되는 시간이다. 성경읽기는 온성도가 큰소리로 읊조리며 낭송하는 것(시편1편)을 의미한다. 모두 함께 소리를 내어 낭송할 때 말씀이 그대로 선포되는 효과가 있다. 주일이 성도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낭송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말씀의 선포하는 성경낭송은 그동안 우리교회가 잃었던 교회의 모습이다.

어떤 때는 성경낭송은 오히려 설교 보다 더 강력한 말씀의 시간이다. 말씀을 온성도가 함께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은 말씀이 선포될 뿐 아니라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치유와 행동과 창조가 동시에 일어나는 시간이다. 그런 이유로 성경읽기는 초대교회에 예배의 중심의 시간이었다. 예배시간에 성경낭송이 모일 때마다 이루어졌다. 그런데 중세시대 교회에서 사라졌다. 성경이 평신도에게 없는 이유로 성경읽기가 활성화 되지 못하고 대신 신부의 강론(설교)과 미사가 주를 이루었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가장 중요한 성경읽기가 예배 중에 사라진 것이다. 그 순간부터 교회는 병들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성경은 함께 모여 읽는 책이다. 성경은 단순히 책이 아니다. 성경은 명사가 아닌 움직이는 동사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인다. 그러다 보니 말씀읽기가 예배 중에 사라졌다. 예배는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재현하는 리허설 시간이다. 성경 읽기가 주일예배의 핵심이 될 때 하나님이 주인이 된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예배는 성경읽기인 미크라를 회복하는데서 시작된다. 필자가 유대인 회당을 방문해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다. 2시간가량 예배가 진행되었는데 예배시간 대부분이 기도와 성경읽기였다. 2/3가 성경을 읽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지루해 하지 않은 것을 보고 우리 예배와 사뭇 달랐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종교개혁은 ‘미크라’부터 출발하면 어떨까? 우리의 예배가 설교 없이 성경읽기는 가능하지만 성경읽기 없는 설교는 의미가 없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에 성경낭송이 예배 중에 회복해야 하는 이유이다.

 

어릴 때 부터 말씀을 부모와 같이 읽고 낭송하는 것이 참 성경 교육이다

 

*나의 리뉴얼/

<모임에서 성경읽기 방법>

-예배순서에 성경읽기를 포함시키자.

-성경을 순서대로 아니면 책별로 정하여 한번에 2-3장씩 읽는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을 소리 내어 읽는다.

-몸을 움직이면서 말씀을 읊조리면서 읽는다.

-몸을 움직이면서 온몸으로 성경을 읽는다.

-성경을 읽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말씀이 선포됨을 경험할 수 있다.

-말씀을 읽는 중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창조의 영이 함께 함을 믿으라.

-말씀을 함께 읽으면 말씀 안에서 교회가 서로 하나 됨을 느낄수 있다.

-성경읽기는 함께 하다 보면 성경을 읽어야 겠다는 마음가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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