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황상하의 신학덕담

“Operation Mockingbird”, 일명“앵무새 작전”은 1950년대 미국 CIA의 허위정보 퍼뜨리기 작전입니다. 그 목적은 대중을 속이기 위함입니다. CIA가 돈이나 기타 대가를 지불하고 저널리스트들을 포섭해 가짜 뉴스를 전하게 하여 국민을 선동하여 현혹시키는 작전입니다. 이 작전은 냉전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CIA의 유리한 견해만을 세상에 전하게 하는 극비로 고안된 계획이었습니다. 이 앵무새 작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워싱턴포스트에서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담당했던 칼 번스타인 기자가 CIA와 미디어 관계를 집중 취재하면서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1952~1977까지 25년간 400여 명의 저널리스트가 CIA 앵무새 작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이들 중 일부는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어떤 이들은 협박과 강압에 의해서 뉴스를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CIA 국장 앨런 덜레스가 직접 작전에 관여했으니 그것을 거절할 기자는 없었을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ABC, CBS, AP, 로이터 통신 등 주요 25개 일간지와 통신사 언론인들이 포섭된 것으로 드러났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전 회장 캐서린 그레이엄의 전기 작가인 데보라 데이비스는 1970년대에 앵무새 작전이 한창 시행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CIA는 1967년에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란 용어도 만들었습니다. 미국 국민이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조사한 워런위원회 보고서를 불신하자 오스왈드 단독 암살 외 모든 주장을 “음모론”이라는 단어로 잠재웠습니다. 그러다가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연방의회에서 CIA의 감청행위를 문제 삼았고 결국 1976년 2월에 당시 CIA 국장이던 조지 H. W. 부시가 “CIA는 앞으로 언론인들과 그 어떤 계약적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앵무새 작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과연 앵무새 작전은 사라진 것인지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의 주류 언론들과 100개도 넘는 신문들이 트럼프를 향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나라를 말아먹는 매국적 행위를 하고 있다면 언론은 당연히 대통령을 비판하고 공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경제나 국방이나 외교에서 미국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오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런 정책이 정당하냐 또는 성경적 가치관에 부합하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만 미국의 저널들이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대통령을 떼를 지어 공격하는 것은 또 다른 앵무새 작전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어떤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도 트럼프를 공격하기만 하면 영웅이 되고 있습니다. 근거가 없고 사실이 아니더라도 트럼프를 욕하기만 하면 영웅이 되는 판입니다. 트럼프 진영에서 일하다가 해고당하는 이들이나 트럼프를 싫어하는 이들이 책을 내기만 하면 언론들은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오마로사 매니 골트 뉴먼은 트럼프 취임 직후 백악관에 입성한 유일한 흑인 참모였으나 해고되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12월 사임한 뒤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저서 “제 정신이 아닌(Unhinged)”을 내면서 트럼프가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고 폭로하자 거의 모든 언론들이 그의 이야기를 대서특필하면서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습니다. 트럼프는 역시 걸쭉한 입담으로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을 “개(dog)”라고 비난했습니다.

트럼프가 비호감을 사는 것은 거의 그의 세련되지 못한 말 때문이지 미국의 국익을 해치기 때문이 아닙니다. 트럼프가 오바마 같은 신사(?)였다면 굶주린 들개 같은 언론들을 상대로 싸워서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어도 지금쯤 탄핵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트럼프의 거친 언어와 저돌적 행동은 대통령으로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야비한 언론과 이기적인 정치인들을 상대하여 생존하는 방법으로는 제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개신교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그런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 신앙이 좋고 기독교 가치관이 투철하여서가 아니라 하이에나 같은 정치인이나 언론들과 싸우려면 트럼프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는 언론이나 정치인은 미국과 별로 다른 것이 없지만 대통령은 미국과 아주 반대인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대통령의 정책들은 비전문가가 보아도 매우 염려스러운 것들이 많습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반원전정책,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 정치보복적 적폐청산, 4대강사업 재앙론, 천편일률적인 코드인사, 재벌규제 정책, 보편복지, 개방적 이민정책, 다문화 수용 등은 그 부정적 결과들이 드러나고 있고 이미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를 경험한 것들입니다. 게다가 환경을 모르는 환경운동가들과 공갈 방송들과 허약한 지식인들이 온통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속인다기 보다는 어쩌면 그것이 수준이고 한계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준이 아니라면 악하다고 해야 하는데..., 이들에게 나름대로의 진정성이 있고 확신과 열정도 있으니 수준으로 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수준이 곧 국민의 수준이라고 봐야 분노를 분산시켜 분노하는 자신을 어느 정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과 인간은 무지하고 거짓되다는 사실을 성경이 잘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면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나의 무지와 교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씨 에스 루이스 같은 분도 거짓과 불의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문제를 이야기 했으니 분노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정당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하다 지쳐서 냉소적이 될까 염려가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도 아니고 출처가 불분명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평생 마음에 새길만한 글귀를 새겨 넣은 반지 하나를 갖고 싶어 세공사에게 명령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고, 절망에 빠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나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세공사는 반지는 만들었으나 왕의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을 잘못 새겨 넣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아 걱정을 하다가 왕자인 솔로몬에게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솔로몬이 반지에 새겨 넣을 문구를 알려주었습니다. 그 문장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니.”였습니다. This too shall pass. 어려운 일을 만나서 걱정할 때 어머니께서 나에게 늘 해 주시던 말씀 “이것도 곧 지나가니라.”(사투리)와 같은 뜻입니다. 동일한 표현은 없지만 솔로몬의 전도서는 “이 또한 지나가리니.”라고 하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국의 시인이며 찬송가 작사가인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 1856-1939)는 이 문장을 주제로 시를 썼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This Too Shall Pass)

                       -랜터 윌슨 스미스/ 홍지수 역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강물처럼 밀려와/ 

평화로운 삶을 덮치고 

가장 소중한 것들을 눈앞에서 휩쓸어가 버릴 때 

시련을 겪는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되뇌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끝 모를 고된 삶이 그대 입술에서

기쁨의 노래를 앗아가고 

너무 지쳐 기도할 기력조차 없을 때/ 

마음에서 슬픔을 떨어내고 

날마다 짊어질 짐의 무게를 덜어주는

진실이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행운이 그대에게 미소 짓고 

환희와 기쁨이 충만한 나날들이

순식간에 흘러갈 때 

그대가 세속적인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도록 

이 몇 마디를 가슴에 깊이 새기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성실히 노력해 명성을 얻고 영광을 누리게 되고 

세상의 모든 귀인들이 그대에게 미소 지을 때 

천수를 누린 위인의 삶도 

영겁을 숨쉬어온 지구에 비하면 

찰나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니.”

 

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예상하지 못했던 불행이나 행운을 만날 때 과도하게 그 일에 빠지지 말라는 교훈으로 중국고사에는 새옹지마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인의 역사나 한 나라의 역사도 새옹지마이고 “이 또한 지나가리니.”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에도 지혜로웠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왕이 된 다음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잘 될 때 교만하지 않고 실패할 때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잠언이라고 해야 할지, 정반대의 두 가지 상황을 직관적으로 잘 조합한 명언입니다. 주권자의 허물과 언론의 악의와 지식인의 허약함과 나 자신을 포함한 백성의 무지와 무능으로 인해 좌절 될 때 “이 또한 지나가리니.”의 교훈으로 가득한 전도서를 읽는 것도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내가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해지는 일을 보았는데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전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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