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서사시(敍事詩)요 서정시(抒情詩), 아리랑

한명철 목사는 말씀 연구와 기도에 매진해 온 목회자이다.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조지팍스신학대학원(George Fox Evangelical Seminary)과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JSTB)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 은혜와평강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한명철 목사는 말씀이 어떻게 삶속에서 역사하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래서 그의 책은 오로지 성경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그의 글은 읽는 이의 삶을 헤집는다. 그는 책은 성경을 깊이 이해하는데 혜안을 던져주고 있다. 대표적인 책은 《강한 용사》 《살아난다 성경암송》 《창조적 사고를 키우는 자기학습법》 (두란노), 《붕괴의 신호음이 들릴 때》 (쿰란출판사), 《고백》《전쟁》《소통》《부흥》《대언》 (본출판사) 등이 있으며, 약 30여권 이상을 출판하였고, 책과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국민의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는 애국가, 아리랑

국가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노래다. 조국의 노래는 애국가다. 19세기 말부터 다양한 애국가들이 당시의 신문에 소개되면서 여러 곡조로 불렸고 20세기 초엽에 대한제국의 법률로 공포된 것이 최초라 할 수 있다. 일제의 병탄으로 인해 상하고 찢긴 대한제국에서 시작된 애국가는 나라 사랑과 민족의식을 고취할 목적에서 만들어졌고 여러 손길을 통해 다듬어져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애국가 작사자에 대한 격론과 작곡가와 작사자의 친일 행적에 관한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사에 담겨진 뜻이다. 애국가와 연관된 일부의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로 제정된 이상 애국가는 국민 모두의 노래여야 한다. 특히 세계무대에서 정상을 차지하여 태극기를 배경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가슴 뭉클함을 느끼는 것은 우리 각자가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뚜렷한 증거다.

남과 북의 한 노래, 아리랑

통일이 되면 국기도 통일해야 하겠지만 국가(國歌)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어정쩡한 한반도기가 게양될 때마다 남북 화합의 상징보다는 분단의 아픔이 더 짙게 느껴진다. 남북은 국기도 다르듯 국가도 또한 다르다. 통일이 되면 통일 한국의 국가가 두 애국가 중의 하나가 될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노래가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한국의 대표적 민요인 아리랑을 통일 국가의 국가로 지정해야 한다는 섣부른 주장이 대두되고 있으나 두고 볼 일이다. 사실 통일 시대의 애국가가 전 국민적 합의로 채택되기 전까지 부를 민족의 노래를 선정하라면 사실 아리랑만한 것도 없다.

남북 단일팀으로 대회에 나갈 때 양쪽 국가를 부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리랑이 불린 적이 여러 번 있다. 이번 자카르타 팔렘방에서 치러진 아시안게임에서는 카누 용선 200m 결선에서 남북한 단일팀이 동메달을 획득하자 선수들과 임원진이 시상대에서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튿날 열린 500m 결선에서는 중국을 꺾고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하자 애국가 대신 울려 퍼진 아리랑을 함께 부르며 남북의 선수들은 감격에 겨워했다. 한민족 된 어우러짐이 일궈낸 쾌거였기에 선수들이나 이를 시청하는 국민들의 울컥함도 더 컸다.

민중의 서사시(敍事詩)요 서정시(抒情詩), 아리랑

아리랑은 애국가만큼 민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노래다. 한이 풀어지고 원이 이루어지는 그날에 신명나게 장단 맞추어 온 겨레가 함께 합창할 노래 아리랑은 지금까지도 이 민족의 숨결이 되어 이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해왔다. 민족의 혼이 깃들어 있고 얼이 담겨 있는 아리랑은 우리들의 삶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 지역마다 아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거의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전승, 유포되어왔다. 그런 만큼 아리랑의 기원과 어원에 관해서는 설이 상당히 많다.

아리랑은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민요로서 각각 2012년과 2014년, 한국과 북한에 의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지역별로 종류도 다양하며 다채롭게 편곡되어 불리거나 연주되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아리랑을 누군가 선창하면 다 같이 따라 부를 정도로 아리랑은 한국인 모두에게 매우 익숙한 선율이다. 일제 강점기의 간고한 세월을 견뎌야 했던 나약한 민중은 아리랑 가락에 민족의 한을 실어 흥얼거리면서 모진 풍파를 헤쳐 나갔다. 눈물로 얼룩진 통한의 시간이었지만 아리랑에 실린 민족의 혼과 넋은 아무 구김살 없이 바람에 실려 창공에 흩어졌다.

민요 아리랑은 여러 경로를 통해 대중들의 삶속에 파고들었다. 구전으로, 음반으로, 가요와 창이나 민요로 폭 넓게 불렸다. 1926년 최초의 한국 장편 영화 <아리랑>이 나운규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는 주제가로 불렸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여러 재즈 가수들에 의해서도 불렸다. 1964년에는 미국 포크 음악의 대부였던 피터 시거(Peter Seeger)가 낸 반전 앨범에 아리랑을 수록했다.

소설 <아리랑>은 독립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인데 님 웨일즈(Nym Wales)라는 필명으로 칼럼니스트 포스터(Helen F. Snow)가 <아리랑의 노래>(Song of Ariran)를 출간했고 2005년 <아리랑>이란 제목으로 개정 3판이 시중에 소개되었다. 리영희 교수의 추천사에 묘사된 대로 김산(장지락)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아리랑의 기운이 되어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던 많은 지식인들과 대중에게 좌절과 혼돈의 시대를 신념과 희망으로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천만 부 판매의 기록을 세운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수난과 투쟁으로 얼룩진 민족사를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그려냈다.

수많은 사연, 수많은 해석의 아리랑

아리랑의 어원에 대해서는 30종 가까운 설이 있으나 정설은 없다. ‘밝은’(光)의 고어인 ‘아리’와 고개를 뜻하는 ‘령’(嶺)이 합쳐졌다는 양주동의 아리령설, 고대 낙랑에서 남하하던 교통의 관문인 자비령의 이름 “아라”에서 유래했다는 이병도의 낙랑설(樂浪說),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비 ‘알영’을 찬미한 노래가 아리랑으로 변했다는 김지연의 알영설(閼英說), 고향을 뜻하는 ‘아린’에서 유래되었다는 이규태의 아린설, 밀양 아리랑에서 전설의 주인공 ‘아랑’을 애도한 노래에서 유래했다는 김재숙의 아랑설(阿娘說) 등이 있다.

경복궁 중수와 관련된 것만도 셋이 된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기 위해 부역꾼들을 소집했을 때 고향을 떠나면서 그들이 외쳤던 ‘나는 님과 이별한다’는 뜻인 김덕장의 아리랑설(我離娘說), 경복궁 중수 때 원납전 내라는 소리를 듣기 싫다는 뜻으로 부른 ‘아이롱’에서 나왔다는 남도선의 아이롱설(我耳聾), 경복궁 노역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내가 공사장을 떠나기 어렵구나!’며 탄식조로 읊은 것이 아리랑으로 발전했다는 김대호의 아난리(我難離)설, 그 외에도 “일제의 착취에 맞서지 말고 못 본 척하라”는 권상노의 아이롱(啞而聾)설, “참 나를 깨닫는 기쁨”(我理朗), “하늘나라 님 곧 하나님”(亞里郞), “하나님과 함께”(알이랑) 등이다.

수필가 윤오영은 수필 <민요 아리랑>에서 ‘긴 강’((長江)을 뜻하는 아리수(阿利水)에서처럼 ‘길다’(長)의 뜻을 지닌 ‘아리’와 고개 령(嶺)이 합쳐진 변음으로서 “긴 고개”를 뜻한다고 보았다. 혹은 ‘아리따운’에서처럼 ‘고운’ 또는 ‘아름다운’의 뜻을 지녀 ‘고운 님’, ‘아름다운 님’이라는 해석과 함께 ‘마음이 아리다’에서처럼 ‘사무치게 그리운 님’이라는 해석도 있다. 혹자는 아리의 흔적을 미국의 아리조나 주와 연관시키기도 했는데 이런 억측과 주장들은 견강부회(牽强附會)로서 이러다가는 일본어 아리가또에서도 아리랑의 흔적을 찾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리랑

시대의 고뇌를 외면하거나 역사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면 지도자가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는 특유의 향취란 것이 있다. 한민족만이 지닌 향취는 한과 흥이 어우러진 것이 마치 떫고 단 맛의 솔잎과 같다. 한은 풀어야 하고 흥은 돋우어야 한다. 아리랑에는 한과 흥이 한 몸처럼 엉겨 붙어 있다. 아리랑은 독창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리랑은 합창일 때 깊은 맛이 우러난다. 한 서린 눈물이 눈가에 맺히고 흥겨운 웅얼거림은 입가에 맴돈다.

한국 최고의 민요답게 아리랑에 얽힌 이야기는 많고 그 뜻 또한 다양하다. 2011년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유명 작곡가들로 이루어진 심사단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지지율 82%의 <아리랑>을 1위에 선정했다. 1990년에 발간된 화란 개혁교회 전통의 북장로교회(CRC 또는 CRCNA)의 시편 찬송가집에는 <Christ, You are the Fullness>란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아리랑 민족이요 그리스도인답게 한은 기도로, 흥은 찬송으로 풀자!

통일 시대를 대비한 새 시대 새 노래, 아리랑

통일을 간절히 기대하는 현실 앞에서 남과 북이 어우러져 부를 한민족의 국가는 무엇인가? 우리가 함께 부를 노래는 없을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의례적인 화답송 말고 세계인의 가슴을 휘저을 만한 그런 노래는 없을까? 한(限)도 원(願)도 노랫가락에 실어 신명나게 소리했던 우리 민족이, 하나님 찬양에 익숙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불어 부를 노래 한 마디가 없을까? 싱가포르 회담 이후에 우리 한민족이 함께 부를 노래(Sing Along)는 과연 무엇일까? ‘애국가’도, ‘아침은 빛나라’(북한 애국가의 별칭)도 아닌 한 민족의 노래는 아리랑(Sing Arirang)일까? Singapore 이후에 우리가 부를 노래가 Sing Arirang이라면 못 부를 이유도 없다. 허나 모를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부를 노래가 전무할지도 모른다.

노래방 문화가 세계를 석권한 이 민족은 개인마다 소위 애창곡 18번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애창곡은 과연 무엇인가? 세계 교회에 선보일 조국교회의 애창곡은 무엇인가? 그 노래가 있기 전에 대안으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한국의 대표적 민요며 미국 찬송가에도 수록된 아리랑도 가능하리라. 조국찬가 또는 통일 찬송가 303장 “가슴마다 파도 친다”를 개사하여 겨레의 노래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88올림픽 때 그룹 코리아나가 선창하고 온 국민이 함께 따라 부르던 그 노래! “.......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 잡고.......”라는 후렴구에서 모두의 마음이 뭉클하지 않았던가! 88올림픽 공식 주제가 이후로 이 민족이 함께 부를 주제곡이 여태 없다.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아리랑처럼 우리의 먼 후손들이 부를 노랫말 하나 정도는 이 시점에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통일 시대를 대비하여 남과 북이 스스럼없이 부를 만한 나라의 노래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작은 소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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