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란 무엇인가/고경태 저/우리시대/정현욱 크리스찬 북뉴스 편집위원

기독교란 무엇일까? 기독교(基督敎)라는 단어의 정의와 해설을 넘어 기독교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코 짧지 않다. 그럼에도 기독교 정의하기는 중단되지 않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연 우리에게 기독교란 무엇일까? 이 책은 보수적 관점에서 ‘기독교란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정리해주고 있다. 

모두 14개의 짤막한 단상으로 기록된 것이지만, 조직신학의 기본적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1-3장까지는 보편적 종교의 문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다룬다. 4장부터 14장까지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질문들을 해석해 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저자는 ‘들어가면서’에서 기독교를 역사적으로 개관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기독교를 ‘정통’으로 설정하고, ‘그리스도의 종교’이며,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것을 기독교의 전제로 본다(14쪽). 1장에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20쪽)로 이야기한다.

기독교는 초월의 종교이다. 인간의 합리성과 노력으로 알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저자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2장에서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인간의 ‘불안’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보고, 기독교를 하나님의 선물로 선언한다. 3장에서도 과학을 ‘실험과 증명’을 통해 ‘동일한 결과를 도출’(29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비해 기독교는 ‘믿음으로 진리를 증명하는 체계’(31쪽)로 소개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저자가 근대의 합리적 정신에 의해 신학을 ‘믿음에 의한 진리를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합리적 타당성을 갖는다.

근대를 만든 것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철학뿐 아니라 물화된 소명인 기독교의 세속화에 있기 때문이다. 루터와 칼빈은 형이상학적 영역에 속한 소명을 시공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사역’으로 보았다. 기독교는 수도원에 숨어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관계 속에서 드러나야 한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내려왔고, 칼빈은 직업을 ‘소명’으로 치환시켰다. 이것은 정확하게 기독교의 세속화 현상이다. 세속화는 이분법적 분리의 개념을 벗어나 통합적 관점으로 성속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건전한 세속화는 몸과 영을 분리한 헬라 철학의 사조를 따르지 않고 영육을 일체로 본 히브리적 관점을 따른다. 수도원 개혁과 교회 개혁은 언제나 사실과 현실이라는 진보적 관점을 가진 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소명은 ‘긴장’을 불가피하게 전제한다. 먼저는 마지막 종말에 대한 선언, 즉 이 땅이 심판을 받아 멸망 받는다는 거대담론을 가진다. 그렇지만 동시에 타락한 세상을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 변화 시켜야 하는 소명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는 정확하게 모순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초월적 하나님을 요구할 수밖에 없으며, 토착화와 변혁자의 긴장 사이에서 모순적 신앙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뛰어넘기 위해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36쪽). 이해할 수 없는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다시 ‘복음은 오직 성령으로 이해되고,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36쪽).

초월적 종교인 기독교가 사람들의 이성을 정복하는 방법은 ‘성령’에 의해서다. 안타깝게 저자는 기독교의 구속 사역에 기독교의 방점을 찍지만 중생과 성령의 사역, 성화를 주도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는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자기를 믿는 인간의 육체에 성령을 부어주셨’(48쪽)다는 것과 성화를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82쪽)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성령의 사역은 미미하며,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은 것은 의외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 받은 느낌은 ‘너무 얇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정의함에 있어 이렇게 협소한 지면에 충분한 정의가 가능할까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저자의 명료한 글쓰기는 ‘충분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풍성한 답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부족함을 떨쳐낼 수 없을 것 같다. 또 하나의 생각은 ‘이 책의 목적은 무엇일까?’였다. 책 제목이 충분히 저자의 의도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부족하다. 즉 이 책은 좀 더 확장될 필요가 있는 책이며, 현재보다 4배의 분량으로 채워져도 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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