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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최원영 칼럼] 어리석도다 갈라디아인들아!믿으면 의로워진다. 얼마나 명확한 복음인가? 이 복음에는 어떤 첨가물도 용납하지 않는다.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
변화산기도원-기도굴 올라가는 길, 비온 뒤 자연은 살아 숨쉬고 있다. 얼마나 깨끗하고 청명한가? 회개한 후 정결한 백성들의 모습도 이처럼 아름답게 느껴질것이다.

1)갈라디아서 이모저모

(1)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지역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일찍 쓰여 진 첫 번째 신약성경이다.

(2)바울사도가 갈라디아서를 쓰게 된 동기는 교회 성도들을 미혹했던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을 반박하고자 썼다. 할례파 율법주의자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전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진짜가 아니다. 바울은 12사도도 아니고, 12제자도 아니다. 예루살렘에서 교육 받은 적도 없다. 바울이 전하는 값싼 복음을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할례파 유대인들은 구원의 기본은 먼저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전했다. 할례파 유대인들로 인해 교회가 큰 시험에 빠지게 되었다. 이것을 바로 잡고자 쓴 서신이다.

(3)갈라디아서 주제는 이신득의이다. 믿으면 의로워진다. 얼마나 명확한 복음인가? 이 복음에는 어떤 첨가물도 용납하지 않는다. 바울은 다른 복음은 없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강력하게 선포했다.

(4)할례파 유대인들이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한다(1,2장).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며, 나는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고, 또한 하나님이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고 주장하고 있다.

(5)성령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은 믿음안에서 자유를 누려야함을 권면하고 있다. 그 자유를 육체의 일을 도모하는데 사용하지 말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일에 사용하라(갈5,6장).

바울이 왜 이런 말씀을 썼는가? 갈라디아서를 쓴 또 다른 목적은 율법폐기론자들의 그릇된 신앙관을 바로 잡기 위해서이다.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까? 우리는 율법과 상관없이 살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학을 가지게 되었다.  복음이 준 엄청난 자유를 방탕의 삶으로 살았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기쁨과 자유를, 방탕의 삶으로 살지 말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라고 권고하고 있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변화산기도원공동원장(춘천) 등

2) 본문이해

(1)갈라디아서 3장 1절에 이렇게 시작한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바울은 바르게 복음을 가르쳤다. 그런데,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율법으로 돌아섰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질문을 던진다. 할례파 유대인들이 유혹했다. 바울의 가르침은 값싼 복음이다. 믿음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꾀었다. 그 결과 갈라디아 교회들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2)교회역사에 이단은 늘 존재했다. 교회는 이단으로부터 교회의 진리를 방어하고, 거짓선지자들로부터 교회가 오염되지 않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오늘날도 이단이나 거짓 사역자들로 인해서 성도들은 미혹을 받는다. 내 말이 진리야. 기존 교회는 생명이 없어. 내가 바로 예수야, 종말의 날짜가 정해 졌어 등 다양한 형태로 성도들을 미혹한다. 그 유혹에 꾀임에 넘어가서 인생과 가정과 삶을 파괴당하는 경우가 많다.

(3)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묻는다. 너희들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받았느냐? 아니면 듣고 믿음으로 받았느냐(갈3:2)라고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신앙의 현주소를 직시해보는 소박한 습관들이 필요하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내가 어떻게 주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뒤돌아볼때, 우리는 주님과의 간격이 멀어지지 않느다.

(4)갈라디아인들에게 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이제 와서 육체로 끝을 맺으려 하느냐?,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갈3:4, 표준새번역).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을 볼 수가 있다. 우리는 늘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는 거룩한 여유가 필요하다. 혹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육체로 전락해버린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 혹시 사명포기, 믿음포기, 예배생활포기, 봉사생활포기, 말씀과 기도생활 포기를 하고 있는지. 악마의 유혹앞에 늘 넘어지고 방탕으로 삶을 나락으로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5)이 말씀은 하나님의 힘이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고 살다가 왜 지금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이 육체로 마치는 것이다.

(6)그러면 의인의 기준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어떻게 의인이라 인정받았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인이라 인정을 받았다. 악인과 의인의 기준은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가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7)창15장 여호와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셨다. 그리고 아브람을 향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주셨다.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절). 그리고, 네 몸에서 난 네 상속자를 주겠다고 약속했고, 네 자손을 하늘의 뭇별처럼 번성하게 하겠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었다.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인으로 인정했다(창15:6).

(8)아브람은 하나님의 청사진을 믿었다.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은 아브람을 의인으로 인정했다. 의인의 조건은 믿는 것이다. 나를 향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계획을 믿는 것이다. 죄인과 의인의 차이는 간단하다. 죄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다. 의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주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9)믿음의 자녀는 모두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다(갈3:7,8). 믿음있는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동일한 복을 누린다(9절).

(10)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왜 다 저주 아래 있다고 하는가?(10절).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율법이 저주인가? 율법을 다 지키면 의인이 되는데,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을 통해서 의인되지 못한다(11절).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 죄로 인해 율법의 저주로 죽을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다.

▪그러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것이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 율법의 모든 조항들을 모두 지킬 수 없다.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해결해주셨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곧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 우리가 왜 복의 자녀인가?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상속자이기에 하늘의 복을 주신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부요한자가 되었는가? 믿음으로 상속자가 되었으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말고 경건하고 바르게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최원영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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