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우상숭배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섬기는 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즉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숭배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우상숭배입니다. 성경에 나타난(특히 구약 성경에) 우상숭배는 대부분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도 섬기면서 다른 우상도 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우상숭배에 대해서 책망하실 때에도 이스라엘에는 여전히 성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도 있었고 성전에서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다른 신도 동시에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알과 아스다롯(아세라)을 섬기는 행위입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우상으로 바알과 아스다롯이 등장합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그들을 구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행위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우상숭배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근본적인 죄악 중의 하나인 탐심 때문입니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새겨서 절하고 복을 비는 것도 우상숭배이지만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욕심,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욕심을 따라 사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물질, 권력, 자식, 도를 넘는 집착(물건이나 일 등) 등도 이에 속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형태의 우상숭배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에도 동일한 형태의 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상숭배라는 말이 의미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숭배라는 말이 의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우상숭배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우상숭배가 이루어진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주마다 모여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순종하며 사는 것 보다는 물질이 더 중요해지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물질에 더 매여 산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은혜로운 것 같고 수많은 주의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이야기 하고 교회를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보다 물질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며 사람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항변하지만 하나님은 제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빠져있는 함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실제로는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