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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도】인봉한 책을 펼친 그리스도(29) 우상숭배자와 주를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자의 결과
  • 김수경목사
  • 승인 2018.09.09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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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1:2-7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좇지 아니한 자와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찌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 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요시아 왕 시대에 왕족 출신이며 선지자인 스바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의 심판을 선포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먼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실 것인데, 구체적으로 사람과 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진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유다의 왕들 중에 종교개혁을 단행한 대표적인 왕으로는 히스기야와 요시야를 들 수 있다. 요시야 왕은 성전을 보수하며 정결작업을 했다. 그는 산당과 바알제단을 헐고 태양상과 아세라 목상들과 모든 우상들을 없애며 부어만든 우상은 빻아서 바알을 섬기던 제사장들의 무덤 위에 뿌렸다. 그뿐 아니라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바알에게 제사하던 제단 위에서 바알의 제사장들의 시체를 불살라 그곳을 정결케 하였다. 이는 여로보암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예언한 것이 성취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단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으로 외쳐 가로되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 이름하는 아들을 낳으리니 저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 제사장을 네 위에 제사할 것이요 또 사람의 뼈를 네 위에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왕상 13:2)

고대 이교도들은 죽은 영혼들이 안식하지 못하도록 죽은 사람의 시체를 불사른 뒤 그 뼈를 갈아 가루로 만들어서 뿌렸다. 이는 그 대상이 매우 경멸받을 대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죽은 시체를 또 불에 태워서 그 뼈를 가루로 만드는 행위를 하나님께서는 매우 분노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모압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음이라"(암 2:1)

이처럼 죽은 시체를 또 불에 태워서 두번 죽이는 장례는 불교의 장례법이다. 불교가 나오게 된 힌두교 역시 화장을 한다. 인도에서는 화장을 한 뒤 뼈 가루를 갠지스 강에 뿌린다고 한다. 불교를 비롯하여 수많은 잡신 우상이 있는 일본은 천황이나 중요한 인물 이외에는 거의가 화장을 한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한국은 2018년 1월 현재 83.9%가 화장을 하며 서울은 88.3%, 부산과 인천, 울산 등은 90%가 넘게 화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시체를 불에 태울 경우 일산화탄소 등이 배출되고 연료도 많이 사용되어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고대에는 반란죄나 살인죄 등 중범죄인들만 화장을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매장을 했으며, 명문가 일수록 반드시 매장을 하며 화장을 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 대통령 중에는 아직까지 화장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며 모두 국립 또는 사립 묘지에 매장되었다.

요시야 왕 시대에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를 제단 위에서 불에 태웠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시체를 또 불에 태운다는 것은 지옥불의 심판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즉 성전의 제단 위에서 대속의 제물로 물과 피를 쏟으셨다. 결코 불에 태워 죽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상숭배를 하는 제사장들은 죽임을 당하고 즉 피를 흘리고 모든 육체는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고 죽음을 당한 유월절 어린양과 죽임을 당한 뒤 모든 뼈가 꺾이고 그것도 부족해서 빻아서 가루가 되기까지 이세상에서 가장 경멸을 받아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존재의 가치를 비교할 수 있다.

유월절 어린양은 죽은 뒤에 그 고기를 온 가족이 나누어 먹는다. 즉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든 성도들이 먹어야만 영생을 할 수 있다. 그만큼 온 인류를 구원할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를 완전히 태워서 재가 되면 그 누구도 먹을 수도 없고 그 재는 동물의 똥을 버리는 바깥에 버려진다. 즉 아무 것에도 쓸데없는 무가치한 것이 되며 똥같이 취급되는 것이 "재"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미워하신다. 우상을 섬기는 불교를 비롯한 타종교에서는 죽은 시체를 또 불에 태우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지극히 자연스레 행하고 있다. 불에 태우는 것도 부족하여 뼈를 박살을 내어 가루로 만들고 그것도 부족하여 사방에 뿌려서 아예 존재조차 사라지게 한다.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그것이 경멸의 표시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임을 모르므로 화장을 선호한다. 물론 땅값도 비싸고 묻을 땅이 없어서 그런다고 하지만, 그러한 환경 역시 인간들의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이다.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로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욥 30:19)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6) 

"재"(ashes, 에페르 אֵפֶר)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존재 가치가 없는 우리 자신의 무가치함과 오직 "존재"이신 주님 앞에서 우리가 무슨 "존재"가치가 있는 것처럼 까불던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티끌과 재 같은 제가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 18:27)라며 자신을 티끌과 재와 같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티끌"(아파르 עָפָר)은 흙이므로 씨를 뿌리면 열매를 맺지만, 재에 씨를 아무리 뿌려도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욥의 고백과 아브라함의 고백은 우리가 "티끌"이면서 동시에 "재"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가 토기장이이신 주님의 손에 있을 때에는 티끌과 같은 존재이므로 그분이 빚으시는대로 창조되지만, 그분의 손에서 떠났을 때에는 아무 쓸모없는 재에 불과하다. 우리가 흙일 때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나 재가 되면 어떠한 희망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여서 재로 만드신 것이다. 희망 "0"(nothing).

무한하신 하나님과 반대로 인간에게는 항상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하면서 우상을 없애며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했으나 다 없앨 수 없었다. 겉으로는 우상을 버렸다고 하면서 실제로 집안에 우상을 두고 섬기는 이들도 있을 수 있으며, 보물찾기 하듯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것을 색출해 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간들이 남겨놓은 것까지 모두 진멸하시겠다고 선포하신다.

4절의 '그마림'은 바알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일컫는 말이며, 5절의 '말감'은 '밀감' 또는 '몰렉'이라고 하는 우상으로 자녀를 불에 태워 바치는 우상이다. 이러한 바알과 모든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을 "손을 펴서" 없애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을 의미한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이 모든 자를 멸절하겠다고 하신다. 

자신들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자녀를 우상에게 불에 태워 바치는 이들 즉 오늘날로 말하면, 자신들의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녀를 물질과 공부와 명예와 권력의 노예가 되도록 이끄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도 똑같이 죽여서 그 시체를 불에 태워 심판하신다.

멸절될 대상 중에서 6절을 보면 여호와를 떠나고 여호와를 구하고 찾지 않는 자들까지 포함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의 명령을 적당히 듣고 적당히 행한다. 적당히 구하다 말고, 찾다가 못 찾으면 포기하고 두드리다가 귀찮아서 그만 둔다. 그뿐인가? "구하고 찾는"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인데,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린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자기의 소원과 꿈을 찾고 구하고 두드린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여호와를 찾고 성령을 받을 때까지 간절히 간구하라고 하시며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받지 못하는 이유는 구하라는 성령을 구하지 않고 육체의 정욕을 위해 간구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2-3)

[적용]

그 동안 우리의 기도생활을 살펴보자. 나와 우리 교회는 어떤 기도를 해왔는가?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며 찾는 기도를 했는가? 아니면,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한 기도만 해왔는가? 즉 명목상으로는 주의 나라를 구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나의 평안과 우리의 행복을 위해 기도한 것이 아닌가? 내가 죽더라도 그리고 나와 우리 가정과 교회와 민족이 희생되고 고난을 받을지라도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를 구했는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양심에 손을 얹고 묵상해보자.

우리는 때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데, "주여, 우리 나라를 (공산주의가 되지 않도록, 동성애로부터, 이슬람 세력에 물들지 않도록...) 구하여주옵소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이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공산주의보다는 민주주의가 좋고 동성애나 이슬람 문화도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들이 많고 우리에게서 평안을 빼앗아가기 때문이 아닌가? 정말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는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날"에 세상 모든 것을 멸절하신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우리 자신을 부인하게 하며 우리에게 각자 십자가를 지게 하시므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하시고 다시 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분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선택된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를 부인하므로 부활의 기쁨과 산 소망을 갖게 하시기 위하여 그분께서 친히 준비하신 방망이(북한, 이슬람 등)를 통하여 연단하시며 환난 가운데 집어 넣으셔서 우리로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해야만 한다. 주님 앞에서 감히 우리의 소리가 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여리고 성이 함락되기 위해서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리고 성을 도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무리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잠잠해야만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안에서 잘 죽을 수 있게 되며 주 안에서 죽은 자만이 부활의 영광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은 아무 때나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되며 주께서 "외쳐라"라고 하실 때에 비로소 크게 벌리고 외쳐야 한다. 

지금 우리가 입을 벌리고 외칠 때인가, 아니면 죽은 자처럼 잠잠할 때인가?

[기도 제목]

1) 혼과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살도록 성령충만케 하옵소서

2) 주님께서는 이세상에 지각이 있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하셨는데, 저희는 주님을 믿기 때문에 지각이 있는 줄로 착각하며 교만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3) 주께서는 매일 매순간 저희를 심판하고 구원하려고 임재하시지만, 저희는 저희의 잘못 때문에 고난받는 것은 싫고 오직 저희의 삶 속에서 구원해주시기만을 바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간구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기도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주여, 주여"하면서 거듭난 성도의 삶을 사는 줄로 착각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4) 그 동안 이교도들의 풍습과 세상 풍습에 젖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인양 살아왔기에, 성경에서 지시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습관과 경건의 훈련의 삶을 사는 것을 미련하고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저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주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5) 저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수많은 기도를 했으나,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그것은 성경과 상관없이 저나 다른 이들이 싫어하고 혐오하고 불안하게 하므로 구했던 기도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 기도가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부터 진정으로 성령을 받을 때까지 구하고 찾고 두드리도록 인도하여 주셔서 오직 성령 안에서만 기도하게 하여주옵소서.

6) 오늘도 주께서는 방망이를 준비하셔서 저희의 미련이 벗겨지게 하시며 저희에 죄를 주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케 하려고 하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그 방망이를 없애달라고만 간구했던 어리석음을 고백합니다. 방망이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과의 소원했던 관계가 회복되는 줄도 모르고 무조건 저에게 손해가 되고 고통이 되는 것이 싫어서 육의 사람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7) 오늘 이 순간 저희의 마음을 성령께서 환히 비추어주셔서 저희의 심령을 살펴보게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진정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저희의 모든 정욕을 못박아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서 진정으로 저희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e 2nd Life Foundation/뉴 욕 퀸 즈 교 회/      

Pastor Esther Soo-Gyung Kim

김수경목사  kimsoogy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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