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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본성의 새로운 지평은 없다 』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에 태어나 금년이 그의 출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경희대 철학과 교수인 Jason Barker가 마르크스 200주년을 맞아 뉴욕 타임스에 “Happy Birthday, Karl Marx. You Were Right!”라는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이 글을 매우 언짢게 생각한 미국의 법조인이자 젊은 우파 언론인이며 작가인 Ben Shapiro는 “Karl Marx, You Were Wrong”라는 제하의 글을 National Review에 게재하였습니다. 

칼 마르크스를 찬양하든 비판하든 그렇게 하는 학자나 사상가의 주장이나 이론에는 나름의 논리와 일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이론이나 주장이 현실적으로 어떤 경향을 드러내고 있는지 그리고 보편 가치를 세우는지 허무는지와 무엇보다 어떤 동기에서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큰 그림으로 볼 때 마 마르크스식 사회변혁 이론은 스탈린이나 마오쩌뚱과 같은 비극을 낳았고 늘 남 탓이나 사회구조 탓만 하는 인지구조의 인간을 양산하였습니다.

이러한 인간은 나이브한 사회과학적 인간 이해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본과 실존에 대한 올바른 자각이나 책임적 존재라는 인간 존엄을 오해하며 왜곡하여 인간의 존엄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 이념을 표방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무려 일 억 명 이상의 인민들을 학살했고, 또한 구 소련,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북한 등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천만 명의 인민들을 감금했으며 그들의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했습니다. 인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민을 학살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대도 좌파 지식인이나 언론인들은 아직까지 마르크시즘의 찬양을 멈출 줄 모릅니다.

이런 맥락에서 마르크스는 인간 존엄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좌파들이 마르크스를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인간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함정은 인간의 한계와 아울러 책임적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인간 존재가 아닌 대안적 인간론의 토대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전통적 기독교의 인간론을 부정하는 마르크스의 대안적 인간론이란 이론적 인간론이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 다만 자본주의 아래서 생산수단의 사유화는 참다운 인간성을 파괴하며 인간은 노예적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인간성 파괴의 주범인 자본주의의 물신숭배와 함께 황금만능주의를 통렬히 비판하였지만 정작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그 자신은 물론이고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지금까지 진정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한다면서 정작 파괴해서는 안 될 인간성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이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가 좀 더 정직했다면 전통적 기독교의 인간론을 부인하면서 대안적 인간론을 제시했어야만 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자본론을 쓰면서 더 이상 논리를 전개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영국 역사학자 Gareth Stedman Jones가 2016년 내놓은 “Karl Marx: Greatness and Illusion”(칼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이라는 책을 통해 의미심장한 지적을 하였습니다. 그 지적은 경제학적으로 “자본론”은 미완성이 아니라 실패한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르크스 철학적으로 유물론자가 아니라 독일 관념론의 전통 위에 서 있는데, 정치학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만 고집한 게 아니라 노선이 계속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자본론은 사회과학적 방법을 차용하고 있지만 정작 경제공황이 닥쳤을 때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과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자본주의는 문제에 봉착하였을 때 좌파들이 마르크스 자본론을 들먹이는 것처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거론하지 않고 무단히 그리고 단호하게 자체 수정을 통하여 재기하였습니다. 게레스 스테드만 존스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실패작이라고 한 이유는 마르크스가 1권을 쓴 뒤 더 이상 자본론 원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빨리 2, 3권을 내라고 독촉하였지만 신병을 핑계 대고 더 이상 원고를 쓰지 않은 것은 논리 전개에 실패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자본, 노동, 토지소유, 국가, 세계무역, 세계공황 등 6권을 써서 자본주의의 등장, 성장, 몰락, 그리고 사회주의의 도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당대의 고고학, 인류학, 경제학 수준 등을 감안하면 마르크스가 아무리 뛰어났어도 한 명의 학자가 다 감당해내긴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마르크스는 1860년대 중반쯤 더 이상 자본론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1870년대 들어서는 보편적 역사 발전 법칙이 있는 지도 의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본론 2, 3권은 엥겔스가 편집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고전 경제에 대해 한번 들쑤시자 경제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본격화되었고 그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의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마르크스는 성실하고 정직한 연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좌파들처럼 결론을 억지로 짜 맞추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에 의해서 더 이상 집필되지 않은 자본론은 모든 것이 모호하였습니다. 자본주의를 그렇게 비판했는데 그래서 자본주의가 망한다는 것인지. 자본주의 다음에 어떤 사회가 온다는 것인지 모든 게 모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894년 3권이 출간되면서 마르크스주의 진영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나중에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망한다는 건 경제주의적 편향이고, 계급투쟁이 더 중요하다는 전혀 엉뚱한 주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황상하목사, 뉴욕 퀸즈제일교회 담임

마르크스를 깊이 연구하고 정직하게 이해한 이들은 그에게 걸었던 희망을 접는 것이 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마르크스 당신이 옳았습니다.”라고 하는 이들은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 마르크스에 의해 완성되지도 않았고, 어떤 면에서 저자 자신에 의해서 실패가 인정된 이론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그를 추종하는 이들에 이해서 이데올로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의 의의를 찾는다면 그 수준을 넘어서는 대안 없는 환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비판은 더 이상 비판할 수 없는 권위의 토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모든 절대를 상대화 시켜버린 무신론적 이론이 무슨 근거로 예단과 비판을 쏟아내는지 그 교만에 혀를 내두를 따름입니다.

자본주의 자체에 붕괴 경향이 내장돼 있다는 마르크스주의의 판결 내용은 정작 마르크스주의에 적용되었고 또한 적용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일으킨 부작용과 패해가 많다는 것을 자본주의자들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불완전하다는 것이 자본주의자들이 보는 자본주의의 장점입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한 자본주의는 마르크스의 비판과 지적들에 도전을 받고 수없이 많은 자체 수정을 거듭해 왔습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나쁜 정치인들이나 자본가들이 자본주의를 이용하여 지나치게 이익과 권력을 취하는 나쁜 사례들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나쁜 생각과 의도를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불의와 폐해는 어떤 정치사상이나 경제 제도 아래서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아래서는 거짓과 왜곡과 음모와 폭력까지도 공공연하게 정당화 되는 경향이 있는데, 자본주의 아래서는 비록 나쁜 의도를 가진 자라할지라도 그렇게 조직적으로 또는 교조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모든 사상과 철학과 이론과 방법을 하나님의 절대성과 인간의 유한함과 책임적 인간론의 토대에서 출발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외에 다른 하나님은 전제될 수 없듯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 외에 다른 인간론의 지평은 아무리 탁월한 철학자나 사상가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 본성 외에 다른 인간 본성의 지평을 이야기 하거나 전제하는 것은 거짓이며 허상이기 때문에 귀기우릴 필요가 없습니다.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고 연구 분야가 신학이 아닌 철학이나 정치나 경제나 과학이나 그 어떤 분야라고 할지라도 마르크스처럼 존재하지도 않고 그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다른 인간 본성의 지평이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주장은 예상할 수 없는 해악을 인간에게 끼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무엇을 이루거나 성취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요 어리석음이며 교만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나 사상이나 철학도 올바른 인간론에서 출발해야 건강하며 올바른 인간론의 토대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토대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 안에서조차 마르크스주의처럼 마치 인간 본성의 다른 지평이 가능하기나 한 것처럼 주장하거나 처신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발전하고 진보해도 인간일 뿐이며 인간이 하나님을 인간 경향에 맞도록 아무리 왜곡해도 하나님은 인간이 아닌 절대적 존재요 모든 것의 절대적 원인이며 기준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분이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사 31:3)

황상하  joseph19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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